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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1월 15일 – 절필

    나는 수많은 밤을 고흐와 지새웠다.
    덕분에 뭇 호사가들이 묻곤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안다.

    평범한 예술가로서 인정받는 삶을 사는 것과, 불운한 예술가로서 불후의 걸작을 남기는 것.
    둘 중에 무엇이 나은 삶인가 하는 질문 말이다.

    고흐의 대답은 분명 이렇다.
    물을 것도 없이 평범한 예술가의 삶을 살겠노라고.

    나는 그의 현명한 답변을 존경한다.
    영원에 이른 그의 천재성이 아닌 그의 인내력에 찬사를 보낸다.

    순간은 고통이다.
    가는 길에는 어둠만이 가득하다.

    세간은 그가 괴로움을 참지 못하고 자살했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무지한 자의 오해다.
    이러한 풍경을 8년이나 견딘 그는 신화 속 영웅에 빗댈 만하다.

    나는 고흐를 존경한다.
    그와 같은 길을 걷지만, 나는 이제 한계에 봉착했다.

    글로 먹고 살 재능이 없다는 건 명백하다.
    심지어 내게는 그처럼 그만이 그릴 수 있는 것에 대한 열정조차 없다.

    밤이여, 들어라. 이 비참한 연명을 멈춰다오.
    아니면 글이라도 못 쓰게 손가락이라도 잘라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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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1월 14일 – 미쳐가다

    가다, 行く, go.

    공교롭게도 세 언어 모두 변화를 나타내는 진행형에, 출발, 이동의 의미를 가진 동사를 사용한다.
    내 경험상 이런 경우 높은 확률로 번역 과정에서 생긴 언어의 변화였다.

    불어와 독일어 사전에서 go mad와 일치하는 표현을 찾은 바, 각기 devenir와 werden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두 단어에는 go처럼 복합적인 의미는 없이, 변화에 치중한 ‘되다’의 의미만 강조되어 있다.

    그렇다면 유럽에서 go의 변형이 변화까지 전담하는 일은 흔치 않은 경우일까.
    영어는 여러모로 타 라틴계 언어에 비해 독립성이 강하니까?

    그러면 영어->일어->한국어 순으로 영향을 미친 걸까.
    혹은 일어->영어, 한국어?

    한국어에서 시작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 한국은 20세기 내리 과학과 문학에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으니, 국제 언어사에 영향을 미치기 어려운 환경이었으니.

    이런 거 하고 있을 때가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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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1월 13일 – 이상한 쪽지

    좋아하는 작가님에게 쪽지를 받았다.
    안에는 나를 유명한 작가님이라고 수식한 문장이 있었다.

    뭔가 이상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청난 괴리감, 소설로 치자면 좋은 도입부가 아닐까.

    나는 달리 유명하지도 않고, 심지어는 능력도 출중하지 않다.
    정말 이상한 일.

    답장을 어떻게 보내야 하지?
    유명한 사람처럼 답장을 보내면 이상할 것 아니야.

    정말 이상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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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1월 5일 – 사과 주스

    사과 주스를 쏟았다.
    컵에 담지 못했으니 엎지른 것보다는 쏟은 게 맞다.

    닦는 동안 굉장히 서운했다.
    손을 닦으며 거울을 보니 얼굴이 빨갰다.
    아마 추워서 그렇겠지.

    그뿐인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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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1월 5일 – 한낮의 각성

    잠에서 깨어나고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엔 무서워서 울고 말았다.
    한동안 희미했던 죽음에 대한 공포가 급작스럽게 돌아온 것이다.

    말하기도 새삼스러운 것이지만, 죽음 이후란 존재하지 않는다.
    자아와 인식은 결국 뇌와 척추를 통한 전기 자극과 그에 따른 신호일 뿐, 한 번 망가지면 돌이킬 방도가 없다.

    사후세계도, 소생도 없다.
    죽음에는 어떠한 의미도 없는 것이다.

    간신히 다가오는 수명에 담대해졌건만, 이래서는 전부 도로묵이다.
    갈망과 공포, 죽음이 가진 양면성에는 도무지 적응하질 못하겠다.

    추하다.

전체글 작업 전생하고 보니 크툴루(완결) 단편 기타 유서 일기 수필 무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