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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6월 13일 – 그저 불쌍히

    나의 재능은 그리 대단치 않고,
    나의 비극은 그리 극적이지 않고,
    나의 고통은 그리 큰 것이 않음을,

    늘 염두하고, 겸허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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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아하는 구절

    얼마 전 나는 기막힌 감정의 불꽃에 사로잡혔다. 나는 히틀러에 관한 책을 뒤적이다 사진 몇 장을 보곤 감격했다. 내 어린 시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는 어린 시절을 전쟁 통에서 보냈다. 내 가족 중 몇몇은 나치 수용소에서 죽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의 죽음이, 되돌아갈 수 없는 내 인생의 한 시절,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해 줬던 히틀러의 사진에 비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러한 히틀러와의 화해는 영원한 회귀란 없다는 데에 근거한 세계에 존재하는 고유하고 심각한 도덕적 변태를 보여 준다. 왜냐하면 이런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처음부터 용서되며, 따라서 모든 것이 냉소적으로 허용되기 때문이다.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이재룡 역)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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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6월 4일 – 시끄러워

    심장 소리가 시끄럽다는 사실을 너무 일찍 깨달은 탓에 나는 영구적인 불면증을 겪게 되었다.
    그리고 선풍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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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6월 3일 – 한 근에 2100원

    누군가 보는 일기를 쓴다는 것은 참으로 기이한 기분이다.
    보여주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고, 숨길 방법이야 많지만 굳이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이는 푸주한의 사명이다.
    일찍이 나는 나 자신의 토막내어 시장에 전시해 두지 않았던가.

    비록 섬세하지는 않더라도 단호하게, 일말의 동정심도 없이 기계적인 동작을 수행해, 248조각으로 등분하여 지금도 자랑스레 고리에 걸어 전시해 두고 있지 않던가.
    신선한 고기는 푸주한의 자부심이고, 팔리는 것은 기쁨이어야 한다.

    때문에, 나는 속살을 드러내는 데에 거부감을 품어서는 안될 노릇이다.
    (거부감은 기쁨에 상반된 감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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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6월 2일 – 생각을 말하는 것은 공격적이다.

    사회에서 자신의 견해를 드러내는 것보다 공격적인 행위가 있을까?
    (폭력이나 욕설 등의 반사회적이지 않은 행위에 한하여)

    이는 나만의 생각도 아니고, 또한 참신하거나 새로운 관점도 아니다.
    작은 사회에서는 가십(뒷담)과 같은 형태로 나타나고, 큰 사회에서는 정치의 형태로 나타난다. 둘 모두 여지없이 폭력적이라는 사실에 반박할 사람은 드물 테지.

    하지만 이것은 사회에 국한된다. 밀란 쿤데라는, 모든 도덕적 판단을 중지하는 것이야말로 소설의 도덕이라 주장했다. 문학의 세계에서는 윤리적 자태는 의미가 없기에, 한없이 창발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하는 것이다. 즉, 문학을 하며, 사회를 살아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그것은 도덕적으로도 옳지 못하며, 성립할 수도 없는 명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리고 또.

    버들나무의 잎사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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