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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루 아카이브

    텍스트라는 무대 위에는 각광이 없다. 텍스트 뒤에 능동적인 누군가(작가)가 있고, 그 앞에 수동적인 누군가(독자)가 있는 것이 아니다. 즉, 주체와 객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어느 극단적인 작가(Angelus Silesius)가 묘사한 ‘구분할 수 없는 시선’과 같다: “내가 하느님을 보는 눈은, 하느님이 나를 보는 눈과 같다.”

    – 텍스트의 즐거움, 롤랑 바르트 저 中 –

    그간 집필 활동을 하며 견지해 온 입장이 있습니다. 독자는 작가를 알아서는 안 되고, 알게 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자명합니다. 제가 쓰고 있는 글은, 저라는 인물의 사상이나 이념을 풀어내는 수단이 아니라,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 즐거움에 조금이라도 악영향을 줄 만한 것이라면, 배제하는 것이 당연하겠지요. 지극히 상식적이고, 논리적인 대응인 셈입니다.

    한편, 그와 상반된 정서가 제 안에 존재합니다. 저는 이것을 책임감이라 부르고 있지만, 실제로는 추한 과시 욕구, 인정 욕구의 발로인지도 모릅니다. (프로이트라면 틀림없이 성기와 유년기의 왜곡된 트라우마 따위로 비유했을 법한 그런 것)

    어쨌거나, 저는 작가는 독자로부터 숨어야 한다 믿는 동시에, 쓰고 있는 글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모순을 믿습니다.

    이 상반된 견해를 소화하기 위해 긴 세월을 고심했지만, 여전히 저는 답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다만, 제가 답변을 유예하는 동안, 제가 집필 자체를 멈췄다고 생각하고 계신 독자분들이 많다는 것도 보아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들을 위해, 저는 위에서 말한 책임을 지고자 합니다. 일단, 저는 창작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다만, 그 형태가 모두가 기대하던 형태는 아닐 것입니다. – 적어도 한동안은 그럴 것입니다.

    저는 잠시 쉼표를 찍어두고자 합니다. 이런 소극적인 형태의 답변이 모두에게, 아니, 단 한 명이라도 만족할 답변이 될지는 몰라도.

    과연 바람이 불까요? 저는 그랬으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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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리하고 싶은 내용

    설명과 유치

    인물의 말버릇

    소설 전개에 따라, 상징하는 세계가 좁아지는 과정
    (국가 -> 규범 -> 관계 -> 자아 -> 부모)

    상승과 하강의 이미지

    대부분 내 안에서도 휘발되어 사라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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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5월 16일 – 현재진행형

    연재 당시의 일기를 정리하며 깨달은 바가 있다.

    당시에 하려 했던 것, 혹은 하게 된 것들의 대부분이 여전히 진행 중에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금각사를 아직 다 읽지 않았다. 집필 프로그램 역시 워드로 전환하지 못했다. 아직도 밤잠을 설치며, 키보드에 커피를 쏟는다.

    이토록 긴 시간이 지났음에도, 나는 조금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나는 10년 후에도 키보드에 커피를 쏟고 있을 것이고, 20년 후에도 그럴 것이다.

    이렇듯이 사람은 (혹은 나만은) 스스로 맺음 짓지 못한다. 이것이 죽음이 필요한 절실한 이유이다. 삶에는 아름다운 방점이 필요하다. 아무리 추하고 허무하더라도, 방점은 그 자체만으로 아름답다.

  • 방명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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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4월 21일 – 6년의 침묵과 고도화된 피로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문인 중에서도 기이한 경력을 가진 폴 발레리가 집필과 단절하여 지낸 세월은 거의 20년에 이른다. 나는 동년의 작가들이 금자탑을 쌓는 동안, 삶과 재능을 한없이 허비했다.

    그렇기에 폴 발레리인 것이다. 오직 그만이, 나의 저열한 열패감과 6년이라는 경력 단절을 위로해 준다. 하지만, 내가 폴 발레리인가? 최인훈도, 피츠제럴드도 되지 못한 내가.

    최근, 나는 고도화된 피로를 느낀다. 이렇게 말하면 꽤 훌륭한 것처럼 들리지만, 그 본질은 언어화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고 문장을 매개로 다루는 우리 같은 족속들에게, 언어화가 어렵다는 것은 실로 나태하고, 별 볼 일 없는 것이다.
    (혹은 그만큼 가치가 없거나)

    어쨌거나, 나는 전에 없이 고도화되어 있다.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세월이 얼마나 무자비할 수 있는지 보았다.
    20년의 시간이 antihoney에게서 무엇을 빼앗았는지 보았다.

    바람이 분다. 그렇지만, 살아야 할 이유는 어디 있지?

전체글 작업 전생하고 보니 크툴루(완결) 단편 기타 유서 일기 수필 무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