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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예리 – 동물 시체에서 사는 아이(1)

    이 글을 읽는 사람 누구도 내 의도를 착각하지 않도록 서두에 명시한다. 나, 신예리는 정유진을 싫어한다. 좋아했던 적은 일생 한 번도 없었고, 그녀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단 한 번도 동정하지 않았다. 그런 그녀가 죽은 이상, 얕은 인연마저 끊어졌으니 더이상 관계자로 남고 싶지도 않아 이 글을 작성하고 있다. 즉, 나는 누구도 이 글을 보고 내게 연락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 아이는 그저 불쾌한 안개 같은 것으로 남아 있고, 그 자취가 나를 쫓는 순간, 그것은 그저 망령에 불과한 것이다. 나는 드디어 자유의 몸이거늘, 실체없는 망령 따위에게 사로잡힐 수는 없다.

    우리 가족이 K시의 빌라에 들어온 것은 내가 5살 무렵이다. 빌라 건물은 30년이나 된 낡은 것이라, 아무리 페인트를 칠하고, 벽지를 새로 발라도 덮을 수 없는 매캐한 냄새가 벽지 너머에서 새어 나왔다. 거대한 동물의 시체 속에서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건물 외벽에 주렁주렁 달려있는 돌출형 베란다는 뼈다귀 같았고, 거기 얹어진 커다란 에어컨 방열기는 여름마다 뜨거운 열을 사방으로 뿌려댔다. 그 당시에는 그것이 유행이었는지, 낡은 건물이 많은 K시 곳곳에서 그런 건물들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코끼리의 무덤에 대해 떠올렸다. 코끼리들은 죽을 때가 되면, 스스로 무리를 떠나서 대대로 조상이 숨을 거둔 무덤에서 때를 기다린다고 하지 않는가. 만약 아파트가 코끼리의 시체라고 하면 거기에 모여들어 사는 우리는 뭘까? 작은 쥐? 아니, 아마도 개미 같은 것이겠지.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살던 빌라에는 개미가 많았다.

    내 신세를 개미에 비유했지만, 사실 개미는 그런 것보다 거주민의 원수 같은 존재였다. 처음에는 그저 작은 소동처럼 보였던 개미는 사실은 더 심각한 문제였다. 개미는 집 안의 모든 그늘진 틈새 사이에서 줄지어 기어나왔다. 청소기를 돌리거나 약을 치고, 업체를 불러도 잠깐 모습을 감출 뿐, 한, 두 주가 지나면 전혀 다른 곳에서 기어 나오기 일쑤였다. 음식 부스러기라도 흘리는 날에는 개미 덩어리를 볼 수 있었다. 심지어 욕조에 물을 받자 개미가 둥둥 떠오르기까지 했다. 어렸을 적이라 어려운 이야기는 몰랐지만, 주민 회의 등에서도 진지하게 이 문제를 다뤘다는 것 같았다.

    어린 나는 아무리 쫓아내도 돌아오는 개미를 보고, 개미가 벽 사이에 산다고 믿었다. 벽지와 벽지 사이, 철과 콘크리트로 이뤄진 그 회색빛 공간을 굴처럼 뚫어 바글대며 행진하는 개미떼를 상상했다. 벽에 귀를 가져대면 사각이며 벽을 갉아 먹는 개미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상상 속에서 개미들은 뼈로 된 발톱으로 벽지를 긁으며 올라가고, 큰 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언제나 그 끝에는 비명과 울음소리가 뒤따랐다. 나는 결국 건물이 거대한 개미 집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이방인은 우리였다. 우리가 그들에게 얹혀살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충격적인 사실을 깨달은 이후, 나는 개미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개미들은 벽지 너머에서 작은 구멍을 뚫고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사방에서, 내 일거수일투족은 완전히 감시되고 있었다. 나는 혹시라도 밟아버릴까 싶어, 집 안에서는 언제나 바닥을 보며 걸었다. 가끔 실수를 가장해 바닥에 음식 부스러기 같은 것을 흘려 공물을 바치기도 했다. 대신에 밤에 내 몸을 갉아 먹지 말아 달라고 그들에게 간절히 아양을 떨어댄 것이었다.

    벽에 귀를 대면 언제라도 개미의 고함소리가 들려 왔다. 긁는 소리, 둔탁한 충격음, 웅성거림, 고함 소리. 마치 성인 남자의 목소리 같았다. 그 끝에는 언제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나와 비슷한 아이의 울음 소리.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정유진이 살던 집은 내 방과 벽이 맞닿아 있었고, 내가 개미의 것으로 생각한 그 공포스러운 소리는 모두 그 집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유진과 나는 언제나 같은 장소에서 만났다. 멀리 걷는 법을 배우지 못한 아이들이었기에 우리가 갈 곳이라곤 집 앞 놀이터밖에 없었던 것이다. 유진과 처음 만난 순간, 강렬한 동질감을 느꼈다. 우리에게는 도망자였다. 나는 개미로부터, 유진은 어른으로부터 도망쳐 나왔다. 우리 둘의 나이는 같았고, 키도 비슷했지만 그런 것은 사실 관계없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도 우리는 가까운 사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마주친 순간, 서로를 사슬로 얽매고 마는 그런 운명이었다. 그러나 나는 결코 그 아이와 친구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아이도 그 사실을 알았다.

    여느 때처럼, 나와 유진은 놀이터에 나와 있었다. 미리 약속한 것도 아니지만 거의 항상 같았다. 나는 언제나 감시당하고 있고, 유진의 부모님은 언제나 싸웠으니까. 같은 도피처를 공유하는 한, 우리는 영원히 떨어질 수 없었다. 그때, 나는 그네를 타고 있었고, 유진은 시소를 타고 있었다. 그것도 혼자서 말이다. 정말 멍청한 아이였다.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는 것은 불가능한 그런 아이였다. 나는 모른 척하며 혼자 그네를 탔다. 그러다 문득, 다리가 간지럽다고 느껴 고개를 내렸다. 다리 위에는 개미 한 마리가 내 몸을 기어 올라타고 있었다. 나를 거대한 먹이라고 생각한 건지, 나무와 헷갈리기라도 했는지 모를 일이지만, 나는 비명을 지르며 그네에서 떨어졌다.

    “왜 그래?”

    유진이 혼자 놀던 시소에서 뛰어내려 내게 달려왔다. 나는 제대로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아마 울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도 유진은 알았다는 듯이, 손가락으로 그 큰 개미를 붙잡았다. 그리고는 엄지와 검지로 짓이겨 죽였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 그로테스크한 환영이 떠올랐다. 늦은 밤이다. 침대 위에서 자고있는 내 몸 위에 검은 줄 몇 개가 그어져 있다. 잘 보니 줄지어 내 몸을 기어 올라온 개미떼였다. 그들은 성인 남자의 고함을 닮은 그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방 안에 그들이 만들어낸 거친 소음이 가득 차지만 나는 일어나지 못한다. 한 번은 아버지가 말했다. 너는 밤에 누가 엎어가도 모를 거라고. 그렇듯이 나는 자면 깨어나지 못하는 체질이었다. 개미들은 턱을 열어 내 피부를 찔러다. 사실 입처럼 보이는 개미의 가위 모양 턱이 먹이를 찢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턱 사이로 무수히 많은 작은 이빨이 들어있는 입이 오물거리고 있다는 것을 아는가. 그들은 내 살갗을 일제히 파고들고 나는 머지않아 잠옷과 백골만 남기고 사라진다. 내 몸은 개미들의 새로운 보금자리가 된다. 빌라 건물처럼 부패한 냄새를 뿜을 것이다.

    그런데 무신경한 아이는 아무것도 모른 채, 순진하게 죄를 저지른 것이다. 유진은 내가 우는 이유도 모르고 있는 멍청이였다. 그 아이는 나를 보며 그 멍청한 표정으로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 아무도 안 봤어.”

    개미의 피와 다리가 붙어 있는 손가락을 옷에 문지르면서. 나는 그 순간, 그 아이와 내가 돌이킬 수 없는 죄를 함께 저지르리란 예감에 사로잡혔다. 유진은 개미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타고난 괴물이었다.

    우리는 죄로 얽힌 관계였다. 죄인이자 영원히 서로 감시해야 하는 간수였다. 어머니가 항상 말하곤 하던 주 예수 그리스도마저 등 돌린 원죄를 타고난 것이다. 부모는 우리가 짊어져야 하는 죄였다. 어떤 자식도 제 부모를 선택할 수는 없었다. 부모는 우리의 죄였다. 하지만 나는 그 순간 알게 된 것이다. 유진은 나 대신 개미를 죽였고, 우리는 서로의 부모를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그날 그렇게 약속했다. 서로의 부모를 죽이자고.

    하지만 유진의 어머니는 집을 나갔고, 주민회의 주최로 끈질길 방역 끝에 빌라에서 개미는 사라졌으며, 유진은 죽었다. 나는 유학을 통해 집에서 떨어져 나왔다. 마침내 저지르지 않은 죄, 실체 없는 망령으로부터 해방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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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성태 – 현관

    「기자 방문 사절. 방문 시 신고함.」

    「사진 절대 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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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예란 – 하소연

    선생님은 예리를 찾아오셨다고 하셨죠? 그 아이는 여기 없어요. 외국으로 나갔거든요. 1년 전에요. 알고 계실 줄 알았는데. 미국에 있는 대학에 합격했거든요. 미네소타 대학교요. 알아보니까 미국 공대 중에 제일 높다더라고요. 걔는 다행히 제가 아니라 애 아빠를 닮아서 공부를 잘했거든요. 애 아빠는 자길 따라서 한양대에 들어가길 바랐는데, 그런 일이 있었으니 유학도 반대를 못 한 거예요. 애가 강해서 내색은 안해도 속으로는 상처를 많이 받았거든요. 어릴 적부터 친자매처럼 붙어 다니던 아이가 그렇게 끔찍하게 죽었으니까 말 안 해도 알죠. 거기다가 매일 같이 기자들이 들이닥쳐서 공부를 방해하지 않나, 방송국에서는 진을 치고 있지 않나. 마치 우리 애가 잘못한 것처럼 쫓아다니더라니까요. 아, 선생님 얘기는 아니에요. 그냥 그때 그랬다는 거죠.

    예리는 옛날부터 공부를 잘했어요. 그러니까 유진이랑도 친하게 지냈죠. 걔도 공부는 썩 잘했거든요. 그렇지만 예리만큼은 아니었어요. 오히려 예리가 걔한테 공부를 가르쳤을 거예요. 걔는 남 가르치는 걸 좋아했거든요. 선생을 하면 딱 좋았을 것 같은데, 성적은 됐는데 걔가 싫어하더라고요. 애는 딱 질색이라면서.

    유진이요? 걔도 참 딱하죠. 그렇게 착한 아이가 그런 사고를 당할지 누가 알았겠어요. 애 엄마도 야박한 게 어떻게 애가 그 꼴이 났는데 얼굴 한 번 안 비추더라고요. 이혼했으니 이제 남남이라는 거죠. 자기 남편은 그렇다 치더라도 어떻게 아이한테까지 그래요? 남편은 그래도 자식은 핏줄인데. 우리끼리만 하는 얘긴데, 유진이 아빠도 그래요. 장례식 중에 여자를 불러들였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독한 양반이니 유진이 엄마가 도망친 것도 이해가 되죠. 지금은 다른 여자랑 같이 살고 있는데 복도에서 몇 번 마주쳤는데 순 자기 딸뻘이더라고요. 어휴, 징그러워. 꼴에 능력은 좋은가 봐요.

    아, 미안해요. 내가 말이 많아서. 사람들이랑 말할 일이 별로 없어서 그런지 별 얘기를 다 하네요. 유진이는 어릴 적부터 알았어요. 옆집에 사는데 마침 우리 예리랑 나이도 같아서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냈어요. 어릴 적에는 친자매처럼 붙어 다녔어요. 우리 집에도 자주 와서 밥 먹기도 했고요. 의젓하고 조용한 애였어요.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어요. 옆집에서 언제나처럼 싸우는 소리가 들리더니, 물건 깨는 소리가 나서 한 명 죽는 것 아닌가 걱정되는 마음에 나가보니까 그 애가 문 앞에 있더라고요. 그 어린 애가 울지도 않고, 그냥 자기 집 문 앞에서 귀를 막고 쭈그려 앉아 있더라니까요. 불러도 대답도 안 하길래 저는 죽은 게 아닌가 싶더라니까요. 다음 날에 마주치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저한테 인사하고 학교에 가더라고요. 초등학생인데 말이죠. 그 때만 해도 참 된 아이다 싶었죠.

    그런 아이였는데 고등학교에 들어가고부터 이상한 아이들이랑 어울리는지 집에 밤늦게 들어오기 시작하더라고요. 나쁜 소문도 들리기도 하고, 그래서 우리 아이한테 나쁜 영향을 줄까 봐 언제 한 번 딱 잘라서 말했죠.

    “예리랑 더 어울리지 말아 주렴. 나쁘게 생각하지 말고. 알다시피 이제 수험 기간이잖아? 우리 애한테 괜히 안 좋은 물 들이지 말고.”

    그러더니 한 번 고개를 푹 숙이고 지나가더라고요. 대답도 안 하고요. 그때는 뭐 그런 애가 다 있나 싶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너무 야박했나 봐요. 그렇게 불쌍한 애인 줄 알았으면 더 잘해줄 걸 싶어요. 그게 다 자기 잘못이겠어요? 관리도 못하는 부모가 문제지. 하여튼 그 옆집 양반이 문제예요. 문에다 저런 걸 붙여놓고 하여튼 동네 망신은 다 시킨다니까요. 우리 집도 내놨는데 집 보러 왔다가 옆집 문에 저런 게 붙어 있으니까 팔리지도 않죠. 하여튼 민폐예요.

    아참, 예리가 기자분들 오시면 이걸 주라고 하더라고요. 자기한테 연락 오지 않게 알고 싶은 내용은 전부 적어놨다고. 그런데 웃기는 게, 그때는 그렇게 극성이던 기자들이 반년이 지나니까 발길이 뚝 끊기더라고요. 덕분에 남에게 보여주는 건 처음이네요. 읽고 돌려주세요. 혹시 다른 분들이 오시면 보여 드려야 하니까요. 저요? 저는 안 읽어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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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록 – 고운점박이푸른부전나비 유충(3)

    유진은 앞에서 3번째 자리에 혼자 앉아 있었습니다. 아직 자리를 배정하지 않은 탓도 있지만, 누구도 그 아이에게 가까이 가고 싶지 않았던 겁니다. 그 때문에 멀리서 내려다본 교실은 가운데가 둥글게 도려내어 진 기하학적인 형태가 되어 있었습니다. 1학년 당시에 그 아이가 품고 있던, 옅고 흐릿하던 공허한 공간이 그녀의 마음을 넘어 현실로 흘러나온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고, 왜인지 곧바로 난자를 떠올렸습니다. 고립된 것 같은 모습과 달리, 저는 그녀의 주변에 남학생들이 모여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이 그녀에게 거리를 벌리고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유진과 남학생들 사이에 어떤 투명한 막 같은 것이 쳐져 있는 것 같았습니다. 썩 알맞은 연상이었던 셈이죠.

    미리 말해두지만, 유진에겐 여성적인 매력이 전혀 없었습니다. 눈은 컸지만, 얼굴이 길고 입이 작아 오히려 그것이 부자연스러웠습니다. 시력이 나빠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그러면 쓸데없이 큰 눈이 부각되어 곤충을 연상하게 했습니다. 신체도 여성이라기보다는 미성숙한 아이의 그것이었습니다. 소녀라고 말하기에는 옷감 너머에는 롤리타 콤플렉스를 자극하는 신비함과 청순함 따위는 전혀 없었습니다. 자각 없는 색기 말이죠. 그러나 유진에게는 그저 예견된 추함이나 궁핍함 따위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집안이 유복한 환경이었던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유진이는 멀리서 버스를 타고 학교를 통학했습니다. 사복을 입고 있는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고, 여학생다운 액세사리를 차거나 하는 일도 없었습니다.

    학부모 상담 건으로 학교에 찾아온 유진의 아버지를 만나뵌 적이 한 번 있습니다. 그 모습에서는 쉽게 근검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올이 나간 유행 지난 쥐색 양말, 언제 샀는지 가죽 끈이 검붉게 변색한 손목 시계, 늘어난 흔적이 있는 와이셔츠 등이 그랬습니다. 그러니 이상한 일 아닙니까? 그녀에게는 남학생들을 끌어들일 요인 같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던 겁니다. 더군다나 그녀를 둘러싼 남학생들의 눈에는 그 나이대 소년들이 으레 품고 있는 선망과 동경 같은 순수한 것이 전혀 보이지 않았으니 더욱 그렇죠. 저는 미궁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까진, 저는 유진이를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혼자 있는 것은 1학년 때부터 쭉 있었던 일이고, 제가 신경 쓸 정도의 일은 아니었습니다. 모든 것이 순리대로라는 착각을 했던 겁니다. 저는 교단에 올라 학생들을 내려다봤습니다. 제가 들어온 것을 아직 눈치채지 못한 것인지, 교실은 여전히 소란스러웠습니다.

    “자.”

    낮은 목소리였지만 제 경험상 학생들을 주목시키기에는 충분한 서두였습니다. 그렇지만 교실은 여전히 소란스러웠습니다. 저는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자!”

    그 순간, 교실이 더욱 시끄러워 졌습니다. 올라간 제 목소리만큼 소음이 커진 것입니다. 그 순간 저는 이상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학생들이 만들어 내는 소란스러운 목소리들이 저에게만 속삭임처럼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들으려고 해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선생님 말씀하시잖아!”

    맨 앞줄에 있는 여학생이 뒤를 돌아보며 크게 말했습니다. 예리라는 이름의 학생이었습니다. 박예리. 그제야 교실은 조용해 졌습니다. 저는 의도치 않게 학생에게 도움을 받은 것에 당황했습니다. 하물며 ‘범생이’라뇨.

    학생들의 얼굴이 일제히 저를 향했습니다. 저는 무심코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것은 악의였습니다. 학생들이 간직하고 있을 순수함이 완전히 상실된, 성인 남성의 끔찍하고 온전한 악의가 담긴 눈이었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제 비명에도 아랑곳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외면하듯 여학생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여학생들은 갑자기 비명을 지른 저를 의아하다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성인과 아이. 악의와 순수. 이 좁은 교실에는 그 모든 것이 기묘하게 섞여서 막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유진은 그 막의 경계에서 부유하고 있었습니다. 학생도 아니고, 성인도 아닌, 괴물이었습니다.

    어떻게 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그 광경에 저는 가설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모든 것을 깨닫게 된 거죠. 그 반에 있는 남학생들은 모두 유진과 잤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심지어 남학생들은 오르가슴에 이르기도 전에 자신들이 그저 먹히고 있을 뿐이란 걸 눈치챘을 겁니다. 마치 곤충의 짝짓기처럼요. 곤충을 닮은 유진의 길고 못 생긴 얼굴도 분명 그 연상에 일조했을 겁니다. 그 결과, 남학생들은 본능을 이기지 못한 대가로 모든 것을 빼앗기고 만 것입니다. 그 악의가 상실에서 비롯했음을, 저만은 곧바로 눈치챌 수 있었습니다.

    저는 제 상상을 뛰어넘는 이 상황에 아연하고 말았습니다. 제가 추구하는 조화 따위는 이미 우스운 것이었죠. 학급은 이미 생태계 같은 귀여운 단어로는 형용할 수 없는, 썩은 내 나는 진창으로 변모해 있던 것입니다. 물론 그 중심에서 아귀를 닮은 유진은 유유히 유영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인사말을 되는대로 내뱉고 급하게 교실에서 도망쳐 나왔습니다. 미리 준비한 농담 같은 것을 말할 새도 없었습니다. 제 천직이라 믿어 온 오래된 직업이 주던 소소한 성취감 따위는 이미 흔적도 없었습니다. 이토록 저는 그들에게 괴롭힘을 당한 것입니다.

    학생들은 언제나 화나 있었습니다. 남학생과 여학생은 서로 대화하지 않았고, 그들끼리 뭉쳐 속삭이는 것들은 무엇도 제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제가 더 어리석었더라면, 그들의 먹이에 불과한 존재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면 저 역시 그 진창의 한가운데 발을 담가 익사할 정도로 교묘하고 치밀한 덫이었습니다. 유진이요? 그 아이는 여학생들과 어울리지 못했습니다. 대신에 남학생들과 어울렸죠. 우습게도 절제를 모르는 남학생들의 눈에는 성적인 충동 뒤에 가려진 두려움이 서려 있었습니다. 죄를 지은 자만이 가지는 그런 낙인 같은 것이 결코 숨길 수 없는 안구에 새겨진 것입니다.

    여학생 중에서는 오직 예리만이 유진이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네, 아까 말한 그 아이요. 반장을 맡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유진이는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아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무엇을 하건 예리를 통해 한 번씩 거들어야만 했습니다. 그 아이는 어릴 적부터 유진이와 친구였기 때문에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의아했습니다. 친구를 가진 아이가, 1학년 때의 정유진 같은 공허한 눈을 가진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하고 말이죠.

    사건 당일, 저는 밤거리에서 유진이를 봤습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어른 같은 옷을 입고, 비틀거리며 어딘가로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저는 무심코 유충을 떠올렸습니다. 늙고 살찐 유충. 밤거리의 화려한 불빛에 끌리듯 걸어가는 그 아이를 보며 저는 그것이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것이 흐릿한 밤거리의 불빛 속을 헤매며 자신을 숭배할 남자를 찾아다니는 것이야말로 음탕하고 탐욕스러운 그 아이의 말로에 어울리는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경고를 줄 생각으로 등을 향해 몇 차례 그 아이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유진이는 그런 제 목소리를 듣지 못한 것처럼 뒤돌아 보지도 않았고, 저는 저대로 무시 당한 거라 생각해 제 길을 갔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아이는 그 시점에 이미 좀비가 되어 있었겠죠. 그날 밤, 자택에서 좀비가 되었다고 하니까요. 돌이켜보면 참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뒤쫓지 않길 잘했죠. 그대로 쫓았더라면 제가 한국 두 번째 좀비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 아닙니까.

    아까 이야기를 계속 해보자면, 혹시 나비가 되지 못한 부전나비 유충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정체를 눈치챈 개미들에게 보복으로 온몸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만다고 합니다. 저는 그게 유진과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만, 저는 유진이가 죽었을 때, 무심코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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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록 – 고운점박이푸른부전나비 유충(2)

    늦었지만 저에 대해 소개하겠습니다.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저는 K 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고 있는 이영록입니다. 교사를 맡은 지는 올해로 꼬박 15년째가 됩니다. 가르치는 것은 1학년이지만, 3학년 담임을 맡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2년 전, 사고 당시 유진이의 담임을 맡고 있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된 이유도 곧 설명하겠습니다.

    K고는 이름처럼 K시 한가운데에 있는 고등학교입니다. 일반고지만 경쟁률이 심한 편이죠. 아마도 주택지와 가까워서 그럴 수도 있고, 평준화 이전의 명문 고등학교 시절을 기억하는 지역 어른들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덕분인지 학구열만큼은 다른 학교들보다 높은 편입니다. 작년에도 S대생을 5명이나 배출했죠. 자랑은 아닙니다만, 그 중 2명이 제가 담당하던 반에서 나왔습니다. 이제 아시겠지만, 제 교육방침은 그리 유별난 것은 아닌 셈입니다.

    그런 높은 학구열 때문에 K고에서는 누구도 담임을 맡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특히나 3학년은 이것이 심해서 매년 빈자리를 채우는 것으로 고생하곤 합니다. 그래서 저는 스스로 3학년 담임을 자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상하다고요? 저는 교사가 된 이후로 늘 한 가지를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바로 공공선입니다. 사회가 조화롭게 돌아가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는 법입니다. 저는 스스로 그 누군가가 되기로 선택한 것입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죠.

    2년 전에 제가 유진이의 담임을 맡을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는 충분히 설명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듣고 싶은 것은 이런 이야기가 아니겠죠. 그러면 슬슬 본론으로 들어갈까 합니다. 정유진의 이야기 말입니다. 그러려면 우선 그 아이를 처음 봤을 때부터 이야기 하지 않으면 안되겠군요. 많은 사람이 그저 사고 당시에 대해서만 관심을 두더군요. 그래서야 방역절차가 어쩌니 하는 엉뚱한 결론을 내릴 수밖에요. 그 아이 대해 제대로 이해하려면 조금 더 예전부터 얘기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1학년의 정유진과 3학년의 정유진은 전혀 다른 사람이었으니까요. 네, 제가 유진이를 처음 본 것은 담임을 맡기도 전인 1학년 무렵이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지만, 저는 1학년 수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1학년 수학은 문, 이과가 나뉘기 이전에 통합 과목이기 때문에 교사 혼자서는 담당할 수 없습니다. 그 때문에 두 명의 수학 선생이 홀수 반과 짝수 반을 나눠서 가르치죠. 저는 그 해 홀수 반을 담당했고, 유진이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홀수 반이었습니다. 이미 4년 전 일이니 세세한 부분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당시 정유진은 그만큼 눈에 띄지 않고, 어떤 인상도 남기지 못하는 그런 학생이었으니까요. 익익년에 담임을 맡은 반 학생 명단을 보고도 그 아이가 누구였는지 기억해내지 못했을 정도니까요.

    교사를 오래 하고 있으면, 한 번 보는 것만으로 그 학생이 어떤 학생인가 알 수 있는 법입니다. 학생들의 의태란 노골적인 면이 있어, 종종 그것이 숨기는 것인지 아니면 과시하는 것인지 헷갈리곤 합니다. 이토록 학생들은 잔인한 면이 있는가 하면 이런 귀여운 부분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처음부터 정유진으로부터 관심을 껐을지도 모릅니다. 그 아이는 투명했습니다. 몰개성하다던가, 눈에 띄지 않는 수준이 아니라 마치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완벽한 의태였습니다. 학생이라면 으레 가지고 있는 미숙함 같은 것이 결여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공부는 잘했습니다. 몇 달 동안 뉴스나 신문에서 전국 상위권 성적을 가진 성실한 학생에게 닥친 비극이라는 식으로 떠들어 댔으니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요. 입학했을 때부터 수학을 90점 밑으로 맞은 적이 없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다른 과목도 그랬다고 하더군요. 어쩌면 특목고를 준비했을지도 모르겠네요. 1학년부터 성적이 나오는 학생들은 대부분 그러니까요. 그렇지만 유진이는 범생이 그룹에 속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평범한 여학생들과 어울리지도 않았습니다. 누군가와 대화하거나, 쪽지를 주고받거나, 그런 평범한 학생이 할 법한 행동을 하는 것은 한 번도 보지 못했으니까요. 마치 혼자만 다른 세계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누구도 뒤에서 3~4번째 줄 창가에 그 아이가 앉아 있는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그 아이는 칠판을 바라보고 있던 게 아니었을 지도 모르겠네요. 눈은 정면을 향하고 있었지만 분명 다른 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제가 가르치는 것이 너무 수준이 낮다고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진작에 교실이 아닌 다른 세계, 예를 들어 구름 위라던가, 그런 곳에 있었을지도요. 사실 그 아이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는지, 이제와선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알 수도 없고요.

    그렇게 1년 내내 저는 그 아이와 대화하거나, 심지어 이름을 불러본 적도 없었습니다. 다른 교사들은 어떻게든 아이들의 발표를 이끌어 내려고 번호 순으로 발표를 시키거나 한다지만 저는 그렇게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공부를 하고 싶어하는 학생들에게 그 기회를 주는 것이 순리에 맞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래서 2학기를 마치고 곧바로 저는 그 아이를 완전히 머리에서 지울 수 있었습니다.

    3학년에 담임을 맡았을 때도 저는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기보다 그 아이가 누군지 조차 기억해내지 못했습니다. 처음 교실에 들어가기 전까지 말이죠. 거기 있었던 것은 분명 다른 아이였습니다. 그 순간 저는 고운점박이푸른부전나비를 떠올렸습니다. 푸른부전나비의 유충은 여왕개미의 페로몬을 흉내 내 개미굴 내부로 들어간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화할 때까지 개미의 보호를 받으며 성장하는 거죠. 딱 그 꼴이었습니다. 거기 있는 것은 1학년 당시의 투명하던 그것이 아닌, 여학생을 가장한 무언가였습니다. 허술한 것 같지만, 그마저도 의도된 것 같은 실로 놀라운 의태였습니다. 그와 동시에 저는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뉴스를 보니 유진이가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다는 듯이 이야기하더군요. 그러나 제 생각은 전혀 다릅니다. 그 아이는 그것을 의도하고 있었으니까요. 다른 학생들은 그저 유진이가 유도한 대로 행동한 셈이죠. 괴롭힘 같은 것은 실제로는 없었던 겁니다. 왜냐고요? 그것은 정유진의 음탕한 본성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고운점박이푸른부전나비에 대해 얘기했죠. 그 유충이 어떻게 살아남겠습니까? 바로 개미의 유충이나 번데기를 잡아먹는 것이죠. 그 아이는 천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본인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죠. 정유진은 몸을 팔았습니다. 불행은 그 아이에게는 그저 남성들의 보호 본능을 불러일으키는 좋은 소재에 불과했던 것이죠. 그 덕에 그런 못생긴 아이도 몸을 팔 수 있었던 것입니다. 좀비 바이러스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아마 에이즈에 걸렸겠죠. 역겹다고요? 이건 생리적인 현상입니다. 대한민국 사회는 성에 너무 폐쇄적인 것이 문제예요. 우리는 이런 얘기를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남성이 불행한 여성에게 끌리는 것은 당연한 겁니다. 불행은 여성을 매력적으로 만드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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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록 – 고운점박이푸른부전나비 유충(1)

    저에게는 한 가지 버릇이 있습니다. 무엇을 보더라도 우선 그것이 조화로운지 살피는 것입니다. 이 조화라는 것은 실로 한마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도 굳이 예를 들어보자면 가족사진을 보거나 할 때 그렇습니다. 아이의 이목구비가 부모와 닮은 것이 있는지, 부모와 아이가 비슷한 가격대의 옷을 입고 있는지, 우선 그런 것을 살핍니다. 유전자란 참 신기한 것이 못난 부모 밑에서는 못난 아이가 태어나기 마련입니다. 가난한 부모가 억지로 아이에게 좋은 옷을 입혀도 초라함을 타고난 아이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법입니다. 만약 못난 부모 밑에서 예쁜 아이가 태어나면 그들은 가족처럼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저는 과감히 아이의 못난 부분을 찾습니다. 이 아이는 아버지를 닮아 콧구멍이 크다던가, 머리카락이 뻣뻣한 직모라 모자가 어울리지 않는다든가, 그런 사소한 것 말입니다. 하나라도 찾아내고 나면 다음은 쉽습니다. 결점을 하나 찾아내면 썩 괜찮게 보였던 것들도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니까요. 그렇게 하나씩 단점들을 찾아내다 보면 어느샌가 사랑스럽던 사진 속 아이가 부모만큼 못났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가끔 이런 일도 있습니다. 못난 부모 밑에 태어난 아이가 너무 예뻐서 도무지 단점을 찾아내지 못하는 경우 말이죠. 이상한 일이죠. 그들이 정말로 가족이라면 충분히 불행을 공유하고 있어야 합니다. 도무지 타협할 수 없게 되면 어쩔 수 없이 가설을 세워야 합니다. 사실 사진 속 아이가 부모의 학대를 당하고 있다든가, 아니면 어느 날 갑자기 사고를 당해 걸을 수 없는 몸이 되었다든가, 이런 식으로 말이죠. 그러고 나면 완벽해 보였던 사진 속 아이가 너무나도 불쌍해 보여 그 불행한 가족에 어울려 보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 번 조화로운 것을 발견하고 나면 무심코 넋을 놓고 바라보게 됩니다. 고백하자면 저는 조화로움에 중독되어 있습니다. 어쩌다 이런 작업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다른 가족을 엿보다 시비가 걸리는 것도 비일비재합니다. 그러나 맹세컨대 저는 나쁜 의도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이 서로 어울리는 가족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을 뿐이죠. 그렇게 보면 제법 저는 선한 사람인 셈이죠.

    생각해보면 저는 어릴 적부터 그랬습니다. 어릴 적에 저는 틈만 나면 공터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다른 아이들처럼 공을 차거나 모래를 만지며 노는 대신 공터 가장자리에 쭈그려 앉아 개미를 바라봤습니다. 자기 발밑에 분주히 움직이는 작은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아이들이 처음 자각했을 때 그들이 보이는 행동이 얼마나 잔인한지, 아이들은 누구에게 배우지도 않았는데 본능적으로 그것을 부수는 데 주력합니다. 발로 밟거나 손으로 잡는 것은 예삿일에 굴에 물을 붓거나 돋보기로 태우는 식으로요. 그리고는 곧 질렸다는 듯이 그 모든 것을 내팽겨칩니다. 만약 곤충들이 비명이라도 지를 줄 알았다면 그 놀이는 더 오래갔을 것이 분명하지요.

    그런 점에서 저는 처음부터 달랐습니다. 저는 그저 그것들을 내려다 볼뿐이었습니다. 자각하지는 못했지만 저는 이미 그때부터 조화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줄지어 나란히 이동하는 개미들, 함께 몸집보다 몇 배나 큰 먹이를 굴로 나르는 개미들, 죽은 개미의 주검을 나르는 개미들. 모두가 제 역할을 다 하는 광경에 매료된 저는 더 깊은 곳을 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러니까 제 말은, 구멍 아래의 세계 말이죠. 막연히 그들이 이룩한 조화로운 세계를 상상하며 동경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저 상상하고 동경할 뿐이었습니다. 제 역할은 어디까지나 관찰자였습니다. 만약 제가 개입하게 되면, 더 깊은 곳을 엿보게 되면 이 작은 생태계가 무너져 내린다는 것을 저는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교사라는 직업을 가지게 된 것도 이런 성격 때문일지 모릅니다. 학급은 작은 생태계입니다. 처음에는 삐걱거리는 것 같다가도 결국에는 스스로 조화로운 형태로 돌아옵니다. 그 형태는 놀랍게도 매년 비슷합니다. 교단에서 내려다보면 학급의 정경이 보입니다. 우선 열심히 공부하는 범생이 그룹이 맨 앞줄로 모입니다. 욕심 많은 아기 새들처럼 제 시선을 끌고 싶어 안절부절못하며, 성인으로부터 인정받은 욕심으로 가득합니다. 그 뒤로 넘어가면 조금 더 평범한 아이들이 있습니다. 대부분 수업을 열심히 듣지만 가끔은 친구와 수다를 떤다거나 쪽지를 날린다거나 하는 그런 학생들 말입니다. 이런 학생들은 마치 개미 같습니다. 매번 노는 학생은 바뀌지만, 전체 학생 중에 그 비율은 일정한 것이죠. 처음에는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의문을 품기도 했지만 이제 저는 그것이 자연의 법칙이라는 것을 압니다. 어떻게 통제할 수도 없고, 통제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조금 더 뒤로 넘어가면 마침내 학급의 포식자들이 나타납니다. 불성실하고 반항적이지만 필수적이죠. 엎드려 자거나, 시끄럽게 떠드는 것은 기본에 수업 내내 다른 학생들을 괴롭히기도 하죠. 그렇지만 저는 굳이 그 아이들을 건드리지 않습니다. 매년 항상 똑같습니다. 학생들은 자신들의 위치를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그들만의 카스트를 형성해 정렬합니다. 원시적이지만 조화롭죠. 저는 그렇게 정립되어 가는 질서 속에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니요, 저는 괴롭힘을 옹호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제 말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신 것 같군요. 말하지 않았습니까, 학급이란 폐쇄적이고 완성된 하나의 작은 생태계입니다. 세간의 상식 이전에 그 안에는 별개의 자연법칙이 존재하고, 스스로 가장 안정된 형태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누군가 괴롭힘을 당한다면 그건 본인이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는 얘기죠. 무책임하다고요? 앞서 말했듯이 저는 선한 사람입니다. 무언가 잘못된 것이 있으면 그것을 바로 잡으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착각하시면 안 되는 게, 저는 학급에 포함된 사람이 아닙니다. 학생들은 영악하고 교활해서 자신들보다 확실한 강자를 그들의 생태계로 끌어들이지 않습니다. 그러니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지켜보는 것밖에 없는 셈이죠.

    그렇지만 그 해는 유독 그것이 심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을 맞은 3학년들이 경직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곧 그런 문제가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죠. 학생들은 언제나 분노에 가득 차 있었고, 담임인 저조차도 가까이할 수 없을 정도로 폐쇄적이었습니다. 이유는 명백했죠. 그래서 저는 우리 반 학생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곧바로 그것이 유진이일 거라고 확신했습니다.

    유진이가 죽은 다음에 저는 그 아이에 대해 다룬 기사들을 스크랩해 수집했습니다. 담임교사이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었죠. 그렇지만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만, 그건 순수한 애도의 뜻으로만 진행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담임인 저로서도 궁금했던 것입니다. 아직 인격적으로 완성되었을 리도 없는 고등학생이 가지고 있는 그 고집스러운 이질감이 저의 흥미를 끌었던 것입니다. 유진이는 정말 나쁜 의미로 특별했습니다. 네, 맞습니다. 저는 고등학생들이 아직 완성된 인간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지금 그건 별로 중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으니 넘어가도록 하죠.

    그런데 이상한 일이더군요. 어느 신문 기사를 봐도 유진이에 대해서는 단정하고 공부 잘하던 모범생이 불운한 사고를 당했다는 식으로밖에 묘사하지 않았으니까요. 그저 모든 것이 제대로 방역 절차를 걸치지 않은 수입품에 의한 우연한 사고였다는 것이죠. 그렇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만 바이러스가 퍼지지 않은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고립된 반도 국가이기 때문에? 조기 대응이 우수해서? 아니요, 시스템입니다. 모든 국민이 사회와 동화된 구조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개인의 돌발 행동으로 공동체 전체를 망칠 수 있는 이런 시대이니만큼 한국 국민의 집단주의적인 국민성이 힘을 발휘한 것입니다. 개인주의가 주류인 외국과는 다르게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 유진이가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은 사실 필연이었습니다. 그 아이는 교내에서, 아니 한국 전체에서도 가장 어긋난 존재였을 겁니다. 미신적이라고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바이러스는 명백히 대상을 가리고 있습니다. 사진이나 기사로는 안돼요. 그렇지만 살아 있던 시절의 유진이를 만나본 사람만은 모두 동의할 겁니다. 제가 지금 이상한 소리를 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