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26년 7월 23일 – 증발

    증발, 한때 나는 이 단어를 대단히 무서워했지만, 지금은 거의 홀려 있다.
    이는 공포와 선망이 한없이 다가서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오늘 내가 이 아름다운 현상에 심취해 있다가도, 막상 내일이 닥치면 죽음을 앞둔 노인처럼 두려워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지금 내가 증발을 선망하는 것은 부정할 도리가 없다.

    완전한 소멸. 완전한 상실. 완전한 망각.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그렇게 보이는 것.)

  • ,

    어쩌면, 나

    그렇다, 그녀는 문득 분명하게 깨달았다. 그녀는 사진 찍는 일에 열정을 갖고 몰두했지만 다른 어떤 일에라도 똑같은 열의를 쏟을 수 있었다. 사진은 단지 ‘더 높이 올라가’ 토마시 곁에 살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제 남편은 의사라서 저를 먹여 살릴 수 있어요. 사진 찍는 일이 제게 꼭 필요한 것은 아니에요.”

    “그토록 아름다운 사진을 찍은 후에 사진을 포기할 수 있다니. 이해할 수 없군요!”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이재룡 역) 中 –

  • ,

    오랜 벗을 소개하며

    나와 죽음의 관계는 퍽 문학적이다.

    내가 처음으로 죽음을 직시한 것은, 어릴 적, 잠자리를 풀잎에 올려두었던 밤이다. 내 손에서 살아 있던 잠자리는 바닥에 떨어져, 그대로 개미에게 뜯어 먹혔고, 나로 하여금 유구한 죽음(또는 개미)과의 투쟁을 일으키게 되었다. (한 사람의 인생을 지탱하는 데 무수한 죽음이 필요한 것에 비해, 그 잠자리는 고작 한 마리의 죽음으로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것이다.)

    조모께서는 침대에서 떨어져서 돌아가시게 되었다. 원래도 섬망을 앓고 계셨으며, 당뇨로 주기적인 투석이 필요하신 분이셨다. 그런데 바닥에 떨어지며 골반 뼈가 부러지는 바람에, 1년(어쩌면 2년) 정도 여러 보호소를 전전하다 돌아가시게 되었다. 보호소에서 학대의 흔적을 발견하기도 했지만, 앞서 말했듯이 섬망이 있으셨고, 본래도 거동이 힘드셨기에, 모시는 것은 어렵다는 이유로 모두가 쉬쉬하였다.

    조모께서 돌아가셨을 때, 나는 참 다행이다, 라고 생각하였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상주를 맡게 되는 사흘 내내 울면서도, 참 다행이다, 하고 거듭 생각하였다.

    이후, 나는 남은 조부께서 적적하시지 않게끔 매일 전화하기로 다짐했다. 그리고 일주일 후, 조부께서 돌아가셨다. 낙상사였다. 돌바닥에 머리부터 넘어지는 바람에, 그대로 뇌사 상태가 되어 돌아가시고 말았다. CCTV 영상도 있었고, 볼 수도 있었지만, 보지 않았다. 친척들 모두 보았지만, 나는 보지 않았다.

    일주일 만에 나는 두 번째 상주를 맡게 되었다. 비록 있지도 않은 유산을 탐내며, 그간 의절하고 있던 호로 새끼가 돌아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조모, 조부께서 울면서 손녀 얼굴을 보고 싶다고 해도, 끝끝내 얼굴 한 번 보여주지 않았으면서, 조부의 장례식장에서는 웃으면서 친구들을 맞이했다.

    그 이후로 나는 삶과 꽤 소원해졌다. 하지만 오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러한 죽음과의 관계성은, 나만의 특수성이라 보기 어렵다. 죽음이란 본래 문학적이라, 어떤 형태의 만남도 아주 시적으로 꾸며주곤 한다. 나와 죽음의 관계는 냉정하게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닌 셈이다.

    오래 전부터 나는 내 죽음을 정해두었다. 목을 메거나, 투신하거나. 이것이 내가 죽음에 대항하는 유일한 수법이고, 지금까지는 꽤 잘하고 있다.

  • ,

    불현듯이 깨달은 재밌는 차이

    일반적인 시장에서는 글(시나리오)을 보여주면 돈을 받습니다.
    편결 단위의 웹소설이 가장 적나라한 형태일 것이고, 간접적으로는 영화의 시나리오, 노래의 가사 같은 것이 있겠지요.

    그런데 모바게 시장에서는 정반대로 글을 보여주면 돈을 제공해야 합니다.
    시나리오 리소스, 아트 리소스가 들어가는 건 물론이고, 실제로 아예 유료 재화를 지급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업데이트는 전혀 유상으로 판매하지 않지요.

    이 재밌는 고찰을 어떻게 활용할지는 전혀 안 떠오릅니다만, 꽤 신기한 사실이라고 생각해서…..

  • ,

    2026년 6월 17일 – 퇴근

    힘들어.

    이상하다. 회사 다니면 좀 더 안정적이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게 아니었던가?

  • ,

    2026년 6월 13일 – 그저 불쌍히

    나의 재능은 그리 대단치 않고,
    나의 비극은 그리 극적이지 않고,
    나의 고통은 그리 큰 것이 않음을,

    늘 염두하고, 겸허할 것.

  • ,

    좋아하는 구절

    얼마 전 나는 기막힌 감정의 불꽃에 사로잡혔다. 나는 히틀러에 관한 책을 뒤적이다 사진 몇 장을 보곤 감격했다. 내 어린 시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는 어린 시절을 전쟁 통에서 보냈다. 내 가족 중 몇몇은 나치 수용소에서 죽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의 죽음이, 되돌아갈 수 없는 내 인생의 한 시절,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해 줬던 히틀러의 사진에 비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러한 히틀러와의 화해는 영원한 회귀란 없다는 데에 근거한 세계에 존재하는 고유하고 심각한 도덕적 변태를 보여 준다. 왜냐하면 이런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처음부터 용서되며, 따라서 모든 것이 냉소적으로 허용되기 때문이다.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이재룡 역) 中 –

  • ,

    2026년 6월 4일 – 시끄러워

    심장 소리가 시끄럽다는 사실을 너무 일찍 깨달은 탓에 나는 영구적인 불면증을 겪게 되었다.
    그리고 선풍기도.

  • ,

    2026년 6월 3일 – 한 근에 2100원

    누군가 보는 일기를 쓴다는 것은 참으로 기이한 기분이다.
    보여주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고, 숨길 방법이야 많지만 굳이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이는 푸주한의 사명이다.
    일찍이 나는 나 자신의 토막내어 시장에 전시해 두지 않았던가.

    비록 섬세하지는 않더라도 단호하게, 일말의 동정심도 없이 기계적인 동작을 수행해, 248조각으로 등분하여 지금도 자랑스레 고리에 걸어 전시해 두고 있지 않던가.
    신선한 고기는 푸주한의 자부심이고, 팔리는 것은 기쁨이어야 한다.

    때문에, 나는 속살을 드러내는 데에 거부감을 품어서는 안될 노릇이다.
    (거부감은 기쁨에 상반된 감정이기 때문이다.)

  • ,

    2026년 6월 2일 – 생각을 말하는 것은 공격적이다.

    사회에서 자신의 견해를 드러내는 것보다 공격적인 행위가 있을까?
    (폭력이나 욕설 등의 반사회적이지 않은 행위에 한하여)

    이는 나만의 생각도 아니고, 또한 참신하거나 새로운 관점도 아니다.
    작은 사회에서는 가십(뒷담)과 같은 형태로 나타나고, 큰 사회에서는 정치의 형태로 나타난다. 둘 모두 여지없이 폭력적이라는 사실에 반박할 사람은 드물 테지.

    하지만 이것은 사회에 국한된다. 밀란 쿤데라는, 모든 도덕적 판단을 중지하는 것이야말로 소설의 도덕이라 주장했다. 문학의 세계에서는 윤리적 자태는 의미가 없기에, 한없이 창발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하는 것이다. 즉, 문학을 하며, 사회를 살아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그것은 도덕적으로도 옳지 못하며, 성립할 수도 없는 명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리고 또.

    버들나무의 잎사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