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기 대행 업체가 있고, 그들이 적어주는 일기대로 생활한다면,
굉장히 충실한 생활을 하게 되지 않을까?
업체는 일상 소재가 충실하지 않을 테니,
자극적이고 일탈적인 경험을 위주로 적을 테고,
그것들을 수행한다면 인생의 밀도가 높아질 테지.
(-테다체로 문장을 세 번 끝냈다!)
하지만 일기를 쓰는 일은 아주 귀찮으니까,
어느 업체도 감당하지 못할 일이겠지.
4월 24일분 일기를 구매합니다.
과거는 상처로 남는다.
뇌에 난 기억, LP판의 홈, 모래알이 스친 바위.
오늘도 내 몸에 상처를 새긴다.
넘치는 핏물과 고름에 말라 죽을 때까지.
‘언어는 사회적 약속이다.’
요즘따라 자주 보이는 표현이다.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의미가 아닌 사용법은 언어로서 적용되지 않는다는 의미로, 주로 남을 질책할 때 쓰인다.
최근까진 나도 여기 동의했지만, 언어학에 대한 관심이 깊어짐에 따라 명제에 의문을 품게 되었다.
언어라고 한들 결국엔 소리다. 그러면 언어와 무관하게 의미를 담을 수 있지 않을까.
의미가 없는 음성이라 해도, 듣기에 편하고 거북한 음성이 있을 터다.
그렇다면 그 단어는 그 자체로 의미를 전하니, 언어로 기능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
그래도 나는 먼 우주에서 말이 통하지 않는 손님이 찾아온다면,
저 별이 내게 온다면 피아노를 연주할 것이다. 에릭 사티가 좋겠지.
고독이 깊어진다. 잠은 늘고, 깜빡임은 점차 둔해진다.
허나 자기에는 이르다.
삶과 죽음 빛과 어둠 참과 거짓 존재와 비존재 비와 바다 술과 피.
인생이 질문한다. 너는 뭘 하고 있느냐고.
나는 단두대로 간다. 머리 아래로는 쓸모가 없고, 목 위로는 없는 게 낫다.
패턴과 불규칙. 마루바닥에 새겨진 글자.
“우울한 일요일.”
까만 호수에 뜬 시계엔 촉박하게 남은 호박처럼 붉게 타다.
깊고 짧되 하야지 아니한 청월의 바람이 애달프게 누르다.
소리말 울타는 갈밤에 비탈길 아릿디하여 흐르지는 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