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으면 뇌수가 굳는다.
실로 곤란한 일이 생겼다.
갓 태어난 치와와 한 마리를 맡게 된 것이다. 태어난 지는 3개월 조금 못 되었으며, 검은 털이 배 쪽에 이르러 하얀 털과 만나 파도처럼 물결치는 모습이 꽤 멋스러운 장모견이다. 머리는 아주 좋아 단번에 소변을 가리고, 애교는 얼마나 많은지 처음 보는 사람 손도 잘 핥고 뛰어다니는 씩씩한 암컷 치와와이다.
하지만 어찌 됐건, 이것은 내게 아주 난처한 일이다.
집에 개를 들이고 첫날에 나는 악몽을 꾸었다. 다음날도 그러했다. 이것이 강아지와 관련한 일임은 구태여 설명할 필요도 없으리라. 예컨대 내용은 이런 식이었다.
어떤 형태로건 나는 이 아이가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할 것을 예측한다. 그것은 일종의 예지몽인데, 영원히 사는 생물은 없기에 저 델포이의 신탁보다도 적중률이 좋았다.
소크라테스는 죽는다. 저것도 영원히 살지는 못한다. 지금은 내 손만 봐도 좋아서 물어뜯고, 내 다리만 쫓아서 꼬리 흔들며 쫓아온다지만, 10년만 지나도 폭삭 늙어서 기운 없이 눈만 움직여 내 모습을 쫓다 말 것이다.
그러다 하루 이틀 서서히 약해지며 시름시름 앓다가 어느 이름 모를 병으로 고통스럽게 생을 마감할 것이다. 이것은 개중에서도 가장 희망찬 것이라 내게 기운을 준다.
혹은 이런 경우도 있다.
언젠가 내가 말 못하는 짐승을 돌보는 것이 질려, 저것을 수풀에 풀어주는 것이다. 그러면 이 불쌍한 것은 평생 제 어미라 따르던 자에게 버림받은 줄도 모르고, 그것을 이해할 때까지 검댕 묻은 몸으로 차도를 뛰어다니며 해본 적도 없는 사냥 따위를 흉내 낼 것이다. 그리고 평생 방보다 넓은 곳을 뛰어다녀본 적이 없는 탓에 쥐 한 마리 잡지 못하고 헥헥거리며 쓰러질 테지.
그것이 머잖아 굶어 죽거나, 추위에 동사하거나, 어떤 불운한 운전자에 의해 피치 못할 사고를 당하리란 사실은 분명하다. 야산의 늑대라면 그렇지 않겠지만, 이놈은 종자부터 펫숍에서 120만 원짜리 가격표 태그 탯줄을 목에 달고 유리창 안에서 자연 분만한 개체란 말이다.
어쩌다 개를 좋아하는 지인에게 파양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놈은 이미 내게 길들여지고 말았다. 나를 부모라 여기고 있기에 일평생 나만 쫄랑쫄랑 쫓아다닐 요량으로 꼬리를 흔들어 재끼던 놈이란 말이다. 그런데 그놈이 제 부모에게 버려지고, 내가 나갔던 낯선 현관을 응시하며 평생토록 나와의 재회를 기다리란 사실은 눈을 감아도 훤히 보였다.
강아지가 내 손을 핥고 물은 이후부터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되었다. 언제나 다 자라지 않은 이빨로 약하게 문 손가락의 감각이 지워지지 않고 남게 되었다. 10년이고, 20년이고 지난다고 지워질 흉터가 아니란 말이다.
죽음에 미학은 없다. 모든 것은 추하거나 비극적으로 죽는다. 내가 몸만 들썩여도 잠에서 깨어 어둠 속에서 날 올려다보는 저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는 그대로 얼어붙어 매번 저것의 주마등을 대신 본다.
그런 연유로 나는 아주 곤란하게 되었다. 정말로 곤란한 일이다.
자주 가던 카페가 문을 닫았다.
워낙 두문불출했던 탓에 오늘에야 알게 되었다.
공사가 진행된 것을 보아, 어제오늘 일 같지는 않았다.
별로 인상에 남지 않은 수수한 간판이었던지라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정갈하긴 하던 간판이 있던 자리에 대신,
한우국밥 7,000원
산더미불고기 9,000원
점심특선 쌈밥정식 8,000원
원색으로 형형색색한 간판이 들어서 있었다.
땡볕 아래서 사다리를 타고 위험한 작업하는 인부님들께는 죄송했지만, 그것이 어찌나 가증스럽게 보이던지.
키우던 물고기 주검 위에 올라탄 파리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그러고 보면, 어릴 적 키우던 물고기 색깔이나 종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일주일쯤 지나면 그곳에 카페가 있었다는 것도 까먹고 말겠지.
소박한 상실, 소박한 망각.
세상 일이란 게 그런 법이지.
아참, 그러고 보니 오늘은 흰 구름 사이서 먹구름을 봤다.
자글거리는 모양새라서, 먹구름이란 꽤나 눈에 띄구나 싶었다.
집에서 하루 늦은 일기를 발견했다.
이것은 도통 어디 쓰려 해도 쓸모가 없다. 앞으로 있을 일은 물론이고, 계획을 잡는 데도 도움을 주지 않는다.
그나마 쓸만한 곳이라곤 어제 있었던 일을 떠올리는 정도인데, 고작 하루 전 일은 지금 나도 충분히 기억한다.
그러니 정말로 쓸데가 없는 것이다. 기왕이면 하루 이른 일기였으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덕분에 나는 오늘 일기를 쓸 수 있게 되었다.
어제 일기를 찾지 못했다면, 오늘은 어제 일기를 적어야 했고, 내일도 어제 일기를 적어야 했겠지.
그런 면에서 아주 쓸모없는 과거란 없는 법이다.
그렇다고 한들 역시 어딘가 쓰려고 하니 마땅한 부분이 없어서 책장에 끼워놓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