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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주가 내린 날

    “우주가 내릴 때는 꼭 우산을 써야 해.”

    소녀가 말했다.

    “우산.”

    “그래, 우산.”

    노란 우비를 쓴 소녀는 자신의 체구에 맞는 아담하고 귀여운 노란 우산 손잡이를 꽉 쥐었다.

    “그럴 필요는 없을걸. 여긴 실내니까. 비가 내려도 맞을 일 없어.”

    “비가 아니야. 우주가 내리는 거야.”

    소녀가 고개를 들었다. 나는 무심코 소녀의 시선 끝을 올려봤다. 막혀 있는 천장과, 걸려 있는 샹들리에의 불빛이 깜빡거리고 있었다. 샹들리에 위에는 조금 먼지가 쌓여 있었다.

    “나는 그것부터 이해가 안 되는데.”

    “곧 우주가 내릴 거야. 별과 어둠, 자외선이 흘러 내릴 거야. 장화를 신으면 좋겠지만, 없다면 뚫리지 않은 가죽 구두로 충분해.”

    “우주.”

    “그래, 우주.”

    나는 바닥을 내려 봤다. 소녀가 나를 따라 고개를 숙였다.

    “맨발은 좋지 않을걸.”

    “집이니까, 괜찮아.”

    “지붕은 의미가 없어. 우주는 사람의 마음에 내리니까.”

    “그러면 우산도 필요 없겠지.”

    “우산은 하늘을 보는 걸 포기한다는 뜻이야. 그런 사람에게 우주는 내리지 않아.”

    “그러면 커튼을 칠까?”

    소녀는 살짝 고개를 숙이곤 아랫입술에 검지 둘째 마디를 댔다. 짧은 침묵이 흘렀다. 그동안 나는 샹들리에 위에 쌓인 먼지가 신경 쓰였다.

    “역시 우산이 안전해. 곧 우주가 내릴 거야.”

    “너는 그걸 어떻게 아는데?”

    “하늘이 흐리니까.”

    “지금은 밤이야.”

    “별들이 점멸하고 있어. 이런 날에는 우주가 내려.”

    나는 창 밖을 내다봤다. 자색 하늘이 별의 수로를 따라 은은히 흐르고 있었다. 어둠과 자외선의 물결 위에 얹어진 별들은 우주에 가라앉았다가 떠올랐다를 반복하며 둥둥 떠다녔다. 우주의 뒤로 자홍색 구름이 뿌옇게 흘렀다.

    “혹시 저걸 말하는 거야?”

    “아니, 그건 아니야.”

    “난 저런 하늘을 본 적이 없는데.”

    “우주가 내리기 시작했으니까. 너에게도 하늘이 보이기 시작한 거야. 지금이라도 우산을 쓰도록 해. 커튼도 치고.”

    “잠깐만, 조금만 더 보고.”

    우주는 한 줄기씩 방향을 꺾어 아래로 내려 흘렀다. 유리창의 표면을 기는 물방울 같았다. 자홍색 구름의 눈이 흐르는 우주를 따라 주르륵 미끄러졌다. 차분한 심장 아래로 축축히 젖은 마음이 거세게 뛰었다.

    “우주에 젖었구나. 우산을 쓰도록 해.”

    소녀는 검푸른 우산을 내밀었다. 그 위로는 하얀 고래 한 마리가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잡았다.

    “우주.”

    “그래, 우주.”

    “우주 위에는 뭐가 있지?”

    “하늘 위에는 구름이 있지. 우주 위에는 별이 있고.”

    “그러면 뒤에는?”

    소녀는 손으로 입을 막았다. 나는 우산을 폈다. 하늘은 보이지 않았다. 창문에는 달만이 교교히 비쳤다. 하얀 먼지가 반짝이며 공기 중을 떠돌았다. 우선은 책장을 치워야겠어, 나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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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옆집사는 생쥐가 죽었다.

    그것은 나에게 있어 썩 유감스러운 일이었다. 친하게 알고 지내던 것은 아니지만, 멀리서 발치만 엿보아도 의젓한 미물이로구나, 하고 흠모해 왔던 것이다. 비록 모진 세상의 풍파로 때 묻어 거뭇거뭇 회색 빛이 감돌지만 감출 수 없는 귀티가 흐르는 은빛 털과 위세 좋은 발걸음처럼 우뚝 솟은 꼬랑지는 보기 꽤 좋았던 것이었다. 일찍부터 이런 자그마한 가정집에 붙어있기는 아깝다고 생각해 왔거늘, 그 뜻을 피우기 전에 저물어 버린 것은 유감 천만 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조촐하게 상이라도 차려주는 것이 어떨까 싶었지만 제집도 아니고 옆집에 사는 생쥐를 위해 거기까지 해주는 것은 어떤가 하여 단념하였다. 향 대신이라 하기는 뭐하지만 담뱃불 하나 붙어 고이 보내주리라 생각한 것이다. 그러고 보면 생쥐라 하면 꽤나 대가족일 것이다. 그 풍채를 보아 암컷 한 둘 쯤은 거느리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니 부양할 가족도 그만큼은 있었을 것이다. 유가족들은 잘 지낼 수 있을까, 옆집 주인이 보지 않는 사이에 체다 치즈 한 점이라도 잘라 문 앞에 모른 척 놓아둬야 하는 것은 아닐까. 낭군께서는 의로운 상을 당하셨다고 위로라도 해줘야 함이 사람된 도리가 아닐까. 너 떠난 날부터 내 마음이 편하지 않아, 식사하다가도 목이 막히고 자다가도 편치 않아 새우등을 굽히니, 책임지라고 하고 싶어도 그 말을 들을 자가 없구나. 아, 생쥐여, 내가 너없이 어찌 살 수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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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병 外

    열병

    지독한 열병이었다. 온몸을 관통하는 영감이 끊임없이 마찰을 일으켰고, 끓어오른 피가 춤추며 떠올라 붉은 안개구름이 되어, 이윽고 아스팔트 위에 말라붙은 개구리처럼 수분기 하나 없는 시체가 되는 그런 열병이었다. 달빛은 태양만큼 밝았고, 어느 때는 낮인 것 같았고 어느 때는 밤인 것 같았다. 두 눈은 진작에 멀었거늘 파리의 겹눈처럼 열기만을 보고 이해했다. 그것은 영감이었다. 또한 끊임없는 마찰이었다. 파에톤의 태양 마차가 나의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비참한 한 마리의 개구리였다. 여름날 아스팔트 위에 얹어진 비극적인 흉물이었다.

    그 날도 여름이었다. 비가 내리지 않아 온 세상의 수분이 말라붙은 그런 여름날이었다. 눈물샘이 말라붙어 누구 하나 울 수도 없는 그런 뜨거운 날, 차창 너머에 비친 그것은 비극조차 되지 못한 그저 흉물이었다. 개구리였다. 피 한 방울도 가지지 못한 채, 도로 위에 녹아내려 아스팔트와 하나가 된 비극의 덩어리였다. 나의 눈꺼풀이 녹아내려 두 눈이 달라붙은 모습과 꼭 닮았다. 달은 너무나도 뜨거웠고, 필경 태양과 같았다. 개구리였던 비극이 있던 장소에는 붉은 뭉게구름만이 둥둥 떠다녔다. 본디 내 것이었던 그것이었다. 너무 차가운 나머지, 내가 가진 겹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분명히 나의 것이던 그것이었다. 나는 울지도 못했다.

    비가 오지 않았다. 하늘도 우는 법을 잊었고, 나 역시 그러했다. 살얼음이 피어오른 차창 너머로 나는 나의 모습을 본다. 피 한 방울 가지지 못한, 두 눈마저 말라붙은 비참한 모습으로 나는 거기 있다. 그런 꼴로는 개굴개굴 울 법도 한데, 눈물샘마저 말라붙었는지 눈물 한 방울 나지 않아, 그 여름은 유독 조용하더랬다.

    임종의 순간이 다가온다. 해는 지고, 달만 덩그러니 떠있다. 불빛에 매료된 수천 마리의 초파리들이 저 하늘 높이 올라가 이카로스와 같은 결말을 맞는다. 수천 개의 붉음이 쏟아지는 모습에 매료되어 나 역시 허공으로 한 발을 내딛는다. 붉음을 가지지 못한 나이기에 그저 검고 흉물스러운 덩어리가 떨어진다. 마른 가죽, 피 한 방울 없는 개구리가 아스팔트에 넓게 퍼진다. 하늘에는 그저 뜨거운 것이 무심히 올라가 있다. 그것이 해인지 달인지 나는 아직도 모른다.

    심애

    나는 실패작이다. 눈도 귀도 코도 입도 손가락도 제 위치에 제 개수 붙어있음에도 그렇다. 검은 핏방울이 꿀럭이며 목 위아래를 오간다. 사람을 살리지 못하는 죽은 피다. 뱉지 않으면 질식해 죽는다. 그것이 나다. 아무리 생각해도 붉은 것이 부족하다.

    나는 조용히, 격렬히 호흡한다. 매 숨이 마지막인 것처럼 헐떡거리며 살아있는 것을 버거워한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나아 보여 목을 조르면 그것이 무섭다고 손을 떼어 놓는다. 살지도 죽지도 못한 채로 그 경계선만을 오간다.

    생명의 근원은 핏줄 속을 분주히 오가는 타인의 노랫소리다. 그것은 내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그러다가도 곧 질투가 나 허연 가죽을 찢고 핏줄을 끊어 모두 흩트려 놓는다. 그 자리에 남는 것이 검은 피뿐이 없어질 때까지 그리한다.

    밤이 오면 나는 없어진다. 어두워지면 검은 것은 보이지 않는다. 나조차 나를 찾을 수 없어진다.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너무나도 무서워져, 그래서 추하게 운다. 그 흔적을 따라갈 수 있게, 차갑게 바닥을 적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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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지역에서는 비 대신 생선이 내린다고 한다.

    어느 지역에서는 비 대신 생선이 내린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듣고 나는 ‘세상에는 별 신기한 일이 다 있구나.’ 하고 생각하고 말았다. 그렇게 신기한 생선비에 대해 잊어가던 나날, 어느 다른 기사에서 이런 내용을 봤다.

    <생선은 잠들면 머리를 아래로 하고 가라앉는다.>

    그걸 보고 나는 깜짝 놀라서 깨달았다. 바다의 밑바닥과 하늘의 천장은 닿아 있는 게 아닐까, 나는 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기상청에 전화했다.

    “저기, 죄송한데, 혹시 하늘 위에는 뭐가 있나요?”
    “하늘이라면 어느 정도 높이를 말씀하시는 거죠?”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었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니 하늘이라고 해도 이것저것 있을 것 아닌가. 나는 전화를 끊고 도서관에 가서 하늘에 대한 책을 빌려왔다.

    그냥 하늘이라고 퉁쳐서 생각했었지만, 실은 하늘은 아주 많은 권역으로 나눠져 있었다. 대류권, 성층권, 중간권, 열권, 외기권, 그리고 우주까지.

    ‘우주도 하늘이구나.’

    나는 처음 안 사실에 순수하게 감탄하며 읽다가, 원 목표를 기억해내며 급히 찾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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