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었지만 저에 대해 소개하겠습니다.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저는 K 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고 있는 이영록입니다. 교사를 맡은 지는 올해로 꼬박 15년째가 됩니다. 가르치는 것은 1학년이지만, 3학년 담임을 맡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2년 전, 사고 당시 유진이의 담임을 맡고 있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된 이유도 곧 설명하겠습니다.
K고는 이름처럼 K시 한가운데에 있는 고등학교입니다. 일반고지만 경쟁률이 심한 편이죠. 아마도 주택지와 가까워서 그럴 수도 있고, 평준화 이전의 명문 고등학교 시절을 기억하는 지역 어른들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덕분인지 학구열만큼은 다른 학교들보다 높은 편입니다. 작년에도 S대생을 5명이나 배출했죠. 자랑은 아닙니다만, 그 중 2명이 제가 담당하던 반에서 나왔습니다. 이제 아시겠지만, 제 교육방침은 그리 유별난 것은 아닌 셈입니다.
그런 높은 학구열 때문에 K고에서는 누구도 담임을 맡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특히나 3학년은 이것이 심해서 매년 빈자리를 채우는 것으로 고생하곤 합니다. 그래서 저는 스스로 3학년 담임을 자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상하다고요? 저는 교사가 된 이후로 늘 한 가지를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바로 공공선입니다. 사회가 조화롭게 돌아가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는 법입니다. 저는 스스로 그 누군가가 되기로 선택한 것입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죠.
2년 전에 제가 유진이의 담임을 맡을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는 충분히 설명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듣고 싶은 것은 이런 이야기가 아니겠죠. 그러면 슬슬 본론으로 들어갈까 합니다. 정유진의 이야기 말입니다. 그러려면 우선 그 아이를 처음 봤을 때부터 이야기 하지 않으면 안되겠군요. 많은 사람이 그저 사고 당시에 대해서만 관심을 두더군요. 그래서야 방역절차가 어쩌니 하는 엉뚱한 결론을 내릴 수밖에요. 그 아이 대해 제대로 이해하려면 조금 더 예전부터 얘기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1학년의 정유진과 3학년의 정유진은 전혀 다른 사람이었으니까요. 네, 제가 유진이를 처음 본 것은 담임을 맡기도 전인 1학년 무렵이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지만, 저는 1학년 수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1학년 수학은 문, 이과가 나뉘기 이전에 통합 과목이기 때문에 교사 혼자서는 담당할 수 없습니다. 그 때문에 두 명의 수학 선생이 홀수 반과 짝수 반을 나눠서 가르치죠. 저는 그 해 홀수 반을 담당했고, 유진이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홀수 반이었습니다. 이미 4년 전 일이니 세세한 부분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당시 정유진은 그만큼 눈에 띄지 않고, 어떤 인상도 남기지 못하는 그런 학생이었으니까요. 익익년에 담임을 맡은 반 학생 명단을 보고도 그 아이가 누구였는지 기억해내지 못했을 정도니까요.
교사를 오래 하고 있으면, 한 번 보는 것만으로 그 학생이 어떤 학생인가 알 수 있는 법입니다. 학생들의 의태란 노골적인 면이 있어, 종종 그것이 숨기는 것인지 아니면 과시하는 것인지 헷갈리곤 합니다. 이토록 학생들은 잔인한 면이 있는가 하면 이런 귀여운 부분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처음부터 정유진으로부터 관심을 껐을지도 모릅니다. 그 아이는 투명했습니다. 몰개성하다던가, 눈에 띄지 않는 수준이 아니라 마치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완벽한 의태였습니다. 학생이라면 으레 가지고 있는 미숙함 같은 것이 결여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공부는 잘했습니다. 몇 달 동안 뉴스나 신문에서 전국 상위권 성적을 가진 성실한 학생에게 닥친 비극이라는 식으로 떠들어 댔으니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요. 입학했을 때부터 수학을 90점 밑으로 맞은 적이 없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다른 과목도 그랬다고 하더군요. 어쩌면 특목고를 준비했을지도 모르겠네요. 1학년부터 성적이 나오는 학생들은 대부분 그러니까요. 그렇지만 유진이는 범생이 그룹에 속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평범한 여학생들과 어울리지도 않았습니다. 누군가와 대화하거나, 쪽지를 주고받거나, 그런 평범한 학생이 할 법한 행동을 하는 것은 한 번도 보지 못했으니까요. 마치 혼자만 다른 세계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누구도 뒤에서 3~4번째 줄 창가에 그 아이가 앉아 있는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그 아이는 칠판을 바라보고 있던 게 아니었을 지도 모르겠네요. 눈은 정면을 향하고 있었지만 분명 다른 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제가 가르치는 것이 너무 수준이 낮다고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진작에 교실이 아닌 다른 세계, 예를 들어 구름 위라던가, 그런 곳에 있었을지도요. 사실 그 아이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는지, 이제와선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알 수도 없고요.
그렇게 1년 내내 저는 그 아이와 대화하거나, 심지어 이름을 불러본 적도 없었습니다. 다른 교사들은 어떻게든 아이들의 발표를 이끌어 내려고 번호 순으로 발표를 시키거나 한다지만 저는 그렇게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공부를 하고 싶어하는 학생들에게 그 기회를 주는 것이 순리에 맞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래서 2학기를 마치고 곧바로 저는 그 아이를 완전히 머리에서 지울 수 있었습니다.
3학년에 담임을 맡았을 때도 저는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기보다 그 아이가 누군지 조차 기억해내지 못했습니다. 처음 교실에 들어가기 전까지 말이죠. 거기 있었던 것은 분명 다른 아이였습니다. 그 순간 저는 고운점박이푸른부전나비를 떠올렸습니다. 푸른부전나비의 유충은 여왕개미의 페로몬을 흉내 내 개미굴 내부로 들어간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화할 때까지 개미의 보호를 받으며 성장하는 거죠. 딱 그 꼴이었습니다. 거기 있는 것은 1학년 당시의 투명하던 그것이 아닌, 여학생을 가장한 무언가였습니다. 허술한 것 같지만, 그마저도 의도된 것 같은 실로 놀라운 의태였습니다. 그와 동시에 저는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뉴스를 보니 유진이가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다는 듯이 이야기하더군요. 그러나 제 생각은 전혀 다릅니다. 그 아이는 그것을 의도하고 있었으니까요. 다른 학생들은 그저 유진이가 유도한 대로 행동한 셈이죠. 괴롭힘 같은 것은 실제로는 없었던 겁니다. 왜냐고요? 그것은 정유진의 음탕한 본성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고운점박이푸른부전나비에 대해 얘기했죠. 그 유충이 어떻게 살아남겠습니까? 바로 개미의 유충이나 번데기를 잡아먹는 것이죠. 그 아이는 천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본인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죠. 정유진은 몸을 팔았습니다. 불행은 그 아이에게는 그저 남성들의 보호 본능을 불러일으키는 좋은 소재에 불과했던 것이죠. 그 덕에 그런 못생긴 아이도 몸을 팔 수 있었던 것입니다. 좀비 바이러스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아마 에이즈에 걸렸겠죠. 역겹다고요? 이건 생리적인 현상입니다. 대한민국 사회는 성에 너무 폐쇄적인 것이 문제예요. 우리는 이런 얘기를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남성이 불행한 여성에게 끌리는 것은 당연한 겁니다. 불행은 여성을 매력적으로 만드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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