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라는 무대 위에는 각광이 없다. 텍스트 뒤에 능동적인 누군가(작가)가 있고, 그 앞에 수동적인 누군가(독자)가 있는 것이 아니다. 즉, 주체와 객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어느 극단적인 작가(Angelus Silesius)가 묘사한 ‘구분할 수 없는 시선’과 같다: “내가 하느님을 보는 눈은, 하느님이 나를 보는 눈과 같다.”
– 텍스트의 즐거움, 롤랑 바르트 저 中 –
그간 집필 활동을 하며 견지해 온 입장이 있습니다. 독자는 작가를 알아서는 안 되고, 알게 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자명합니다. 제가 쓰고 있는 글은, 저라는 인물의 사상이나 이념을 풀어내는 수단이 아니라,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 즐거움에 조금이라도 악영향을 줄 만한 것이라면, 배제하는 것이 당연하겠지요. 지극히 상식적이고, 논리적인 대응인 셈입니다.
한편, 그와 상반된 정서가 제 안에 존재합니다. 저는 이것을 책임감이라 부르고 있지만, 실제로는 추한 과시 욕구, 인정 욕구의 발로인지도 모릅니다. (프로이트라면 틀림없이 성기와 유년기의 왜곡된 트라우마 따위로 비유했을 법한 그런 것)
어쨌거나, 저는 작가는 독자로부터 숨어야 한다 믿는 동시에, 쓰고 있는 글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모순을 믿습니다.
이 상반된 견해를 소화하기 위해 긴 세월을 고심했지만, 여전히 저는 답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다만, 제가 답변을 유예하는 동안, 제가 집필 자체를 멈췄다고 생각하고 계신 독자분들이 많다는 것도 보아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들을 위해, 저는 위에서 말한 책임을 지고자 합니다. 일단, 저는 창작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다만, 그 형태가 모두가 기대하던 형태는 아닐 것입니다. – 적어도 한동안은 그럴 것입니다.
저는 잠시 쉼표를 찍어두고자 합니다. 이런 소극적인 형태의 답변이 모두에게, 아니, 단 한 명이라도 만족할 답변이 될지는 몰라도.
과연 바람이 불까요? 저는 그랬으면 좋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