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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4월 21일 – 6년의 침묵과 고도화된 피로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문인 중에서도 기이한 경력을 가진 폴 발레리가 집필과 단절하여 지낸 세월은 거의 20년에 이른다. 나는 동년의 작가들이 금자탑을 쌓는 동안, 삶과 재능을 한없이 허비했다.

    그렇기에 폴 발레리인 것이다. 오직 그만이, 나의 저열한 열패감과 6년이라는 경력 단절을 위로해 준다. 하지만, 내가 폴 발레리인가? 최인훈도, 피츠제럴드도 되지 못한 내가.

    최근, 나는 고도화된 피로를 느낀다. 이렇게 말하면 꽤 훌륭한 것처럼 들리지만, 그 본질은 언어화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고 문장을 매개로 다루는 우리 같은 족속들에게, 언어화가 어렵다는 것은 실로 나태하고, 별 볼 일 없는 것이다.
    (혹은 그만큼 가치가 없거나)

    어쨌거나, 나는 전에 없이 고도화되어 있다.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세월이 얼마나 무자비할 수 있는지 보았다.
    20년의 시간이 antihoney에게서 무엇을 빼앗았는지 보았다.

    바람이 분다. 그렇지만, 살아야 할 이유는 어디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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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여러분은 왜 태어났습니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오늘 키보드 자판의 ALT키가 사라졌습니다. 쏟은 커피를 닦는다고 하여 뽑아놓은 게 바닥에 떨어지더니 그대로 사라지고 만 것이지요. 제가 작가가 되었다며 큰맘 먹고 마련한 30만원짜리 키보드는 졸지에 한푼 값어치도 없는 결함품이 되었습니다.

    제 키보드에는 자판 버튼이 104개 있는데, 단 하나 빠진 것으로 그렇게 가치를 잃은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인간으로 한없이 결함되어 있는 저는 얼마나 가치 없는 존재일까요.

    생식과 번식을 혐오하는 저는 생물로서도 결함되었고, 유희를 즐기면서도 죄악감을 품는 저는 인간으로서도 결함되어 있습니다. 누구도 제가 태어나는 걸 바라지 않았고, 인간 사회에 있어서는 해밖에 끼친 적이 없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ALT키가 사라진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책상 아래로 떨어져서 갈 곳도 없는 그것이 어디에도 없는 것이야말로 결함은 필연이라는 의미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간혹 저는 파멸적인 망상을 품습니다. 제 두 손으로 사랑하는 생물을 안아서 창문 밖으로 떨어트리는 겁니다. 그러면 절 믿고 의지하던 그것은 아무 저항도 하지 못하고 무참하게 내장을 터트리며 핏덩이가 되겠죠. 어느 때는 제가 사랑해 마지 않는 장서에 불을 붙이는 상상을 합니다. 집에는 습기가 적고 먼지가 많으니 잘 탈 것입니다.

    저는 사후 세계를 믿지도 않고, 어떤 절대자의 존재도 믿지 않지만, 하느님께 제 팔과 다리를 잘라달라고 빌곤 합니다. 그래서 제가 자의로 무엇도 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들어 달라고 간절히 비는 것입니다.

    저는 이 글을 누구도 보지 않을 것을 압니다. 그럼에도 문장은 여러분으로 시작하며, 누군가 이 글을 봐주길 애타게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 의미는 저도 잘 알지 못합니다. 해답을 사유할 만큼 대단한 철학적 소양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렇게 뭐든지 되다 만 존재입니다.

전체글 작업 전생하고 보니 크툴루(완결) 단편 기타 유서 일기 수필 무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