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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9월 7일 – 불을 지펴야만 한다.

    나는 글을 벼리고 있다.
    지금은 몰라도, 한때는 분명히 그랬다.

    아주 긴 시간에 걸쳐, 구야자가 그랬듯이 삶을 땔감 삼아 날카롭게 벼려내고 있다.
    내가 만들고자 하는 것은 흉기이고, 구야자의 태도는 몹시 본받을만하다.

    그저 날카로울 뿐이어서는 의미가 없다.
    흉기는 찔러서야 완성이 된다.

    찌르는 부위는 눈이 좋다. 귀나, 손은 안 된다. 오직 눈이다.
    안구 깊숙이 박아 넣어 그대로 뇌 속을 헤집어 놓을 것이다.

    뾰족한 날 끝을 해마에 대어 상처를 낼 테다.
    그렇게 읽는 이의 뇌 한켠에, 지울 수 없는 흉터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좀 더 날카로운 글이 필요하다.
    사람의 망막과 대뇌는 아주 두껍고 질겨서, 무딘 글로는 뚫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아주 서둘러야 한다.
    화로의 불이 완전히 꺼지기 전에, 더는 지필 수 없게 되기 전에, 찌를 사람이 사라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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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8월 29일 – 2020년처럼 살기

    피치 못할 사정으로, 회사에서 3일간 생활을 하게 되었다. 아주 간만에, 2020년처럼 자고 일어나서 글을 쓰는 생활을 반복하게 된 것이다.

    체감에 대해 말하자면, 어째서 이 즐거움을 잊고 있었는지 자기 스스로에게 되물을 만큼 만족스러웠다. 모든 고민에서 해방되어, 오직 한 자리에 앉아 수십 시간씩 글을 쓰는 생활은 너무나도 즐겁다.

    또한, 나오는 글의 양도 평소의 수 배에 달한다. 이것이 나의 평시였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껏 쓰지 못한 글들이 너무나도 아깝게 느껴지고 마는 것이다.(존재한 적도 없고, 존재했으리라는 보증조차 없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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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8월 25일 – 블로그 갱신은 쉽지 않다.

    나는 이 공간이 생산적이거나, 그러지 못하다면 밝고 즐거운 화제를 논하길 희망한다.
    지금 시대에는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스스로 우울한 이야기를 찾아보지 않기 때문이다. (나 또한 그런 것을 제공하고 싶지 않다.)

    생산적인 이야기라고 하면 작업물에 관한 것일 텐데, 이것은 쉽지 않다.
    적잖이 품이 들어가는 것은 물론이고, 이미 나는 연재하던 시절에 비해 여러모로 완결되어 버린 사람이 된 탓이다. 그 시절의 기억을 어렴풋이 더듬어 설명한다 한들, 이는 온전하지도 못할뿐더러, 독자의 해석에 무게를 두는 나의 철학에도 맞지 않다.

    그렇다면 즐거운 이야기를 논해야 할 텐데, 이것 또한 어렵기는 매한가지다. 나는 밝은 사람이 아닐뿐더러, 구태여 즐거운 일을 찾아다니지도 않는다. (한 번은 매일 있은 일을 그대로 나열하여, 수 년, 수십 년 후에 현장감 있는 역사물 사료로 써보고자 하는 생각도 있었으나, 내 일상에 아무런 변화도 없다는 걸 깨닫고 관두고 말았다.) 일생을 일하며 보내고 있으며, 일에서 수반하는 감정은 대체로 즐겁지 못하다.

    무엇이든, 일단 너무 바빠서 도저히 일기나 수필을 쓰겠다는 마음까지 이어지지 않는 것이 크다. (마지막 일기가 1달 전이라는 것이 믿기질 않는다. 이래서야 월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음, 일단 무엇이든 올리고 싶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어, 이것이 그 무엇이든에 속하는 것이지만, 같은 이야기를 두 번 할 수는 없는고로, 다음에는 무슨 이야기를 하게 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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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7월 23일 – 증발

    증발, 한때 나는 이 단어를 대단히 무서워했지만, 지금은 거의 홀려 있다.
    이는 공포와 선망이 한없이 다가서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오늘 내가 이 아름다운 현상에 심취해 있다가도, 막상 내일이 닥치면 죽음을 앞둔 노인처럼 두려워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지금 내가 증발을 선망하는 것은 부정할 도리가 없다.

    완전한 소멸. 완전한 상실. 완전한 망각.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그렇게 보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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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6월 17일 – 퇴근

    힘들어.

    이상하다. 회사 다니면 좀 더 안정적이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게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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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6월 13일 – 그저 불쌍히

    나의 재능은 그리 대단치 않고,
    나의 비극은 그리 극적이지 않고,
    나의 고통은 그리 큰 것이 않음을,

    늘 염두하고, 겸허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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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6월 4일 – 시끄러워

    심장 소리가 시끄럽다는 사실을 너무 일찍 깨달은 탓에 나는 영구적인 불면증을 겪게 되었다.
    그리고 선풍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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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6월 3일 – 한 근에 2100원

    누군가 보는 일기를 쓴다는 것은 참으로 기이한 기분이다.
    보여주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고, 숨길 방법이야 많지만 굳이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이는 푸주한의 사명이다.
    일찍이 나는 나 자신의 토막내어 시장에 전시해 두지 않았던가.

    비록 섬세하지는 않더라도 단호하게, 일말의 동정심도 없이 기계적인 동작을 수행해, 248조각으로 등분하여 지금도 자랑스레 고리에 걸어 전시해 두고 있지 않던가.
    신선한 고기는 푸주한의 자부심이고, 팔리는 것은 기쁨이어야 한다.

    때문에, 나는 속살을 드러내는 데에 거부감을 품어서는 안될 노릇이다.
    (거부감은 기쁨에 상반된 감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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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6월 2일 – 생각을 말하는 것은 공격적이다.

    사회에서 자신의 견해를 드러내는 것보다 공격적인 행위가 있을까?
    (폭력이나 욕설 등의 반사회적이지 않은 행위에 한하여)

    이는 나만의 생각도 아니고, 또한 참신하거나 새로운 관점도 아니다.
    작은 사회에서는 가십(뒷담)과 같은 형태로 나타나고, 큰 사회에서는 정치의 형태로 나타난다. 둘 모두 여지없이 폭력적이라는 사실에 반박할 사람은 드물 테지.

    하지만 이것은 사회에 국한된다. 밀란 쿤데라는, 모든 도덕적 판단을 중지하는 것이야말로 소설의 도덕이라 주장했다. 문학의 세계에서는 윤리적 자태는 의미가 없기에, 한없이 창발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하는 것이다. 즉, 문학을 하며, 사회를 살아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그것은 도덕적으로도 옳지 못하며, 성립할 수도 없는 명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리고 또.

    버들나무의 잎사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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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5월 24일 – 피츠제럴드도 아니고

    피츠제럴드는 돈을 위해 글을 썼다. 평생을 그렇게 살았다.

    그는 할리우드에서 글을 썼다. 그리고 아주 많은 작품을, 단편들을 돈을 받고 써냈다. 이 때문에, 피츠제럴드는 항상 평가절하당했다. 하지만 사실은 어떤가? 문학이 돈과 분리되었던 시대가 진정 있기는 한가? 실로 기이하다. 자기완결을 위해 일생을 바친 극소수의 기인이 만들어낸 이미지에, 문학의 실체는 완전히 부정당해, 질식되어 소멸하고 만 것이다. 심지어 이 허무맹랑한 신기루에 홀려, 지금 같은 시대에도 수많은 젊음이 비실존하는 문학을 향해 허망한 투신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운 좋게도 나는 그 역학을 벗어났다. 해답 없는 탐미주의와 자아실현의 몽상에서 빠져나와, 오직 돈을 위한 글을 쓰게 된 것이다. 이는 내 경력이 일천하여 어떤 허물을 쓰는 데도 거부감이 없었기 때문이고(꽤 나중에 알았지만, 이것은 꽤 주요한 소질이었다.), 또 천만다행하게도 사람들이 사주는 글을 쓰는 법을 익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가장 주된 이유를 말하자면, 내게 아주 많은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그래서 지금은 어떠한가? 내 것이 아닌 채무는 끝났고, 나는 본디 그런 거금을 원치 않는다. (이 점에 한해서는 피츠제럴드보다 운이 좋다고 할 수 있겠지.) 긴 세월 억눌렸던 자아는 다시금 실존하지 않는 신기루(자아 실현, 작품, 문학)를 향해 나아갈 것을 호소한다. 밤마다 문호들(헤밍웨이, 도스토프옙스키, 미시마 유키오)의 허깨비가 내게 다가와 손을 내민다. 완전히 미친 짓이다. 하물며 나는 이제 젊지도, 진정 열의를 담아낼 글(신기루)을 쓸 수도 없을 뿐더러, 쓰길 원하는 지조차 알지 못한다.

    피츠제럴드는 돈을 위해 글을 썼다. 평생을 그렇게 살았다. 어찌 그랬을까.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