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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면安眠

    처음 내가 너를 발견했을 때, 고백건데 나는 너에게 무언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단다. 이런 어둑한 숲길이니 길을 잃는 것은 당연해 보였으니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너의 어리석음에 한탄했지. 내가 혹시 너에게 과중한 부담을 맡긴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마저 들더구나. 그 때문에 네가 햇빛도 들지 않는 눅눅한 바닥에서 이끼의 먹이가 되고 있노라고 생각하면 나의 이런 반응도 과한 것은 아니겠지. 내가 너를 다시 찾아낸 것도 하늘이 도왔다고밖에 말하지 못할 거야. 나란들 네가 이런 숲 한가운데에 뒹굴고 있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었겠니.

    다시 너를 만나게 되었을 때, 나는 그것이 너라는 것도 알아보지 못했단다. 당연한 일이었지. 내가 그것이 너라고 확신할 수 있었던 것도 고작해야 몇 가지 기억들 덕분이었어. 어머니에게 받았다고 말하며 언제나 차고 다니던 금이 그어진 낡은 손목 시계와, 밑창이 떨어지고도 못으로 직접 수선해 신고 다니던 소가죽 구두 따위의 사소한 것들 말이야. 그렇게 나는 네 유해 앞에서 한참 시간이 지난 뒤에야 너를 다시 만나게 된 것이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너는 참으로 아늑해 보이더구나. 이미 벌레들의 집이 되고, 이끼를 이불처럼 덮고 누운 네 유해의 모습에서 나는 그제서야 네가 네 자리를 찾았다고 생각하고 말았단다.

    나는 이제 이해한단다. 이 모든 것은 너의 잘못이 아니었던 거야. 너는 죽은 것도, 그렇다고 살아 있는 것도 아닌 채로 그 오랜 세월을 홀로 견뎌온 거야. 해가 뜨고 지는 저 순환 속에서도 감동을 느끼던 네 여린 감수성이, 하늘이 보이지 않는 이 어두운 숲 속으로 이끈 거야. 용암처럼 네 피부 안에서만 흐르던 피가 밖으로 솟아오른 그 작은 상처가 얼마나 큰 고통이었는지, 나는 몰랐던 거야.

    나는 너와 닮았기에 눈물로 슬퍼할 줄을 모른단다. 절제 없이 흐트러진 별들 속에서도, 해와 달의 순환 속에서도 너를 찾지 않는단다. 그저 하수도 밑에서 올라오는 어둡고 습한 바람 속에서, 누군가의 발에 밟힌 으깨진 개미의 파편 속에서, 나는 그곳에서 너를 만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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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의 운율과 표현 <1>

    최근에 소설 집필 작업에 있어, 운율과 표현, 민속학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다.
    그림 형제가 그랬듯이, 또 대부분 뛰어난 문학가들이 그러하듯, 나도 그런 흉내를 내고 싶게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내 소설에 여러 실험적인 표현들을 사용하게 되었는데, 이에 관해 기억나는 대로 적어보려 한다.
    혹시나 나중에 어떤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1. 만년필을 눌러 쓰다.

    쓸까 말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사용한 표현이라 인상에 남아 있다.
    우습게도 그 문장을 어디 썼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아 찾지 못했다.

    기억으로 전문을 구성해보자면 아마,
    <만년필을 둥글게 눌러 썼다> 뭐, 이런 식의 표현이었던 기억이 있다.

    사실 이는 구조상 말이 되지 않는다.

    펜촉은 다뤄본 적이 있다면 알겠으나, 목탄이나 흑연과 달리 끝이 매우 뾰족하다.
    그런 상태에서 힘을 준다면 종이를 찢어먹기 십상이라, 오히려 섬세한 힘 조절은 교양이다.

    또, 압력을 받으면 끝이 갈라져서 잉크가 묻어나오는 구조상, 힘을 주게 되면 그만큼 넓게 벌어지게 되는데, 많은 잉크가 나오는 탓에 종이에 번지거나 튀기도 하는 것이다. 가독성이 떨어지는 건 물론이고 말이다.
    (삼투압 어찌구 저찌구.)

    그러니 이 표현은 비상식의 영역에 있다.
    굳이 이런 표현을 사용한 것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당시 ‘둥글게 눌러 쓰다’라는 표현을 쓰고, 너무나도 심취하여 꼭 쓰고 싶었기 때문이고,
    둘째는 현대인은 만년필의 구조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 대부분일 테니 사소한 오류는 눈에 띄지 않을 거란 생각이었고,
    셋째는 없지만 운율을 맞추기 위해 넣었다.

    소설은 정보의 정확성보다 문장의 재미가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2. 1번을 쓰다가 여기 뭘 쓰려 했는지 까먹음. 적당한 예시가 있었는데!

    3. 우주인, 외계인

    최근 작성하고 있는 에피소드에서, 나는 굳이 Alien을 우주인이라고 표기했다.
    그리고 이건 (번역에 대한 교육은 받은 적 없지만) 나의 번역 철학에 위배된 번역이다.

    물론 의미상 우주인도 Alien의 역할을 할 수는 있으나, 개인적으론 Spaceman 혹은 Astronaut에 가까운 개념이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外界는 완벽하게 Alien의 의미를 관통하고 있으니, 굳이 사용하겠다면 외계인 쪽이 옳았다.

    그렇지만 쓰고 났을 때, 외계인은 아무래도 볼품 없이 보였다.
    그리고 또, 외계인과 우주선은 운율상 어울리지도 않았다.

    그래서 몇 번 고민하다가 결국 우주인이라는 표현을 채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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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적 작업 : 줄넘김

    웹소설로 쓰인 글을 서적화하며 줄넘김하는 작업이 이렇게 어려울 줄은 몰랐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1~2 문장, 기껏해야 3 문장 내외로 문단을 설정하는 만큼,

    각 문단의 주제는 2~3 문장 단위로 단절되는 것이다.

    다른 주제를 가진 문단을 합치는 게 자연스럽게 보일 리가 없다.

    결국에는 문장을 다시 쓰게 되는데,

    이렇게 한다고 해도 서사 자체가 짧은 호흡에 맞춰진 만큼,

    각 문단의 이음부가 제 것이 아닌 것처럼 어색하다.

    작업량도 작업량이지만, 기한 제한이 붙는 일이니 만큼,

    아무래도 피곤하다. 출판 계약을 섣불리 결정했다는 생각이 든다.

    +

    하다보니 작업은 되게 재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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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이 비처럼 내린 날

    어떤 날은 별이 하루종일 쏟아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보통은 3~4시간 정도 쏟아지다 말았다. 처음에는 종말을 외치기도 하던 사람들은 빠르게도 담담해졌다. SNS와 동영상 사이트의 최상위권을 차지하던 별의 향연은 하늘을 올려다보면 언제든 볼 수 있는 흔한 것임을 알게 된 이후로 누구도 관심 주지 않았다. 그저 하늘보다 모니터를 보는 것이 편한 몇몇의 사람에게만 지속적인 수요가 있었다.

    누구도 그것들이 어디서 오는지 몰랐다. 바다 건너의 대단한 나라의 대단한 과학 기관에서는 정보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던가 하는 음모론 같은 것이 떠돌았지만 실제로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별들은 찰나에 내려왔다, 불타서 사라졌으니까.

    사람들은 그렇게 하늘에 관심을 잃었다. 우주는 가장 아름다운 속살을 너무 쉬이 보여줬기에 더이상 호기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랬기 때문에, 그 속에 숨어 다가오던 분명한 실체를 누구도 깨닫지 못했다.

    별이 떨어진 것은 태평양 어느 바다라고 했다. 지금껏 없었던 거대한 쓰나미가 일본과 호주, 미국 서부를 강타했다. 하늘은 어두운 재와 불길로 가득했고, 오로지 저 너머에 흐릿한 별의 흐름만이 보였다. 바다는 끓기 시작했고, 그 여파는 지구 반대편에도 닿았다.

    사람들은 지구에 가망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결과, 과학 기관은 이 상황을 타개할 유일한 방법으로 대담한 탈출을 감행했다. 그들은 이것을 통과하면 지구가 안전하던 과거로 갈 수 있다고 설명하며, 반드시 과거의 지구에 이 재앙을 경고할 것을 당부했다.

    더이상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게 되자 사람들은 그것을 향해 몸을 던졌다. 지금은 볼 수 없게 된 푸른 지구를 본 사람들은 환호하며,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무 높지 않은가.

    어떤 날은 별이 하루종일 쏟아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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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분 만에 써낸 날 것.

    역시 이런 게 좋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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