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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쟝의 세 번째 이빨 (1)

    쟝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위대하고 아름다운 만남을 기억했다. 그건 6살 무렵, 딱딱한 빵을 씹던 때였다. 빵을 물어 뜯다가 평소와 달리 혀 근처가 허전하고 입에 찬 바람이 든다는 걸 깨달은 쟝은 즉시 자신의 몸에 일어난 변화를 체감했다.

    그 광경은 선명히 떠올랐다. 창밖의 바람이 불때마다 털지 않은 커튼에 쌓인 먼지가 방 안을 떠다니고, 정오 무렵의 햇살에 방바닥의 곰팡이가 선명하게 보이고, 물때와 케첩이 묻은 테이블과 낡은 의자, 거기 앉은 자신의 손에 들린 빵, 그리고 거기 박혀 있는 자신의 앞니.

    이가 이르게 빠진 잇몸에서는 피가 흘렀지만 쟝은 그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넋이 나간 채로 이빨을 몇 번이고 햇빛에 비춰보았다. 그날부로 쟝은 당시 가장 아끼던 유리 구슬이 든 병을 비우고, 그 안에 자신의 앞니를 소중하게 담아 놓았다. 그리고 같은 날 밤, 쟝은 부모님 몰래 실과 망치를 방에 가지고 들어가, 자신의 남은 이빨을 모두 뽑아버렸다.

    통증과 출혈로 어지러웠지만, 그의 병 안에는 피 묻은 19개의 유치가 전리품으로 들어 있었다. 너무 빨리 이빨을 뽑은 탓에 음식을 씹을 수 없었고, 쟝은 도시 한복판에서 거의 굶어 죽을 뻔했지만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하지만 그때 이후로 살이 붙질 않아서 살집이 있는 편이었던 쟝은 길가의 거지조차 손을 내밀지 않을 만큼 말라붙었다.

    그것이 그가 기억하는 첫 번째 변신이었다. 하지만 병을 채우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이빨은 지금보다 수십 배는 더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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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작년쯤 썼던 추리소설 도입부

    이사악 이고레비치 티냐노프(Исаак Игоревич Тынянов), 아니, 이제는 그저 이사악 티냐노프는 오랫동안 아리아인들과 피를 섞어온 조상들의 노력이 색바랠 정도로 유대인의 전형이였다. 검은 곱슬머리와 어쩐 일인지 5도 정도 기울어져 있지만 여전히 인상적인 크고 긴 코, 주근깨 박힌 얼굴과 말 끝마다 “하지만.”을 붙일 것같은 불만스러운 표정 등이 그러했다. 하지만 그러한 인상이 어찌되었건 그와 조금만이라도 함께 한 사람들은 모두 그가 좋은 의미건 나쁜 의미건 ‘일반적인 유대인’과는 상당히 동떨어진 괴짜인 것을 알 수 있었다.

    티냐노프 가(Тынянов 家)의 장남으로 태어난 이사악은 어릴 적부터 랍비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받으며 자랐다. 심지어 명절에만 간신히 만날 수 있는 몇몇 친척들은 이미 그가 랍비가 되었다고 생각하는지, 자신의 철없는 자식들의 손을 잡아끌며 그에게 찾아오고는 ‘지혜롭고 어른스러운 이사악’을 조금이라도 본받는게 어떻냐며 일장연설을 늘어놓곤 하였다. 그가 한 것은 사촌들이 양각나팔을 불어보겠노라 떼쓰는동안 가만히 식탁에 앉아 있었던 것이 다였기에 이는 명백히 과한 찬사였다. 이런 취급의 배후에는 아버지가 있었다. 그는 이사악의 손가락이 다 붙어있는지 확인하기도 전에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가 랍비가 될 것이라 소개했고, 심지어 즐기는 것이 분명했다. 그 때마다 이사악은 “응애”라던가, “으앙”이라는 말로 그것을 소극적으로 정정했을 것이 분명하지만, 그런 그의 노력은 아무래도 영 신통찮았는지 6살이 된 해의 로쉬 하샤나*에 처음 만난 고모로부터 들은 첫 인사는 “만나서 반가워요, 꼬마 랍비님.”이였다.

    (*유대교에서의 신년.)


    이사악의 아버지, 이고르 세르게예비치 티냐노프(Игорь Сергеевич Тынянов)는 내가 아는 한 가장 조용히 자는 사람이였다. 어릴 적, 그는 수 차례나 아버지가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아버지의 가슴팍에 귀를 가져다 대야만 했다. “너희 아버지는 힘든 시절을 견뎌왔단다.” 어머니, 안나 티냐노프(Анна Тынянов)는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이렇 듯이 아버지는 금욕적인 사람이였다. 심지어 그는 청교도적인 신념을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그에게는 더없이 모욕적일 것이라는 것은 알지만서도─ 가지고 있는 듯이 보였고,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몹시 경박한 것이라 여기는 게 분명했다. 자식인 이사악조차도 그의 웃는 얼굴을 떠올릴 수 없으니 말이다. 그렇게 절제된 감정 표현 속에서도 놀랍게도 그는 아버지에게서 그가 랍비 일을 이어줄 것이라는 강렬한 기대를 느낄 수 있었다. “가장 힘든 순간 의지할 수 있는건 유대인 밖에 없다. ” 그는 종종 말했다. “뿌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그리고는 자신이 유대민족의 정통성을 잇는 마지막 투사인 것처럼 비장한 표정을 보이고는 했다.

    그런 아버지와 달리 이사악은 우유부단한 사람이었다. 될 수 있는 한, 자신의 선택을 마지막까지 유보하려 하는 그런 사람이였고, 그렇기 때문에 그는 분노한 폭도들이 내던지는 맥주잔에 얻어맞은 후에야 무거운 엉덩이를 들고 러시아로부터 도망쳐 나왔다. 게으름의 대가로 그가 남들보다 5도 정도 비뚫어진 코를 가지게 된 것은 물론이다. 그런 그의 성격을 이해한다면 그가 친인척 한 명 없는 영국으로 망명을 선택한 것은 그렇게 놀랄만한 사실도 아닐 것이다. 그는 왕립주의자도 아니였고, 공산주의자 역시 아니였으며, 시온주의자가 아님은 물론이다. 그는 굳이 분류할 필요가 있다면 자신을 평화주의자로 분류하고자 했다. 물론 주변 사람들의 그에 대한 평가는 ─물론 사교와 거리가 먼 그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는 일은 거의 없었지만─ ‘샌님’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굳이 그런 세간의 평가를 정정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 요즘같은 시대에 목소리를 내기 위한 대가는 너무나도 크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고, 그에게는 시대를 풍운할 웅변의 재능보다 한 끼 식사를 식당에서 처음 만난 친구에게 대접받기 위한 달변의 재능이 필요했고 또 어울렸다.

    그렇다고 그가 지역 사회에 녹아들려 하는 노력을 게을리 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사악은 매 주 일요일마다 게마인데에서 랍비 아버지와 어울리는 대신 정교회의 성당에 방문해 미사에 참석했고, 수염을 단정히 면도하기도 했으며, 심지어는 바트 미츠바를 거부하기까지 하였다. ─유감스럽게도 이사악이 ‘응애’와 ‘으앙’ 외에는 자기변호 수단을 갖추기 전인 어린 나이에 이뤄진 할례는 막지 못했지만.─ 이 모든 것은 자신과 가문이 지역 사회의 일원이 되는데 기여할 것이라는 이사악의 우둔한 믿음 하에 시행되었으나 그에게 남은 것은 가문으로부터 의절 밖에 없었다. 물론 모두가 이런 처사에 동의한 것은 아니며, 그의 어머니와 동생은 특히나 그의 순수한 의도를 옹호하며 반대했으나 아버지의 마음을 돌려놓을 수는 없었다. 우습게도 그렇게 그가 홀로 10년을 넘게 살면서 삶에 고난이 닥칠 때마다 그는 익명으로 된 돈 봉투를 받을 수 있었고 그것이 아버지로부터 온 것이라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이사악 티냐노프는 ─더 이상 아버지의 이름을 댈 수가 없는 관계상 그는 자신의 미들 네임을 말하지 않았다─ 글을 쓰면서 살았다. 평생 몸 쓰는 일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지만 랍비의 아들로서 타나크와 토라를 받아 적으며 살아온 그였기에 그럭저럭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고, 주로 지역 신문에 광고나 칼럼따위를 써주거나 성당의 미사회에서 성경을 필사하거나 학교에서 아이들이 읽을만한 글을 적어주는 그런 일을 하였다. 큰 성공과는 무관하지만 사소한 보람과 그보다 미비한 보수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런 수수한 그의 삶에 문제가 생긴 것은 1차 세계대전이 발생한 후였다. 수많은 러시아 남성들이 착출되어 전쟁터에 내몰리는 와중에도 이사악은 묵묵히 자신의 일을 이어 나갔고 그것이 지역 사회에서 그를 고립시키고 말았다. 허나 그에게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유대인인 그가 군대에 입대하면 어떤 차별을 받을 지는 상상만 해도 두려웠고, 또한 그 본인의 본성부터가 군인의 계율과 폭력성에는 맞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 이후부터 그에게 주어지던 일들은 거의 다 사라졌고, 곧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형편이 되었다. 은연 중에 주어지는 집안의 지원만이 유일한 밥줄이었고, 이사악은 그 사실을 못 견뎌하면서 일이 없어 넘쳐나는 남는 시간동안 자신을 위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언젠가 문호로 성공하면 일을 받지 못해도 먹고 살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적백내전이 시작되면서 그의 소박한 꿈마저 완전히 좌절되고 말았다. 특히나 유대인들에게는 괴로운 겨울이 시작되면서 가문의 지원을 받을 수 없게 된 그는 차별을 피해 러시아를 떠날 수 밖에 없었다. 떠나기 직전, 그를 유독 귀여워 했던 고모가 찾아와 손에 편지를 쥐어줬다.

    “미국으로 가렴. 글을 쓰고 싶다며? 그곳에는 우리 게마인데 출신의 어른 한 분이 출판사를 하고 있단다. 이 편지를 보여주면 일을 맡겨 주실 거야.”

    늘 이런 식이었다. 이사악은 다른 답안을 내놓지 않았다. 그저 고모가 소개해준 이름도 모를 타인을 믿고 열차에 몸을 실어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해 영국행 배에 탑승한 것이었다.

    웹소설 입문을 위해 두 번째 써본 장편 소설의 도입부.

    글 자체는 내 취향이지만, 집필 기술이 부족하여 번역체나, 국내 출판 문법에 맞지 않는 표현인 다수 보인다.

    전작 좀비 소설과 마찬가지로, 웹 플랫폼에 대한 이해도가 전혀 없는 내용.

    도입부 내용을 응용하여 또 다른 역사 소설을 하나 쓰면 재밌겠다고 생각하지만, 그 역시 상업성은 없어 보여서, 부업과 병행하여 연재하지 않을까. 지금은 본업에 집중해야 하지만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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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생은 안될지도 몰라

    어릴 적의 이야기다. 초등학교에서 왕따를 당해 다른 지역의 중학교로 진학한 나는 별로 친구가 많지 않았다. 이미 완성된 그룹에는 끼어들 틈이 별로 없었고, 괴롭힘당하는 기간이 길어 음울한 쪽으로 변질된 성격을 받아줄 만한 아이도 없었다. 특별한 괴롭힘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좋은 일도 없었다. 나 홀로 반에서 떨어져 있는 존재인 것처럼 시간만이 흘렀고, 1학년을 마치며 반에서 진행한 롤링 페이퍼에는 두서없는 웅얼거리면 밖에 없었다.

    수준이 떨어져서 도저히 못 어울리겠네, 나는 이런 식으로 생각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만큼 착한 아이들도 없었지만, 당시의 나만이 그것을 몰랐다. 2학년에 올라가도 딱히 바뀌는 것은 없을 거로 생각했다. 그렇지만 반이 바뀌고 한 달이 지날 무렵 특별한 변화가 생겼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서로서로 의식한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자주 엮이는 아이가 있었다. 이유는 눈치 없는 내가 봐도 명확했다. 그 아이는 나와 닮아, 마치 세상에서 도려져 있는 듯한 그런 아이였다. 그런 둘이었기 때문에 조를 짜도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자리에서 밀려나고 밀려난 끝에 서로 구석에서 짝을 맺기도 했다. 우리 둘만이 다른 세계에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그 아이만큼은 가깝게 지낼 수 있었다.

    이상한 아이였다. 항상 무언가를 노트에 휘갈기고 있지만 엿보면 엉성한 각지지 않은 도형 같은 것을 그리고 있을 뿐이었고, 혼잣말이 많지만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나는 그 아이를 깔봤다. 이러니 친구가 없는 거겠지, 그런 식으로 크게 다르지 않은 처지이면서도 자신이 그 아이를 동정하고 가르치는 것에 우월감 따위를 느꼈다. 그것은 우정이라 부를 수도 없는 추잡한 것이었다.

    그런 식으로, 여전히 누구와도 어울리지 못한 채, 또 다른 한 해가 지났다. 2학기 말, 겨울쯤에 그 아이가 어느 때나 마찬가지로 중얼거렸다.

    “역시 이번 생은 글렀나….”

    그 무렵, 그 아이의 혼잣말에 끼어들어 핀잔주는 것이 습관이 든 나는 자연스럽게 끼어들었다.

    “바보야, 죽으면 끝이거든. 이번 생밖에 없거든.”

    그렇게 말하자, 그 아이는 지금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무서운 표정으로 나를 노려봤다. 항상 뜨인 듯, 닫힌 듯했던 작은 눈은 크게 벌어져 한 번도 전부 보인 적 없는 둥근 홍채를 만연히 드러냈다.

    “아닌데.”

    화내는 듯이, 놀란 듯이, 종잡을 수 없는 듯한 울분이 섞인 어투로 그 아이가 말했다. 나는 그 아이의 본 적 없는 반응에 속으로 크게 놀랐지만, 그것을 표현하면 지는 것 같다는 아집에 빠져 애써 태연한 척 대답했다.

    “사람은 죽으면 끝이거든? 영혼 같은 건 없어, 다 뇌가 생각하는 거니까, 살아있는 거야, 바보야.”

    “아닌데. 나는 처음 아니거든.”

    이상한 말이었다. 우리는 사실 서로 대화를 하고 있지 않았다. 그저 의미 없는 문장을 우악스럽게 교환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나는 그 말만은 사실처럼 여겨졌다. 그 말에는 분명히 강렬한 믿음이 담겨 있었고, 우리의 빛깔 없는 대화에서 유일하게 빛났다.

    “어? 그러면, 너는 죽었어?”

    무식한 질문이었다.

    “응, 몇 번이나, 제법 예전에.”

    그런데 그 아이의 대답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그 날부터였다.

    그 아이는 자신의 과거에 관해 이야기 하기 시작했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는 거기에 꽤 심취했던 것같다.

    그 아이가 말하기를, 자기는 몇 번이나 환생을 거듭해 오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에 지었던 죄가 원인으로, 무언가 중요한 목적을 가지고 계속해서 환생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이번 몸은 태어나면서 뇌를 다쳐 전생에 대한 기억이 대부분 날아가 버렸고, 그것을 기억해내기 위해 평소에 혼잣말하거나 도형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역시 이번 생에는 안될 지도 몰라….”

    그런 이야기를 나에게 며칠에 걸쳐 장황히 설명하며, 그 아이는 매번 그렇게 말을 끝맺었다. 자신이 잊고 있는 사명이 너무나도 중요한 것이라서 어떻게든 기억해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또 잊고 있는 것이 무서울 정도로 위험한 것이라면서 그 아이는 매번 매번 그런 식으로 말했다.

    “그러면 어떻게 할 거야?”

    “응… 이 뇌로는 안될지도 몰라. 몸을 바꿔야지.”

    그 아이의 이야기에 어느 새 심취한 나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었고 어떻게든 이야기의 뒷 내용을 듣고 싶어서 부탁했다.

    “그러면 다시 태어나면 나를 만나러 와줄래? 나는 쭉 여기서 살게.”

    내 부탁에 그 아이는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마치 살아 있는 생선이 썩어 문드러지는 그런 모습으로.

    나의 부탁이 그 아이에게 어떤 결심을 하게 만들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학기가 끝나고, 겨울 방학이 끝난 뒤에 그 아이는 자리에 없었다.

    그 아이가 죽은 이후로 15년이 지났다.

    처음에는 슬퍼하거나 놀라는 주변 사람들이 우습게 여겨졌다. 그 아이는 시간이 지나면 다시 태어나서 나타날 텐데. 언제쯤 성장해서 나를 만나러 와줄까, 한참 먼일인데도 기대하는 마음으로 날마다 보냈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점점 성숙해지며 스스로 어떤 짓을 한 것인지 이해하고 말았다. 그 겨울날의 대화들, 허황된 망상과 구조 요청들, 나는 그렇게 그 아이를 놓아 버리고 말았다는 것을.

    내가 아직도 그 아이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나는 그 시절이 걸려 있는 중학교를 벗어나지 못한 채 매일 같이 그 길을 지난다. 무언가 잡아당기고 있는 것처럼 어디로도 가지 않은 채 그 아이를 기다리고 있다.

    슬슬 말할 수 있을 나이일 터다, 혼자 돌아다닐 나이일 터다, 올해면 초등학교에 입학했겠거니… 그렇게 살아있지 않은 아이의 유령을 보며 매일 같이 기다리고 있다.

    그렇지만 역시 이제 안될 지도 모르겠다.

    문피아 취향의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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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산

    “은하씨는 자세가 안좋네.”

    갑자기 매니저가 말했다. 유니폼을 갈아입고 집에 가려던 은하는 어정쩡한 자세로 멈춰선 채로 그를 돌아봤다. 가는 것도, 멈춘 것도 아닌 그녀의 모습에도 아랑곳 않고 매니저는 혼자 말을 이어나갔다. 그녀가 듣고 있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는 두 손을 배꼽 위로 포개 얹었다.

    “봐요. 인사는 이렇게 하는 건데.”

    그리고 그 두 손을 그대로 올려 복부도 가슴도 아닌, 가슴뼈 사이에 위치한 이름 없는 그곳에 올렸다. 차라리 심장에 가까워 보였다.

    “은하씨는 이렇게 하잖아.”

    그가 허리를 숙였다. 꼭 아픈 사람 같았다.

    “봐요. 은하씨. 인사는 얼굴이에요.”

    매니저는 무언가 불편한 이야기를 해야 하면 꼭 이렇게 말했다. 봐요. 봐요, 은하씨, 화장이 너무 진하지 않아요? 봐요, 은하씨. 굽이 너무 높지 않아요? 이런 식이었다. 무엇을 보라고 하는 걸까. 은하는 그의 말버릇이 어디서 나왔는지 궁금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대신에 최대한 미안한 표정을 지은 채 그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시늉을 한 것이다. 은하는 그럴 때마다 자신이 언제까지 이 일을 이어나갈 수 있을지 속으로 점쳐보았다.

    처음에는 3년을 생각했다. 그 정도 일하면 다른 정말 가치 있는 일을 준비할 시간을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다 그 시간은 곧 2년으로 줄었다가, 1년까지 줄었다. 그런데 그마저도 아득히 멀게 느껴져 아연 해지곤 했다. 결국 그 각오는 ‘여름휴가까지만’이 되었다, ‘추석까지만’이 되었다, ‘올해까지만’이 되더니 지지부진하게 2년이 흘렀다. 이제는 정말 목표했던 3년이 눈앞으로 다가오니 그만둘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봐요, 은하씨, 얼굴이 멀쩡하면 인사도 잘해야죠.

    은하는 뒷문을 통해 호텔을 빠져나왔다. 호텔 벽면을 바라보니 금색으로 도금된 國際라는 글자가 가로등 불빛을 받아 번쩍였다. 그 아래로는 The International이라는 영문자가 주석처럼 새겨져 있었다. 은하는 그것이 촌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은하와는 다른 문화권을 공유하는 외국에서 온 손님들은 그것이 멋지다고 생각하는지, 은하는 종종 그곳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손님들을 볼 수 있었다. 심지어 필요 없어 보이는 그 주석마저 나름 의미가 있었는지, 은하는 종종 손님들의 대화 사이에서 “international hotel”이라는 단어를 잡아내곤 했다. 그런 문화권의 손님들과는 ‘밟지 말아주세요. 잔디가 아파해요.’라는 표지판도 공유할 수 없었는지, 도금된 금색 문자 앞만 흙바닥이 휑하니 드러나 유독 흉물스러웠다. 은하는 이곳을 지나칠 때마다 저 도금된 문자가 누구의 노력으로 매일 저렇게 번쩍일 수 있는지 궁금했지만, 야간에 근무가 끝나는 그녀는 알 도리가 없었다.

    은하는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너무 노력한 나머지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은하는 배 언저리에 손을 가져갔다. 그렇지만 아무리 해봐도 손은 배로부터 조금 떨어진 허공 위를 맴돌았다. 무언가 중요한 것을 헤집는 느낌이 들어 도무지 손을 내려놓지 못했다. 토할 것 같았다. 은하는 그 원인을 알았다. 잊으려고 해도 그러지 못했다. 봐요, 은하씨. 사람은 넘어지면 일어날 줄을 알아야 해. 언제까지 넘어져 있으면 그 사람은 도태돼요. 들은 적 없는 이야기가 낯익은 목소리로 귓전을 헤맸다.

    불빛 하나 없는 밤이었다. 가로등이 없는 길인 것은 알았지만, 원래 이렇게 어두웠던가. 달빛 하나 내리지 않았다. 오늘이 며칠이더라, 삭월인가? 아니면 구름이라도 낀 걸까? 은하는 잠깐 생각해 봤지만 잘 떠오르지 않았다. 은하의 안에서 시간은 유동적이었다. 언제는 10일이었다가, 언제는 1일이 되는 그런 식이었다. 알아낼 방도가 없었다. 그렇지만 은하는 이 어두운 퇴근길만큼은 좋아했다. 사람 없는 길거리는 을씨년스럽기보다는 자신만을 위해 준비된 레드카펫처럼 느껴졌고, 거리를 떠도는 취객과 세상의 저변에 깔린 영혼들은 그녀와 철저히 무관했다. 그들은 그녀에 대해 알려고 하지도 않았고,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다. 간혹 맞닿는 살갗에서는 온기를 느낄 수 없었다. 은하는 그 거리감을 좋아했다. 세상과 자신이 동떨어져 있는 그 느낌을 좋아했다.

    은하는 그날을 잊으려고 했다. 그렇지만 완전히 망각의 영역으로 집어넣었다고 믿는 그 순간 아무런 전조 없이 되돌아와 그녀를 짓눌렀다. 그럴 때마다 유독 몸이 무거웠다. 유독 배가 무서울 정도로 당겨왔다. 은하는 무심코 두 손으로 배를 움켜쥐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장이 쏟아져 내릴 거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도무지 잡을 수 없던 배가 그럴 때면 잘도 잡혔고, 은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허무감에 몸을 떨었다. 아무리 잊으려 해도 무언가 중요한 것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았다. 시간이란 뜰채 같았다. 온갖 소중한 것들은 흘려보내고, 오로지 거품 같은 찌꺼기만을 남겼다. 그런 식으로 멍하니 상념하고 있자면 머지않아 흐리멍덩한 삶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갑자기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이라기보다는 영유아의 그것에 가까운, 매숨마다 생명을 짜내는 듯한 절박한 그 소리에 은하는 놀라서 깨어났다. 은하는 그제야 자신이 전철에서 잠들었다는 걸 깨달았다. 피곤했던 게 틀림없다. 은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 넓은 지하철 칸에 자신 혼자 앉아 있었다. 자신을 깨운 울음소리는 온데간데없었다. 은하는 서둘러 창 밖을 내다보았다. 창 밖에는 모노톤으로 잠식된 논이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저 너머로는 산이라기보다는 삼각형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검은 덩어리들이 흐릿하게 비춰 보였다. 너무 오래 자 버린 것이 아닐까, 은하는 내려야 한다는 생각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전철은 멈출 생각을 하질 않았다. 마치 이 세상이 아닌 다른 곳을 향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애기 엄마, 애기 엄마.”

    은하는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분명히 아무도 없었던 노약자석에는 언제부터 앉아 있었는지 한 노파가 앉아 은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척 봐도 그녀의 어머니보다도 나이 든 노파는 무엇보다 시간과 싸우고 있는 것 같이 힘들어 보였다.

    “저 애기 엄마 아닌데요.”

    노파는 이상할 정도로 낯이 익었다. 은하는 어디선가 본 적이 있나 떠올려 봤으니 짐작 가는 부분이 없었다. 오히려 비교하자면, 자신이 늙으면 이런 모습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파는 당장 숨이 넘어가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모습으로 헐떡이며 말을 이었다.

    “아이, 아이 놓고 갔어, 애기 엄마.”

    “그러니까, 저 애기 엄마 아니라니까요.”

    은하는 방금 전에 들었던 아기 울음소리가 떠올랐다. 환청이 아니었던 걸까. 그렇지만 아무리 둘러보아도 아기가 보이는 일은 없었다. 왠지 기분 나빠졌다. 노파는 연신 “애기 엄마, 애기 엄마” 하고 되풀이할 뿐이었다. 빨리 전철에서 내리고 싶었다. 그렇지만 전철은 계속 끝을 알 수 없는 어딘가로 달려갈 뿐이었다.

    “그러니까, 저 아이 없다니까요!”

    은하는 자신이 지른 소리에 놀랐고, 그 내용에 다시 놀랐다. 되돌릴 수 없는 죄악을 저지른 것 같았다. 노파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은하는 그 표정이 낯익었다.

    “그럴 리가 없어, 그럴 리가 없어….”

    노파가 중얼거렸다. 은하는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정말 그럴 리가 없었다. 뒤로 물러나던 은하의 등이 지하철 자동문과 맞닿았다. 은하는 무심코 뒤를 돌아보고 비명을 질렀다. 검은 차창에 비추는 것은 자신의 얼굴이었다. 그것은 놀라울 정도로 노파를 닮아 있었다. 노파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엄마, 엄마.”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은하는 핸드백을 들어 노파의 머리를 내리쳤다. 둔탁한 감각이 손끝에 퍼졌다. 사람이라기보다는 육편을 때리는 것 같았다. 은하는 쓰러진 노파를 계속해 내리쳤다.

    “난, 난 너 같은 자식 없어!”

    “엄마, 엄마!”

    노파의 목소리는 어느새 초로의 여성의 것이 되었고, 그 목소리는 곧 중년 여성이 되었다. 엄마, 엄마. 그러다가 은하와 비슷한 목소리가 되기도 했고, 성숙한 학생의 것이 되었다. 엄마, 엄마. 그러더니 다시 풋풋한 청소년의 목소리가 되었다가, 어린 소녀의 것이 되었다. 엄마, 어마. 이빨이 빠지기라도 한 듯이 그 발음이 점점 흐려졌다. 아기의 울음소리. 그 소리마저 점점 줄어들어 둔탁한 고기 때리는 소리만이 남았다. 육편이라기보다는 갈린 고기를 때리는 것 같았다.

    “왜 태어나지도 않았잖아… 나한테 왜 그래… 태어나지도 않았잖아….”

    형체가 남지 않은 붉은 덩어리를 은하는 계속해 내리쳤다. 내장의 파편. 태반. 태아. 육편.

    “은하씨.”

    “은하씨!”

    은하는 눈을 떴다. 매니저가 웃으며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래, 인사는 그렇게 하는 거지.”

    은하는 고개를 내렸다. 두 손이 배꼽 위에 곱게 포개져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 써본 단편.

    너무 어수룩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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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키피디아 _ 제11천년기 이후

    ko.wikipedia.org/wiki/%EC%A0%9C11%EC%B2%9C%EB%85%84%EA%B8%B0_%EC%9D%B4%ED%9B%84

    찬란한 저 별들이 힘껏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매마른 대지는 서서히 열사하고

    우주는 반복하지 않고, 세계는 언젠가 없는 것이 될 거란 진실을 외면하며

전체글 작업 전생하고 보니 크툴루(완결) 단편 기타 유서 일기 수필 무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