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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8월 25일 – 정원

    제게는 정원이 있었으면 하고 늘상 생각했습니다.

    아무도 돌보지 않아서 잡초가 무성하고, 나무 밑동이 축축하게 썩어가는 고약한 정원 말입니다.
    바위를 들추면 그 아래에서 갖은 다족동물이 빛에 놀라 달아나고, 고인 빗물은 빠져나갈 곳이 없어서 땅은 서서히 삭아갈 것입니다.
    결국 그 악취에 누구도 다가오지 못하고, 도심 한가운데에 생명의 낙원이 완성될테죠. 빛을 싫어하는 동물만이 이 정원에 살 수 있습니다. 이끼와 부식동물이 적당할 겁니다.

    저는 그런 정원을 늘 가지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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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8월 25일 – 해파리

    짱이야~

    최강의 바다 생물, 해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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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8월 10일 – 사랑

    우리는 투명한 어항이다. 그 안에서 헤엄치는 붉은 금붕어야말로 이성이라 부를 만한 것이다.
    처음에는 훤하고 총명하던 어항의 표면에 흐릿한 흰 때가 묻는다.

    물때나 물고기 똥 같은 것이다. 깨끗한 물은 탁하게 변해, 그 본질을 흐린다.
    안타깝지만, 나는 그것이 사랑이란 걸 오늘 아침에 깨달았다.

    그러니 우리는 서로 똥을 주고 받으며, 그것을 아름답다고 숭배하는 셈이다.
    내 생각에 그건 별로 아름답지 않은데.

    그러면 안 좋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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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8월 7일 – 일본과 캄브리아기

    일본 소설을 보다 보면 유독 캄브리아기 생물에 관한 묘사가 많다.
    <그로테스크>의 할루키게니아, 삼엽충, 아노말로칼리스 등, 국내 정서로는 이해할 수 없는 빈도의 등장이다.

    나는 그에 한 가지 가설을 세웠다.

    우리가 어린 시절 벽에 알파벳이나 한글, 세계지도 따위를 붙여놓은 것처럼, 어쩌면 일본의 특정 세대에는 캄브리아기 바다 생물을 다룬 벽지가 유행하지 않았을까.
    그 결과 창작을 주도하는 일본 기성 세대 사이에 캄브리아기라는 공통 정서가 싹트고, 이것이 반영된 결과물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이 유행은 캄브리아기처럼 금새 지나갔을 것이다. (대략 5천만년 정도 사이에)
    요즘 등장하는 창작물에는 캄브리아기 생물은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대멸종이다.

    그러니 이 정서는 일본의 현 4~60대 사이의 비밀스러운 공감대인 것이지.
    나는 그 세대도 아닐 뿐더러, 그 문화권에 속하지도 않았으니 진위 여부는 알 수 없겠지만, 고대의 낭만을 함께 품은 세대라고 하면 썩 로맨틱하게 들리지 않던가.

    혹시 모르지. 먼 미래에는 인류를 놓고 이런 공감대를 형성하는 세대가 생길 지도.
    그들의 소설에는 비닐 봉투와 아스팔트 건물이 나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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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7월 21일 – 내게는 기이한 버릇이 하나 있다

    내게는 기이한 버릇이 하나 있다.

    어떤 상황이든 내가 죽은 뒤를 상상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극단적인 자기파괴적 몽상은 내 아드레날린을 솟구치게 하고, 어떤 약물도 선사할 수 없는 쾌락을 선사한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집안에 있던 내가 갑자기 의자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침대 위에 올라가 창문을 열고, 안쪽 창문을 열고, 방충망을 열고, 저 너머로 뛰어내리는 것이다. 높지 않으니 죽으려면 꼭 머리부터 떨어져야 할테지. 나는 다이빙 선수처럼 화려하게 활공할 것이다.

    그렇게 나는 죽는다.

    내 시체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처참한 시체의 몰골에 충격받을 것이다. 아마 이것으로 정신적 외상을 입어 병원에 다니게 될지도 모른다. 혹은 어떤 감수성 예민한 아이의 눈에 들어가서 그를 나와 같은 자기파괴적인 몽상가로 키워낼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의 시체는 그렇게 정신적인 양분이 되지만, 내 시체를 먹고 자라야 할 개미와 파리, 들개에게는 주지 못할 것이다.

    머지 않아 병원과 경찰에서 사람이 나오고, 흩어진 내 파편을 핀셋으로 주어 모을 것이다. 부숴진 도자기 인형을 짜맞추듯이 정성스럽게 봉합할 것이다. 나는 기성품으로 나와 내 몸에 아주 딱 맞지는 않는 싸구려 관 안에 눕혀지고, 받아야 하는 모든 사람이 장례식 초대장을 받은 후에야 장례식장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곳에서 나는 사람들의 곡소리를 듣다가 화장터로 옮겨지고 한줌 되지 않는 검은 재가 되어 여기저기 흩뿌려질 것이다. 그나마 남은 것은 생전 머리만한 항아리 안에 보관되어 어딘가에 버려길 것이다.

    나를 아는 몇 없는 사람들은 내 죽음에 심심한 애도를 마치고 완전한 망각 너머로 잊고 말 터이다. 드물게도 날 소중히 여긴 사람은 내 죽음에 매일 앓고 마를 터이다. 나와 일면식조차 없이 교류해온 사람들은 내 실종에 의구심을 품다가 이제야 죽었다는 것을 납득하고 흩어질 터이다. 나의 글에는 부고문이 걸릴 테고, 누군가는 내 죽음을 애도하기도 하고, 혹은 우스꽝스럽게 풍자하기도 할 터이다.

    그렇게 나는 죽었다.

    내게는 그런 기이한 버릇이 하나 있다. 고작 1, 2분이면 나는 앉은 자리에서 그대로 검은 재가 되어,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알지 못하게 된다. 生死 生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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