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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면 소년

    어느 나라에 가난한 소년이 살았습니다.

    소년은 길을 가다가 상인이 강도를 만나서 죽은 것을 봤습니다.
    마을로 돌아와서 보니, 실종된 상인의 집을 두고 사람들이 다투는 걸 봤습니다.

    소년은 상인 가면을 쓰고 가서 말했습니다.

    “내가 상인이다.”

    사람들은 다투기를 멈추고 소년에게 집 열쇠를 줬습니다.
    이제 소년은 저택에서 살았습니다.

    소년은 장사를 나가다가 기사가 낙마해서 죽은 것을 봤습니다.
    마을로 돌아와서 보니, 약혼한 소녀가 기사를 손꼽아 기다리는 걸 봤습니다.

    소년은 기사 가면을 쓰고 가서 말했습니다.

    “내가 기사다.”

    소녀의 가족은 기뻐하며 결혼식을 열어줬습니다.
    이제 소년은 가족을 가졌습니다.

    소년은 전쟁에 나갔다가 왕이 전사한 것을 봤습니다.
    마을로 돌아와서 보니, 왕이 없어져서 사람들이 곤란해 하는 걸 봤습니다.

    소년은 왕 가면을 쓰고 가서 말했습니다.

    “내가 왕이다.”

    그제야 사람들은 안심하고 소년에게 왕관을 씌여줬습니다.
    이제 소년은 나라의 왕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소년은 얼굴이 몹시 가려워서 가면을 벗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가면은 벗어도 벗어도 끝이 없었습니다.

    결국 소년은 나병을 치료하지 못해서 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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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의 구성 성분

    “자기, 단 냄새 나지 않아?”

    “응? 그런가?”

    여자가 코를 킁킁거렸다.

    “꼭 설탕 같아.”

    심현은 어린 시절에는 최고의 아역 배우였고, 더이상 그렇게 불릴 수 없게 되자 최고의 아이돌이 되었고, 또 그럴 수 없게 되자 최고의 가수가 되었다. 이 나라에서는 누구도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그가 순회공연을 한 번 돌면 국적을 특정할 수 없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무리 지어 나타나곤 했다. 모두가 그를 사랑했다.

    “너무 사랑을 받는 게 문제가 아닌가 싶군요.”

    의사가 말했다. 심현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사랑을 받다, 그건 혹시 무슨 의학 용어인가요?”

    “아니요, 문자 그대로 Love, 사랑 말입니다.”

    심현은 의사가 자신과 농담을 하고 싶은 건가, 의심이 싹텄다. 한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어릴 적부터 심현을 보고 지냈기 때문에, 처음 보는 사람들이 마치 오랜 친구인 것처럼 말을 걸어오는 상황을 그는 왕왕 겪었다.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대학 병원의, 세계에서 손꼽히는 명의라도 그럴 수 있는 법 아닌가.

    “이봐요, 선생님, 긴장을 풀어주려 하는 건 고맙지만, 저는 정말 심각해요. 이런 병은 들어본 적도 없다고요. 몸에서 설탕 냄새가 난다니, 저는 유명 인사예요. 그런 상태로 돌아다니면 제 커리어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요.”

    “혹시 사랑의 구성 성분에 대해 아십니까?”

    의사는 심현의 호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담담한 어조로 물었다.

    “말해보세요.”

    “99% 이상이 당분입니다. 옛날부터 모든 언어에서 사랑을 단 것으로 묘사하는 건 그런 이유가 있는 거죠.”

    “지금 진지한 거 맞죠?”

    “저는 환자를 상대로 농담하지 않습니다.”

    심현은 머리가 어지러워 의자에 등을 기댔다.

    “머리가 어지럽나요?”

    “네. 안 그러게 생겼나요?”

    “당뇨 증상이 있을 수도 있겠군요. 혈당 수치 검사도 한 번 해봐야겠네요.”

    말이 막혔다. 심현은 무언가 북받쳐 오르는 것을 간신히 억누르고, 찬찬히 되물었다.

    “이봐요. 이봐요, 선생님. 이제 정말로 제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말해줘요.”

    “보통, 평범한 사람은 평생 아무리 많은 사랑을 받아도 문제가 생길 리가 없죠. 사랑이란 건, 사람이 느끼는 것보다 훨씬 작은 것이거든요. 사실 저도 이런 케이스는 학부생 시절에 논문에서 한 번 본 것이 다라 조금 당황스럽습니다. 사례는 세상에 단 한 번밖에 없었죠. 혹시 심현씨는 애인이 몇 명이죠?”

    “지금 농담해요? 전 기혼자라고요.”

    “그 사례의 환자는 동시에 50명에서 최대 100명까지 애인을 뒀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혹시 비슷한 사례인가 싶어 여쭸습니다.”

    “더는 안 되겠군요! 다른 병원으로 가야겠어요!”

    심현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 그날, 전국 각지의 30명의 애인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다음 날, 심현은 팔을 코에 가져가 냄새를 맡았다. 설탕 냄새는 나지 않았다.

    그날은 전국 순회공연의 마지막 날이었다. 평소보다 무대는 격렬했고, 수천만, 수억의 사람이 실시간으로 무대를 보고 있었다. 관객석으로부터 환호성이 끊이질 않았고, 관객들이 만들어 내는 빛의 물결은 수평선을 그었다. 심현은 자신이 인생 최고의 순간에 서 있다고 확신했다. 선선한 가을 날씨에도 불구하고 그의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그 순간, 사방에서 파리 떼가 심현을 향해 날아들었다. 무대는 초토화됐으며, 경비들이 무대로 뛰어들어 심현을 무대 뒤로 호송했다. 관객들은 상상을 뛰어넘는 해프닝에 아연해했다. 악기를 연주하다 어색하게 무대 위에 남은 밴드는 서로 마주 보다가 심현이 서 있던 자리를 보고 의아해했다.

    “이거, 누가 꿀 뿌린 거 아니야?”

    끈적끈적한 단 액체가 바닥에 흥건히 그어져 있었다. 그날의 사건은 대서특필로 보도되었다.

    난폭한 팬 문화! 이제는 설탕물 테러?!

    심현은 의사를 어색하게 마주 봤다. 그는 방호복이나 다름없는 꽉 막힌 옷을 입은 채로, 사방을 불안하게 훑어봤다. 조금만 방심하면 개미나 날파리 같은 곤충들이 날아들어 그를 깨물었다.

    “이건 대체 어떻게 된 건가요?”

    심현의 질문에 의사는 잠시 뜸을 들였다.

    “애인은….”

    “전부 정리했어요! 30명이었습니다! 이제는 아내랑도 이혼할 거고요! 제발 어떻게 된 건지 좀 알려주세요! 애인을 정리하고 한동안 괜찮은 것 같더니 증상이 나날이 심해지고 있잖아요!”

    의사는 머뭇거리다 말했다.

    “제가 이전에 말씀드린 사례 있잖습니까? 사실 그 남자는 애인을 전부 정리한 뒤에 완치되었습니다. 아무 부작용도 없이요. 사랑은 설탕이나 사카린 같은 것보다 친절하거든요.”

    “그러면 제 경우는 어떻게 된 겁니까?”

    “이것은 그저 제 추측이지만, 심현씨는 가수나 배우로서 전 국민의 사랑을 받지 않습니까? 알다시피, 세상에 그만큼 사랑받은 사람은 없어요.”

    “사랑받는 정도를 줄여야 한다는 말인가요?”

    의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사랑받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살아왔는데, 이제 그것을 거슬러야 하는 참이었다. 심현은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그 순간, 입에 무언가 단 것이 흘러 무심코 삼키고 말았다. 침이었다. 그는 미움받기로 결정했다.

    그날부터 심현의 기행이 시작됐다. 나체로 조깅을 한다거나, 방송에서 여성이나 인종을 차별하는 발언을 일삼았다. 다가오는 팬들은 차가운 태도로 일축했고, 유명인이라는 것을 근거 삼아 소상공인들에게 갑질을 행사하기도 했다.

    인터넷에서는 매일매일 심현의 변화를 비난하는 사람들과, 그를 옹호하는 팬들의 설전이 오갔다. 그의 행동에 대한 공방은 일종의 사회 현상이 되었다. 사람이 세 명만 모여도 그들은 심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싸웠다. 방송국에서는 100분짜리 프로그램이 편성해, 각계 전문가들을 초빙해 심현의 이런 기행에 대해 심층 분석하기도 했다.

    이렇게 행동한 것이 효과가 있었는지, 심현은 이전보다 자신의 몸에서 단 냄새가 사라진 것을 느꼈다. 그 과정은 괴로웠지만 어쨌거나 차도가 보이는 이상 그는 그만둘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행동은 그와 계약한 기업들에게는 치명적이었고, 오랜 세월 그와 전속 계약해온 모 대기업의 홍보부에서는 루머를 퍼트리기로 결정했다.

    심현, 가수의 한계를 뛰어 넘어 행위 예술가로 변하다.

    한 관계자의 제보에 따르면 국민가수 심현이 최근 보이는 기행은 사회 문제에 대한 풍자를 담은 행위 예술이라고 한다. 심현은 평소부터 공인으로서 사회 참여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심현은 작년에 불우이웃을 위한 재단에 30억을 기부했다. 이에 누리꾼들은 “얼굴만 멋진 것이 아니라 마음이 정말로 멋져…” “최고의 가수인데도 끊임없이 도전하는 모습이 대단해…” 같은 반응을 보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 되지 않는 그의 변화가 단숨에 설득력 있어지는 순간이었다. 심현이 모르는 사이에, 이런 정보들은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로 순식간에 확산되었다. 다음 날 아침, 자고 일어난 심현은 침대 위가 계피 가루로 범벅이 된 것을 깨달았다.

    “은퇴를 하셔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럴 수는 없어요!”

    심현은 소리 지르며 일어났다. 흥분한 나머지 입에서 침이 튀어나와 책상에 떨어졌다. 소독약 냄새가 나던 병실 안에 달콤한 꿀 냄새가 감돌았다.

    “이런 바보 같은 해프닝으로 무대를 떠나라뇨, 저는 평생을 여기 바쳤어요! 제 전성기는 이제 시작이란 말입니다!”

    “그 전성기가 문제예요. 저는 이 이상 병이 진전되면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어요. 위험할 수도 있단 말입니다.”

    그는 분을 삭이지 못하고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설탕 가루가 몸에서 우수수 쏟아졌다.

    “방금 몸에서 설탕이 떨어진 건가요?”

    “계피요.”

    “아.”

    의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차분한 어조로 다시 말했다.

    “심현씨는 지금까지 무대에 인생을 바쳐 왔잖아요. 다른 인생을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예요.”

    심현은 고개를 푹 숙였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의 말이 전적으로 옳았다.

    “조금, 생각해 보겠습니다….”

    심현은 고개를 푹 숙여 감사를 표하고 자리를 떠났다. 전성기에 이르자 스스로 물러난 가수는 지금까지 없었다. 그가 존경하는 예술가들이란 본래 그 길이 파멸로 예정되어 있더라도 달려가는 자들이었다. 심현은 자신이 그럴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그러면서도 만약 은퇴한다면 은퇴 무대만은 역사에 남을 만큼 화려한 것으로 하고자 마음먹었다.

    돌발 은퇴를 선언한 심현이었지만 티켓은 1초도 걸리지 않고 매진되었다. 이는 역사상 가장 빠른 티켓 매진으로 기네스에 올랐다. 고가의 암표가 나돌았고, 가짜 암표를 백만 원에 구매한 사건이 인터넷 뉴스로 올라왔다. 무대 관계자가 표를 빼돌려 차를 마련했다는 수상하기 짝이 없는 루머가 나돌았고, 심현의 은퇴에 대한 음모론과 도시 전설이 난무했다. 그렇지만 시간은 결국 흘러, 팬들이 어떻게 생각하건 은퇴 공연 날짜가 다가왔다.

    심현이 무대에 오르자 이 세상의 것으로 들리지 않는 거대한 함성이 울려 퍼졌다. 팬들은 심현의 숨소리조차 놓치지 않기 위해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제 마지막 무대에 와주신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

    그가 말하자 사람들은 사방에서 눈물을 터트렸고, 마음이 약한 몇몇은 기어이 쓰러지기에 이르렀다. 대기하고 있던 구급대원들이 쓰러진 사람들을 호송하려 했지만, 팬들은 어떻게든 앞자리를 지키기 위해 누구도 비키지 않았다.

    그리고 공연이 시작되었다. 그가 기대한 것만큼 완벽한 무대였다. 심현은 자신이 이 순간을 위해 태어났다고 확신했다. 미리 주변 수 킬로미터를 구충 작업 해뒀기 때문에 벌레가 달려드는 일도 없었다. 꿀물 같은 끈적한 땀이 쏟아졌지만, 화려한 조명에 사람들은 그것을 눈치채기도 어려웠다. 그런 조명 속에서도 심현은 빛을 잃지 않았다.

    고작 첫 곡이 끝났는데 사람들이 무대 위로 뛰어들었다. 예상된 사태였고, 경비병들이 막았지만 그 수가 너무 많았다. 한 명, 두 명, 경비를 제치고 무대 위로 올라오는 팬들이 생겼다. 그렇지만 심현은 피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이렇게 팬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는 감동이 벅차올라, 그는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껴안아 주리라 마음을 먹고 두 팔을 벌렸다.

    팬들이 그의 팔을 물었다. 바삭, 하고 부러졌다. 달콤한 진저브레드 맛이었다. 10분 뒤, 그가 있었던 자리에는 달콤한 냄새가 나는 부스러기만이 남아 있었고, 개미와 파리가 지나간 뒤에는 그마저도 없어졌다.

    이거 향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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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아 外

    고아는 어미를 찾고 있다.

    슬픈 눈을 한 고아는 주위를 둘러보며 제 어미를 찾고 있다.

    간신히 기억하고 있는 어미의 얼굴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조금도 어미를 닮지 않은 낯선 어른이 다가온다.

    고아는 겁먹은 표정으로 어른의 얼굴을 올려다본다.

    죄송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이산가족 상봉 신청 조건이 되지 않습니다.

    고아는 슬픈 눈으로 그제서야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손톱이 좀처럼 자라지 않아 엄지손가락 살을 벗겨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옆으로 길게 자라 있었다.

    잘 보니 반달 모양이라 맞은 편도 벗겨보니 둥근 원 모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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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자 단편 (주제 : 황금 도롱뇽)

    “사금을 찾으려고 무식하게 강을 뒤집어 놀 필요는 없어.”

    노인이 말했다.

    “도롱뇽 한 마리를 상류에 흘리고, 아래서 기다리는 거야. 하루, 이틀, 며칠쯤 지나면 먹이를 찾아 슬금슬금 내려오는데, 흘려보낼 때랑 똑같은 놈이면 꽝이고 몸이 반짝이면 대박이지. 우리는 그걸 황금도롱뇽이라 부르는데, 강에 금이 있다는 뜻이거든. 그러면 그때부터 강을 퍼올려 사금을 캐는 거야.”

    “어떻게 그럴 수 있죠?”

    “도롱뇽의 피부에서는 점액이 나와, 물 속에서도 끈적이거든. 그러니 헤엄칠 때 사금이 몸에 달라 붙는 거지.”

    나는 그것 참 말이 된다 싶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옛날에 무슨 200자 단편 공모전인가 썼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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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시 스팸문자발송기를 만날 수 있을까요?

    안경점에서 문자가 왔다.

    ‘(광고)

    <스마트 안경점>

    OOO 고객님, 생일 축하합니다~♡

    즐겁고 행복한 하루 되세요~!’

    그제서야 나는 내 생일을 알게 되었다. 나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내 생일을 십 년도 전에 방문한 안경점의 문자 발송기가 기억하고 있는 것이었다. 문자 목록을 위로 올리면 매년 똑같은 날,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내용은 문자가 날아오고 있었다. 나와 문자 발송기의 기묘한 우정은 그렇게 십년 가까이 이어진 것이다. 전화번호로 가득한 내 핸드폰에서 이상하게도 스팸만이 가장 인간적인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나는 오랫동안 생각해 온 계획을 실행하기로 마음먹었다. 십년 전과는 달리 어디든 갈 수 있는 나는, 내가 어릴 적 살던 동네도 쉽게 방문할 수 있었다. 혹시 헛걸음할까 싶어 인터넷을 통해 확인해보니 주말에도 정상 영업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가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오세요, 혹시 찾으시는 것 있나요?”

    점원이 반가운 얼굴로 나에게 말했다. 아마 다른 사람이 들어와도, 다음에 들어와도, 언제 들어와도 똑같이 말해줄 것이다.

    “저, OOO인데요.”

    나는 내 것인 것같은 이름을 입에 담았다. 처음 말해 보는 것 같았다.

    “네? 누구시라고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입을 열었다.

    “여러분에게 볼 일이 있는 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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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 팝니다 (생활 기스 있음)

    “진짜, 진짜 한 번 더 진지하게 생각해 주세요. 이런 매물 쉽게 안 올라온다니까요.”

    “아니, 이게 생활 기스 수준이라고 퉁칠 수준이냐고요. 물건이 이러면 버려야지, 이런 걸 무슨 양심이 있어서 옥션에 올려요? 우리는 이런 거 취급 안 해요, 나가요.”

    오늘(*)만 벌써 다섯 번째 축객령이 내려졌다. 나는 준비해 온 자료들은 주섬주섬 챙겨 거래소를 빠져나왔다. 2급 거래소는 거의 다 돌아봤지만, 어디도 지구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다음 거래소에서도 받아주지 않는다면, 지구는 영락없이 3급 거래소로 내려갈 운명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어찌어찌 지구를 처분한다고 해도 이주할 행성이 막막했다.
    (*오늘이란, 1300596호 태양계를 공전하는 지구 행성의 제 1 문명이 규정한 1회 자전을 의미한다. 단, 이 경우 정확히 해당 시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긴 시간을 표현하는 관용적 의미이다.)

    “어떻게 됐어?”

    예람이 물었다. 나는 대답하는 대신 어두운 얼굴을 보여줬다. 예람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산소 있다는 이야기는 했지?”

    “대기 농도 5% 이하는 안 된대. 네가 이런 말은 잘하는데, 어떻게 좀 해보지.”

    “어쩔 수 없잖아. 신체 중 탄소 성분이 25%가 넘어가는 종족이랑은 거래를 안 한다는데.”

    하긴, 내가 거래소에 들어간 것도 일종의 편법이었다. 내 인공 장기가 인류의 보편적인 특성인 것처럼 속여 어떻게든 거래를 뚫은 것이다. 인간이 잘 알려진 주류 종족이 아니란 것은 다행이었다. 그런 보람도 없이 곧바로 쫓겨났지만.

    “너도 장기 바꾸지.”

    “돌았어? 자연 장기가 얼마나 비싼데.”

    예람이 질색하며 대답했다. 나는 목소리를 깔았다.

    “지구의 운명이 걸려 있잖아.”

    “지구에 있는 집 팔았어.”

    나는 못 팔았는데.

    사실 지구의 위기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기록을 뒤져보면 20세기쯤부터 학자들은 이런 사태를 경고해 왔다는 것 같다. 그렇지만 늘 그렇듯이, 당장 문제가 닥치는 것이 아닌 한, 인간은 외면하고 만다. 생물학적 특성이 그렇다. 인류의 뇌가 그렇게 설계되어 있다는 건 얼마 전에 증명되었으니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일이다. 섹스를 하지 말라는 것과 비슷하지 않은가.

    “그러고보니 옛날에 섹스를 안 하는 종교가 있었던 것 같은데, 뭐라고 부르더라? 붓다이즘?”

    “뜬금없이 무슨 개소리야?”

    아, 이런. 또 다른 생각으로 빠졌나 보다. 인공 뇌가 보급형이라 그런지, 가끔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다가 생각이 막히는 순간, 그것이 입으로 튀어나오는 것이다. AS 센터에 문의도 해봤지만, 원래 내 성격이란다. 그럴 리가 없는데. 애플에서 샀어야 했는데.

    “집중 좀 해. 다음이 마지막 2등급 거래소야. 여기서도 안 받겠다고 하면, 3등급 거래소로 내려가야 해. 3등급 거래소는 대기층도 불안정한 왜행성에 물이랑 이끼 조금 뿌려놔도 올려 준다는데 믿어져? 지구를 팔고 그런 행성을 가져갈 수는 없잖아.”

    나는 갑자기 그 왜행성에 맥도날드가 있을지 궁금했다. 그렇다고 하면 그리 살기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노력하고 있어. 그렇지만 알잖아, 내 뇌가 집중하기 힘든 거. 이래서 뇌만큼은 타협하면 안 된다니까.”

    “그건 네가 등신이라 그래. 요즘 애플 보급형이 얼마나 좋은데.”

    “내껀 마소거든….”

    작은 소리로 항변해 봤지만, 예람은 듣고 무시하는 건지, 들을 생각이 없는 건지 저 앞으로 앞서 나아가버렸다.

    “행성을 등록하러 오셨다고요.”

    거래소 관리인이 촉수를 깜빡이며(*) 말했다. 나와 예람은 입을 열지 않도록 조심하며 미소 짓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빨을 보이는 것이 대부분 종족에게 위협의 의미라는 유튜브 영상을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준비해놓은 자료를 관리인에게 건넸다. 관리인은 그것을 촉수로 잡아채더니 그대로 입으로 추정되는 기관으로 넣어 버렸다. 아, 열심히 준비했는데. 실망해 어깨를 늘어트리고 있자 예람이 설명을 시작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표면적 5억 ㎢에, 고체 물질로 이뤄져 있습니다. 중력도 있고, 대기층이 있지만 빛도 제대로 들어오고요. 어, 적외선이랑, 가시광선, 자외선 중 하나만 볼 수 있으면요.”

    “어… 말 끊어서 미안한데요, ㎢요?”

    “지구 단위예요. 단위에 대해서는 지구가 보증합니다.”

    “…뭐. 그렇게 기록해두죠. 5억 ㎢… 미안한데, 이거 어떻게 쓰죠?”

    “아, 메모해 드릴게요.”

    한참 설명하던 예람이 메모지에, 연필로 또박또박 ㎢를 정자로 기록했다. 관리인은 그것을 유심히 지켜보더니 물었다.

    “혹시 그거 흑연인가요?”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목소리를 높였다.

    “네! 지구에 많아요! 혹시 드릴까요?”

    “아니요. 저는 됐어요. 대신 흑연 알레르기가 있는 종족이 좀 많거든요. 흑연 있음….”

    관리인은 촉수를 분주히 움직이며 무언가를 기록했다. 나는 굳이 보지는 않았지만 예람이 나를 뚫어지듯 노려보고 있을 것이라 짐작했다. … …살짝 엿봤다. 예상대로였다.

    “윤, 하나만 부탁해도 될까?”

    “뭔데?”

    “닥치고 있기.”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말했다.

    “어렵지 않지. 사실 그게 내 주특기거든.”

    관리인은 기록을 멈추고 다시 우리를 돌아보며 촉수를 깜빡였다.(*)
    (* 아니, 정말 어떻게 그게 가능한 거지?!)

    “지구에 대해 주신 자료는 얼추 보고 있는데요….”

    “아, 나는 먹은 줄 알았어요!”

    예람이 나를 노려봤다. 닥치기, 닥치기….

    “일단, 인간이 지구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은 어떻게 증명하죠?”

    “저희는 지구에서 진화했어요. 그리고, 200년 전에 정식으로 행성 소유 절차를 밟아서 처리했고요.”

    관리인은 촉수로 자신의 몸을 감았다. 나는 그게 턱을 쓰다듬는 것 같은 행위라고 확신했다.

    “그건 알지만, 유일한 문명 지성체가 아니라면요? 행성을 공동으로 소유하는 문명이 있으면 거래가 안 돼요. 예를 들어, 여기 적어 놓은 개미라던가….”

    “자료에 그런 것까지 적었어?”

    “….”

    “안 닥쳐도 되니까 말해봐.”

    “어.”

    내 취미란 말이야, 개미 키우기. 개미가 얼마나 대단한 문명을 이룩했는지, 하루종일 말할 수 있다. 예람은 한숨을 내쉬었다.

    “개미 멸종시키는데 얼마나 걸려?”

    “매미의 전례를 봐서는 한 3일 정도? 내가 연락해 놓을게.”

    “네, 이 문제는 해결됐네요. 다른 문제 있나요?”

    “오… 아니요. 됐어요. 이 문제는 넘어갈 테니까 이 이상 다른 생명체를 죽이지 말아줘요….”

    관리인이 기겁하며 만류했다. 그러고보니 다른 생명체를 죽이는 것에 인간이 유독 담담하다는 유튜브 영상을 본 기억이 있었다. 댓글에 그린피스의 전례를 달아서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 사람과 토론을 했던 기억이 갑자기 떠올랐다.

    “저기, 우리가 멸종시켰던 동물 중에 그린피스가 보호하던 동물이 있었잖아, 그게 뭐더라? 웨이루라고 불렀던가? 일본어 같은데, 맞나?”

    나는 예람을 돌아보며 물었다.

    “아, 미안, 닥치기. 기억났어. …그렇지만 네가 방금 안 닥쳐도 된다고 먼저 말했던 거 기억하지?”

    “지금 지구를 구매하시면 사은품으로 달도 드립니다. 달은 자연 위성인데, 낙하하거나 궤도 이탈할 가능성은 0에 수렴한다고 보면 됩니다. 외우주 파편들이 행성에 떨어지는 걸 막아주고, 조수의 통제도 지원합니다. 무엇보다 역사, 문화적인 가치가 높아요.”

    나는 예람이 들었는데 무시한 건지, 듣지 못한 건지 궁금했다. 예람의 설명을 듣고 관리인은 의아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지구에는 바다가 없지 않나요?”

    “어… 그건, 중요한 기능이 아니라서요. 그냥 혹시 바다를 설치하신다면 쓰실 수 있다는 거죠.”

    교과서에 쓰인 내용을 그대로 말하니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예람은 언제나 이런 임기응변이 약했다. 그게 나의 존재 이유라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입을 열었다.

    “특이하게도 지구에서 올려다보면 달은 언제나 전면만 보이는데요, 아, 특이하다는 건, 인위적으로 조절하지 않았는데도 자연적으로 그런 상태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하여튼, 이게 지구의 지표면에서 찍은 사진인데, 보시면 알겠지만 달에 Mcdonald라고 써있죠. 이건 지구의 기업인데요, 전광판으로 설치된 광고라서 전기만 공급해 준다면 24시간 지구에 사는 모든 생물이 볼 수 있는 거죠.”

    “아, 흥미롭네요.”

    예람은 놀랐다는 듯이 눈을 크게 뜨고는 눈짓을 까닥했다. 그녀는 무언가 감사를 표할 때, 늘 이렇게 소극적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녀의 그런 성격을 알았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했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이 더 치고 나갈 때라는 거지.

    “훌륭한 점은 달의 둥근 모양이 맥도날드의 버거 모양을 연상시킨다는 겁니다. 다른 광고라면 달의 공전 주기에 따라 모양이 무너질 수도 있지만, 맥도날드의 경우는 한 입 베어 문 것 같은 모양이 되기 때문에 도리어 식욕을 자극하죠. 무엇보다 추천하는 메뉴는 역시 시그니쳐 버거인 빅맥인데, 고대의 사치 식료품인 밀을 99% 재현해낸 빵과, 인공육 패티가 절묘하게 어우러지죠. 베어 물면 촉촉한 육즙이 흘러나와 빵을 촉촉하게 적시는데, 이 맛이 또 절묘합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어필이 되었을 거다. 나는 다시 예람을 돌아봤다. 어….

    “…빅맥보다는 상하이 스파이시 치킨 버거를 좋아하던가?”

    “쉿.”

    “네.”

    뭐, 입맛은 여럿 있는 법이니까. 경험상 나는 심기가 불편한 예람에게 말을 거는 게 좋은 생각이 아니란 걸 알았다. 관리인은 자신의 몸을 촉수로 휘감았다.

    “좋습니다. 등록할 수 있도록 검토해 보죠.”

    “정말인가요!”

    무심코 목소리를 높여 되물었다.

    “그러면 조만간 검사관을 지구로 보낼 테니까 잘 부탁드립니다.”

    “…네? 검사관이요?”

    나는 예람을 돌아봤다. 예람도 아는 바가 없는지 고개를 저었다. 큰일이다. 그러면 정말로 모르는 건데.

    “일반적인 경우는 아닙니다만, 행성을 등록하기 전에 옥션에서 재량껏 검사관을 파견하기도 합니다. 주로 행성 사기가 의심되거나 하는 경우인데….”

    예람이 나를 바라봤다. 같이 준비했으면서 왜 나를 봐. 산소 농도를 올려 잡으라고 한 건 너잖아. …물론 내가 혼자 수정한 부분이 꽤 있긴 한데.

    “어… 그러면 어떤 부분이 문제가 되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예람이 물었다. 그러자 검사관이 나지막하게 촉수를 깜빡이며 말했다.(*)
    (* 3번째다! 한 번으로도 충분히 진귀한 것을 나는 하루에 3번이나 본 것이다!)

    “아뇨. 별건 아니고. 혹시 그 빅맥이란 거 포장도 되나요?”

    “아.”

    나는 예람을 쳐다봤다.

    “내가 조금 실감 나게 설명하긴 했지?”

    “넌 병신이야.”

    “그런가 봐.”

    검사관의 우주선이 느릿하게 착륙하고 있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준비해 놓은 것들을 다시 되새겼다. 정말 중요한 순간이니 실수하면 안 돼.

    “기억하고 있지?”

    예람이 물었다. 그녀는 나를 지나치게 신뢰하지 못하는 면이 있었다. 한 번은 내가 자신과 같은 시험을 통과한 공무원이라는 것을 믿지 못하고 시험 기록을 해킹한 것을 내가 발견한 적도 있었다. 그 뒤로 한동안 굉장히 기분이 나빠 보였지만.

    “결국 내가 시험 성적이 더 높아서 그랬던 거지?”

    “뭔 얘기를 하는 거야?”

    또 뇌가 오작동을 일으킨 모양이다. 아, 그래, 주의사항이었지.

    “하나, 닥치고 있기.”

    “다음.”

    “둘, 1.5m 거리를 유지할 것.”

    “좋아.”

    “셋, 진짜 존나 진지하게 닥치고 있기.”

    “잘 기억하고 있네. 그대로만 해줘.”

    “내 주특기라고 전에 말한 적 있던가?”

    예람의 대답을 기다리는 사이에 우주선은 어느덧 착륙해 문이 열렸다. 그 안에서 관리인과 같은 종족으로 보이는 촉수가 달린, 그, 우리 말로 설명하기 조금 난해한 형태의 외계인이 걸어 나왔다.

    “거래소 관리인…?”

    “종 차별주의자 같은 소리 하지마. 눈 개수가 다르잖아.”

    내가 말하자 예람이 놀란 듯이 나를 쳐다봤다. 왜? 우리가 어쩌면 종족 중 지구에 처음 방문한지도 모르는 감시관을 맞이하기 위해 다가가려니, 그보다 먼저 감시관을 향해 다가가는 사람이 있었다. 필립이었다.

    “지구 방문을 환영합니다!”

    필립은 큰 몸을 뒤뚱거리며 달려가더니 두 팔을 벌려 인사를 건넸다. 아, 저러면 안 되는데. 예상대로 감시관이 촉수로 필립을 때렸고, 그는 영문도 모르고 내 쪽으로 도망쳐 왔다.

    “이봐, 윤! 이건 무슨 의미지? 혹시 외계의 인사법인가?”

    “아니, 감시관께서는 그냥 너를 때리는 거야.”

    “왜?!”

    “그러게 인사할 때 이빨을 보이지 말았어야지.”

    어리석은 필립은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지구 밖이라고는 한 번도 나가본 적 없는 지구 촌놈이었으니까. 그래도 우리가 명왕성에서 신 나는 휴가를 보내는 동안 지구에 틀어박혀 공부한 보람이 없는 것은 아닌지, 필립은 우리보다 무려 2등급은 높은 공무원이다. 지금도 현장 관리인으로 우리의 상사로 와 있으니까.

    “이빨은 왜 보이면 안 되는데?!”

    “글쎄, 네 누런 이가 마음에 안 들었나 보지.”

    거울을 꺼내 자신의 이빨을 빤히 쳐다보는 필립을 내버려두고 나는 예람과 감시관을 향해 걸어갔다. 감시관은 위협당했다고 믿는지 굉장히 불쾌한 것 같았다. 어떻게 수습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으니 예람이 말했다.

    “무례를 용서하세요. 저자는 우주의 일반적인 매너를 배우지 못한, 어…”

    “애완동물입니다! 잘 가르쳐 놓겠습니다!”

    예람이 당황해서 나를 쳐다봤다. 나는 믿으라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구는… 애완동물을 방치해서 키우나 보군요. 다음부터는 조심해 주세요.”

    “그러겠습니다.”

    나는 정중히 대답했다. 불쌍한 필립. 졸지에 애완동물이 되다니. 나는 연민을 아끼지 않고 필립을 바라봤다. 그런 나를 예람은 어이없다는 듯한 시선으로 바라보더니 고개를 돌렸다.

    “그러면, 지구의 문명 수준을 보고 싶으니 일반적인 거리로 데려가 주실 수 있나요?”

    “아, 네. 차량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가시죠.”

    예람은 미리 준비된 차량으로 먼저 앞서 가기 시작했다. 나는 잠깐 망설이다가 돌아보고 감시관을 향해 물었다.

    “저 한 가지만 물어봐도 돼요?”

    “네?”

    “그, 촉수로 몸 감는 거 있잖아요, 우리 인간 식으로 따지면 턱을 쓰다듬는 거랑 비슷한 거죠? 예를 들어서, 생각할 일이 있거나, 손이 심심할 때 하는 행동인데, 당신의 케이스로 말하면 촉수가 심심하다고 해야 하나…”

    “가자, 병신아.”

    예람이 말했다.

    “네… 됐어요, 신경 쓰지 말아요.”

    나는 결국 호기심을 해소 하지 못하고, 아직도 자신의 이빨에 열중하고 있는 필립의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갔다. 그는 곧 자신이 추태를 보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듯이 허겁지겁 예람의 앞으로 뛰어갔다. 맥도날드가 만들어 준 그의 훌륭한 지방이 출렁거렸다.

    감시관은 차를 타고 가는 내내, 지구인의 기준에 맞춰진 차량의 크기에 불만을 표했다. 그런 감시관을 달래기 위해 필립은 옆에서 되는대로 말하고 있었지만 내가 보기에 그렇게 유의미해 보이지는 않았다. 예람은 차를 몰고 있었기 때문에(*) 그 참상을 보지 못했지만 나는 가는 내내 필립이 만드는 어색한 분위기에 고통받아야 했다. 다행히 우리는 금방 준비된 시내에 도착했다.
    (* 예람은 뭐든지 자동 주행을 못 믿었다. 아니, 운전 교습소가 아직도 세상에 남아 있단 말이야? 그건 대체 어떤 동굴에 있지?)

    “과연, 어느 정도 문명을 갖추고 있긴 하군요.”

    “예. 저희는 저희가 이룩한 모든 문명을 고스란히 보관해 다음 주인에게 넘길 겁니다. 제대로 통제할 수 있을 만큼 지성이 있다면 생활에 불편한 점은 없을 겁니다.”

    감시관은 예람의 설명을 들으며 흥미롭다는 듯이 거리를 둘러봤다. 필립은 불안한 한편, 지구가 고작 ‘어느 정도’ 취급받는 것에 불만을 품은 것 같았다. 애완동물 주제에 건방지구나.

    “그런데… 이 행성은 분명히 인류에게 적합한 대기를 가진 것이 맞죠?”

    “아.”

    올 것이 왔다. 나와 예람은 재빨리 시선을 교환했다.

    “네, 맞습니다. 그렇지 않고선 여기서 진화해서 문명을 이룩할 수 있을 리가 없었겠죠.”

    “저희 문명이 본격적으로 화학 연료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3~400년밖에 되지 않습니다. 거의 새거나 다름없죠.”

    “그런데, 저 인간들이 호흡기에 차고 다니는 건 뭔가요?”

    산소호흡기다.

    “악세사리입니다.”

    “유행하는 패션이죠. 23세기를 강타했다고 할까. 가시는 길에 하나 선물해 드릴까요?”

    예상한 질문이었던 만큼 우리는 준비된 대답을 빠르게 말했다. 혹시나 달라고 할 경우를 대비해서, 산소 호흡기 기능을 제외한 동일한 모델을 준비하기도 했다. 예람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혹시 커플 세트를 요구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 하나 더 준비해 놓기도 했다. 무엇보다 우리는 미리 시내에서도 호흡할 수 있도록 비싼 산소 캡슐을 입에 물고 있으니 설득력은 있었을 것이다. 감시관은 그럭저럭 납득한 모양이었고 우리는 속으로 안도했다.

    “뭐? 아니, 저건…”

    필립이 부랴부랴 산소 호흡기를 입에 차며 말했다.

    “필립, 너는 윤이랑 다르다고 믿을게. 제발 닥쳐.”

    예람은 그런 필립의 말을 서둘러 끊었다. 필립은 잠깐 멍하니 서 있더니 뭔가 알아차렸다는 듯이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그때마다 턱살이 흔들렸다.

    “아, 아, 아아, 과연, 알았어. 그런 의미구나!”

    그리고는 우리를 향해 눈을 찡그렸다. 아마 윙크하려고 했던 것 같다. 두 눈을 다 감아버린 것만 빼면 그럴듯한 윙크였다.

    “저 애완동물은 왜 저러죠?”

    “글쎄요, 눈이 아픈가 봐요.”

    “당신의 애완동물, 한 번 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아까 보니 이빨도 너무 누렇더군요.”

    “압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문득 바닥에 개미가 기어가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몰래 발끝을 들어 슬쩍 눌렀다. 잘 가, 지구 최후의 자연 상태 개미야. 눈물이 핑 돌았다.

    감시관이 촉수로 몸을 감으며 말했다.

    “지구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았습니다. 사실, 저는 지구가 2등급 행성으로 거래되기 적합한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어떤 점에서 말이죠?”

    “당신들이 준 자료에는 지구에는 생활 기스가 조금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네, 뭐어, 새 물건은 아니니까요. 그렇지만 잘 보지 않으면 모를 수준이죠.”

    나는 어디까지나 담담하게 대답했다. 사실 조금 뻔뻔한 면이 있었지만, 중고 거래는 원래 그런 법 아닌가.

    “예를 들어, 당신네 행성에는 몇백 년 전까지 바다가 있었던 흔적이 있다고 하는데,”

    잘 숨겨놨는데 어떻게 알았지. 예람과 나는 서로 마주 봤다.

    “어… 그건 뭐라고 할까, 필요에 의해 공사를 했다고 할까요….”

    “어째서요?”

    예람의 말에 감시관이 물었다. 스스로 아는지 모르는지 예람은 나를 흘깃거리며 바라봤다. 나는 입을 열었다.

    “물을 뺐습니다. 의도적으로요. 간빙기가 끝났거든요.”

    “네?”

    “지구인은 더운 계절에는 본능적으로 바다를 찾아가는 습성이 있습니다만, 빙하기가 시작된 이상 더운 계절이 없으니 별 의미가 없어서 물을 뺐습니다. 원래는 다음 간빙기가 시작되면 다시 채워 놓을 생각이었는데 그 전에 행성을 처분하게 되어서요.”

    내가 말을 끝내자 예람이 격렬하게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다. 왜? 괜찮은 변명인데.

    “아, 그거 말 되네요.”

    내 예상대로 감시관은 납득한 듯이 촉수를 깜빡이며 말했다. 예람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와 감시관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러게, 내가 너보다 외계 문화 과목에서 성적이 높았던 걸 기억해야지.

    툭.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서 돌아보니 필립이 경악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나를 향해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아, 과연.

    “저기, 방금, 그건, 지금,”

    “알아, 촉수를 깜빡였지.”

    “어떻게, 아니, 그게 대체, 왜,”

    “이해해, 나도 처음 봤을 때 놀랐거든.”

    나는 필립의 등을 두드려줬다. 필립은 조금 숨을 쉬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건 뭔가요?”

    감시관이 흥미롭다는 듯이 물었다. 필립은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떨어트린 비닐봉투를 줍고는 먼지를 툭툭 털었다.

    “아니요, 그, 별건 아닌데, 잠깐 점심을 사 와서. 혹시 햄버거도 드십니까?”

    “잘했어, 필립!”

    나는 두 손으로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어, 뭐가?”

    “그렇게, 우리는 정식으로 또 다른 2등급 행성으로 이주하도록 결정됐습니다! 비록, 정든 옛 고향을 버리고 떠나는 것은 괴롭지만, 인류는 언제나 과감한 결정을 통해 진보해 왔습니다! 우리의 새로운 고향이 될 행성에서는 더이상 산소통을 매고 다닌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다시 한 번 바다를 볼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조심하지 않으면 용암에 빠지지만… 하지만,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을 만큼 이상적인 환경입니다! 희생 없는 낙원은 없는 법이니까요. 우리 인류를 위한 새로운 유토피아인 것입니다!”

    “질문이 있습니다.”

    “연합신문에서 오신 기자분이군요. 네, 말씀하시죠.”

    “그 새로운 행성에 맥도날드 지점은 몇 개나 있나요?”

    옛날에 재미삼아 썼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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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승의 모습 外

    어느 날, 선생님이 내게 재밌는 것을 보여주겠다며 콘솔 창을 켜더니 이런 것을 입력했다.

    Weight : 36.4kg

    그러자 목각인형이 마치 춤추듯이 허우적거리기 시작했고, 선생님은 웃으며 내게 말했다. 잘 봐라, 이게 저승의 모습이란다. 그 모습을 나는 언제까지고 가만히 응시했다.

    나는 어릴 적 할아버지 집에 방문하는 것이 싫었다. 그 집 현관에 있는 전시장 안에는 박제된 라쿤의 박제가 있었고, 나는 박제에 인사하게 하는 할아버지가 무서웠다.

    하루는 잠을 자는데 현관 쪽에서 동물이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려 밝을 때까지 벌벌 떨며 밤을 지새웠다. 그 얘기를 할아버지에게 하자 할아버지는 반색하며 말했다.

    “수호신이 나쁜 것이 들어오지 못하게 너를 지켜준 거란다.”

    그 뒤로 나는 할아버지의 집에 방문할 때마다 핑계를 대며 가까이하지 않았다. 그 울음소리는 바깥쪽이 아니라 안쪽을 향하는 것처럼 들렸으니까.

    한 여자가 아이를 내려다보고 있다.

    아이는 울고 있고 여자는 계속 아이를 내려다본다.

    방은 어둡고 아이는 울고 있고 언제까지나 아이를 내려다보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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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쟝의 세 번째 이빨 (1)

    쟝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위대하고 아름다운 만남을 기억했다. 그건 6살 무렵, 딱딱한 빵을 씹던 때였다. 빵을 물어 뜯다가 평소와 달리 혀 근처가 허전하고 입에 찬 바람이 든다는 걸 깨달은 쟝은 즉시 자신의 몸에 일어난 변화를 체감했다.

    그 광경은 선명히 떠올랐다. 창밖의 바람이 불때마다 털지 않은 커튼에 쌓인 먼지가 방 안을 떠다니고, 정오 무렵의 햇살에 방바닥의 곰팡이가 선명하게 보이고, 물때와 케첩이 묻은 테이블과 낡은 의자, 거기 앉은 자신의 손에 들린 빵, 그리고 거기 박혀 있는 자신의 앞니.

    이가 이르게 빠진 잇몸에서는 피가 흘렀지만 쟝은 그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넋이 나간 채로 이빨을 몇 번이고 햇빛에 비춰보았다. 그날부로 쟝은 당시 가장 아끼던 유리 구슬이 든 병을 비우고, 그 안에 자신의 앞니를 소중하게 담아 놓았다. 그리고 같은 날 밤, 쟝은 부모님 몰래 실과 망치를 방에 가지고 들어가, 자신의 남은 이빨을 모두 뽑아버렸다.

    통증과 출혈로 어지러웠지만, 그의 병 안에는 피 묻은 19개의 유치가 전리품으로 들어 있었다. 너무 빨리 이빨을 뽑은 탓에 음식을 씹을 수 없었고, 쟝은 도시 한복판에서 거의 굶어 죽을 뻔했지만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하지만 그때 이후로 살이 붙질 않아서 살집이 있는 편이었던 쟝은 길가의 거지조차 손을 내밀지 않을 만큼 말라붙었다.

    그것이 그가 기억하는 첫 번째 변신이었다. 하지만 병을 채우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이빨은 지금보다 수십 배는 더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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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작년쯤 썼던 추리소설 도입부

    이사악 이고레비치 티냐노프(Исаак Игоревич Тынянов), 아니, 이제는 그저 이사악 티냐노프는 오랫동안 아리아인들과 피를 섞어온 조상들의 노력이 색바랠 정도로 유대인의 전형이였다. 검은 곱슬머리와 어쩐 일인지 5도 정도 기울어져 있지만 여전히 인상적인 크고 긴 코, 주근깨 박힌 얼굴과 말 끝마다 “하지만.”을 붙일 것같은 불만스러운 표정 등이 그러했다. 하지만 그러한 인상이 어찌되었건 그와 조금만이라도 함께 한 사람들은 모두 그가 좋은 의미건 나쁜 의미건 ‘일반적인 유대인’과는 상당히 동떨어진 괴짜인 것을 알 수 있었다.

    티냐노프 가(Тынянов 家)의 장남으로 태어난 이사악은 어릴 적부터 랍비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받으며 자랐다. 심지어 명절에만 간신히 만날 수 있는 몇몇 친척들은 이미 그가 랍비가 되었다고 생각하는지, 자신의 철없는 자식들의 손을 잡아끌며 그에게 찾아오고는 ‘지혜롭고 어른스러운 이사악’을 조금이라도 본받는게 어떻냐며 일장연설을 늘어놓곤 하였다. 그가 한 것은 사촌들이 양각나팔을 불어보겠노라 떼쓰는동안 가만히 식탁에 앉아 있었던 것이 다였기에 이는 명백히 과한 찬사였다. 이런 취급의 배후에는 아버지가 있었다. 그는 이사악의 손가락이 다 붙어있는지 확인하기도 전에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가 랍비가 될 것이라 소개했고, 심지어 즐기는 것이 분명했다. 그 때마다 이사악은 “응애”라던가, “으앙”이라는 말로 그것을 소극적으로 정정했을 것이 분명하지만, 그런 그의 노력은 아무래도 영 신통찮았는지 6살이 된 해의 로쉬 하샤나*에 처음 만난 고모로부터 들은 첫 인사는 “만나서 반가워요, 꼬마 랍비님.”이였다.

    (*유대교에서의 신년.)


    이사악의 아버지, 이고르 세르게예비치 티냐노프(Игорь Сергеевич Тынянов)는 내가 아는 한 가장 조용히 자는 사람이였다. 어릴 적, 그는 수 차례나 아버지가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아버지의 가슴팍에 귀를 가져다 대야만 했다. “너희 아버지는 힘든 시절을 견뎌왔단다.” 어머니, 안나 티냐노프(Анна Тынянов)는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이렇 듯이 아버지는 금욕적인 사람이였다. 심지어 그는 청교도적인 신념을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그에게는 더없이 모욕적일 것이라는 것은 알지만서도─ 가지고 있는 듯이 보였고,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몹시 경박한 것이라 여기는 게 분명했다. 자식인 이사악조차도 그의 웃는 얼굴을 떠올릴 수 없으니 말이다. 그렇게 절제된 감정 표현 속에서도 놀랍게도 그는 아버지에게서 그가 랍비 일을 이어줄 것이라는 강렬한 기대를 느낄 수 있었다. “가장 힘든 순간 의지할 수 있는건 유대인 밖에 없다. ” 그는 종종 말했다. “뿌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그리고는 자신이 유대민족의 정통성을 잇는 마지막 투사인 것처럼 비장한 표정을 보이고는 했다.

    그런 아버지와 달리 이사악은 우유부단한 사람이었다. 될 수 있는 한, 자신의 선택을 마지막까지 유보하려 하는 그런 사람이였고, 그렇기 때문에 그는 분노한 폭도들이 내던지는 맥주잔에 얻어맞은 후에야 무거운 엉덩이를 들고 러시아로부터 도망쳐 나왔다. 게으름의 대가로 그가 남들보다 5도 정도 비뚫어진 코를 가지게 된 것은 물론이다. 그런 그의 성격을 이해한다면 그가 친인척 한 명 없는 영국으로 망명을 선택한 것은 그렇게 놀랄만한 사실도 아닐 것이다. 그는 왕립주의자도 아니였고, 공산주의자 역시 아니였으며, 시온주의자가 아님은 물론이다. 그는 굳이 분류할 필요가 있다면 자신을 평화주의자로 분류하고자 했다. 물론 주변 사람들의 그에 대한 평가는 ─물론 사교와 거리가 먼 그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는 일은 거의 없었지만─ ‘샌님’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굳이 그런 세간의 평가를 정정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 요즘같은 시대에 목소리를 내기 위한 대가는 너무나도 크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고, 그에게는 시대를 풍운할 웅변의 재능보다 한 끼 식사를 식당에서 처음 만난 친구에게 대접받기 위한 달변의 재능이 필요했고 또 어울렸다.

    그렇다고 그가 지역 사회에 녹아들려 하는 노력을 게을리 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사악은 매 주 일요일마다 게마인데에서 랍비 아버지와 어울리는 대신 정교회의 성당에 방문해 미사에 참석했고, 수염을 단정히 면도하기도 했으며, 심지어는 바트 미츠바를 거부하기까지 하였다. ─유감스럽게도 이사악이 ‘응애’와 ‘으앙’ 외에는 자기변호 수단을 갖추기 전인 어린 나이에 이뤄진 할례는 막지 못했지만.─ 이 모든 것은 자신과 가문이 지역 사회의 일원이 되는데 기여할 것이라는 이사악의 우둔한 믿음 하에 시행되었으나 그에게 남은 것은 가문으로부터 의절 밖에 없었다. 물론 모두가 이런 처사에 동의한 것은 아니며, 그의 어머니와 동생은 특히나 그의 순수한 의도를 옹호하며 반대했으나 아버지의 마음을 돌려놓을 수는 없었다. 우습게도 그렇게 그가 홀로 10년을 넘게 살면서 삶에 고난이 닥칠 때마다 그는 익명으로 된 돈 봉투를 받을 수 있었고 그것이 아버지로부터 온 것이라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이사악 티냐노프는 ─더 이상 아버지의 이름을 댈 수가 없는 관계상 그는 자신의 미들 네임을 말하지 않았다─ 글을 쓰면서 살았다. 평생 몸 쓰는 일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지만 랍비의 아들로서 타나크와 토라를 받아 적으며 살아온 그였기에 그럭저럭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고, 주로 지역 신문에 광고나 칼럼따위를 써주거나 성당의 미사회에서 성경을 필사하거나 학교에서 아이들이 읽을만한 글을 적어주는 그런 일을 하였다. 큰 성공과는 무관하지만 사소한 보람과 그보다 미비한 보수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런 수수한 그의 삶에 문제가 생긴 것은 1차 세계대전이 발생한 후였다. 수많은 러시아 남성들이 착출되어 전쟁터에 내몰리는 와중에도 이사악은 묵묵히 자신의 일을 이어 나갔고 그것이 지역 사회에서 그를 고립시키고 말았다. 허나 그에게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유대인인 그가 군대에 입대하면 어떤 차별을 받을 지는 상상만 해도 두려웠고, 또한 그 본인의 본성부터가 군인의 계율과 폭력성에는 맞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 이후부터 그에게 주어지던 일들은 거의 다 사라졌고, 곧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형편이 되었다. 은연 중에 주어지는 집안의 지원만이 유일한 밥줄이었고, 이사악은 그 사실을 못 견뎌하면서 일이 없어 넘쳐나는 남는 시간동안 자신을 위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언젠가 문호로 성공하면 일을 받지 못해도 먹고 살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적백내전이 시작되면서 그의 소박한 꿈마저 완전히 좌절되고 말았다. 특히나 유대인들에게는 괴로운 겨울이 시작되면서 가문의 지원을 받을 수 없게 된 그는 차별을 피해 러시아를 떠날 수 밖에 없었다. 떠나기 직전, 그를 유독 귀여워 했던 고모가 찾아와 손에 편지를 쥐어줬다.

    “미국으로 가렴. 글을 쓰고 싶다며? 그곳에는 우리 게마인데 출신의 어른 한 분이 출판사를 하고 있단다. 이 편지를 보여주면 일을 맡겨 주실 거야.”

    늘 이런 식이었다. 이사악은 다른 답안을 내놓지 않았다. 그저 고모가 소개해준 이름도 모를 타인을 믿고 열차에 몸을 실어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해 영국행 배에 탑승한 것이었다.

    웹소설 입문을 위해 두 번째 써본 장편 소설의 도입부.

    글 자체는 내 취향이지만, 집필 기술이 부족하여 번역체나, 국내 출판 문법에 맞지 않는 표현인 다수 보인다.

    전작 좀비 소설과 마찬가지로, 웹 플랫폼에 대한 이해도가 전혀 없는 내용.

    도입부 내용을 응용하여 또 다른 역사 소설을 하나 쓰면 재밌겠다고 생각하지만, 그 역시 상업성은 없어 보여서, 부업과 병행하여 연재하지 않을까. 지금은 본업에 집중해야 하지만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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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생은 안될지도 몰라

    어릴 적의 이야기다. 초등학교에서 왕따를 당해 다른 지역의 중학교로 진학한 나는 별로 친구가 많지 않았다. 이미 완성된 그룹에는 끼어들 틈이 별로 없었고, 괴롭힘당하는 기간이 길어 음울한 쪽으로 변질된 성격을 받아줄 만한 아이도 없었다. 특별한 괴롭힘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좋은 일도 없었다. 나 홀로 반에서 떨어져 있는 존재인 것처럼 시간만이 흘렀고, 1학년을 마치며 반에서 진행한 롤링 페이퍼에는 두서없는 웅얼거리면 밖에 없었다.

    수준이 떨어져서 도저히 못 어울리겠네, 나는 이런 식으로 생각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만큼 착한 아이들도 없었지만, 당시의 나만이 그것을 몰랐다. 2학년에 올라가도 딱히 바뀌는 것은 없을 거로 생각했다. 그렇지만 반이 바뀌고 한 달이 지날 무렵 특별한 변화가 생겼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서로서로 의식한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자주 엮이는 아이가 있었다. 이유는 눈치 없는 내가 봐도 명확했다. 그 아이는 나와 닮아, 마치 세상에서 도려져 있는 듯한 그런 아이였다. 그런 둘이었기 때문에 조를 짜도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자리에서 밀려나고 밀려난 끝에 서로 구석에서 짝을 맺기도 했다. 우리 둘만이 다른 세계에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그 아이만큼은 가깝게 지낼 수 있었다.

    이상한 아이였다. 항상 무언가를 노트에 휘갈기고 있지만 엿보면 엉성한 각지지 않은 도형 같은 것을 그리고 있을 뿐이었고, 혼잣말이 많지만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나는 그 아이를 깔봤다. 이러니 친구가 없는 거겠지, 그런 식으로 크게 다르지 않은 처지이면서도 자신이 그 아이를 동정하고 가르치는 것에 우월감 따위를 느꼈다. 그것은 우정이라 부를 수도 없는 추잡한 것이었다.

    그런 식으로, 여전히 누구와도 어울리지 못한 채, 또 다른 한 해가 지났다. 2학기 말, 겨울쯤에 그 아이가 어느 때나 마찬가지로 중얼거렸다.

    “역시 이번 생은 글렀나….”

    그 무렵, 그 아이의 혼잣말에 끼어들어 핀잔주는 것이 습관이 든 나는 자연스럽게 끼어들었다.

    “바보야, 죽으면 끝이거든. 이번 생밖에 없거든.”

    그렇게 말하자, 그 아이는 지금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무서운 표정으로 나를 노려봤다. 항상 뜨인 듯, 닫힌 듯했던 작은 눈은 크게 벌어져 한 번도 전부 보인 적 없는 둥근 홍채를 만연히 드러냈다.

    “아닌데.”

    화내는 듯이, 놀란 듯이, 종잡을 수 없는 듯한 울분이 섞인 어투로 그 아이가 말했다. 나는 그 아이의 본 적 없는 반응에 속으로 크게 놀랐지만, 그것을 표현하면 지는 것 같다는 아집에 빠져 애써 태연한 척 대답했다.

    “사람은 죽으면 끝이거든? 영혼 같은 건 없어, 다 뇌가 생각하는 거니까, 살아있는 거야, 바보야.”

    “아닌데. 나는 처음 아니거든.”

    이상한 말이었다. 우리는 사실 서로 대화를 하고 있지 않았다. 그저 의미 없는 문장을 우악스럽게 교환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나는 그 말만은 사실처럼 여겨졌다. 그 말에는 분명히 강렬한 믿음이 담겨 있었고, 우리의 빛깔 없는 대화에서 유일하게 빛났다.

    “어? 그러면, 너는 죽었어?”

    무식한 질문이었다.

    “응, 몇 번이나, 제법 예전에.”

    그런데 그 아이의 대답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그 날부터였다.

    그 아이는 자신의 과거에 관해 이야기 하기 시작했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는 거기에 꽤 심취했던 것같다.

    그 아이가 말하기를, 자기는 몇 번이나 환생을 거듭해 오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에 지었던 죄가 원인으로, 무언가 중요한 목적을 가지고 계속해서 환생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이번 몸은 태어나면서 뇌를 다쳐 전생에 대한 기억이 대부분 날아가 버렸고, 그것을 기억해내기 위해 평소에 혼잣말하거나 도형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역시 이번 생에는 안될 지도 몰라….”

    그런 이야기를 나에게 며칠에 걸쳐 장황히 설명하며, 그 아이는 매번 그렇게 말을 끝맺었다. 자신이 잊고 있는 사명이 너무나도 중요한 것이라서 어떻게든 기억해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또 잊고 있는 것이 무서울 정도로 위험한 것이라면서 그 아이는 매번 매번 그런 식으로 말했다.

    “그러면 어떻게 할 거야?”

    “응… 이 뇌로는 안될지도 몰라. 몸을 바꿔야지.”

    그 아이의 이야기에 어느 새 심취한 나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었고 어떻게든 이야기의 뒷 내용을 듣고 싶어서 부탁했다.

    “그러면 다시 태어나면 나를 만나러 와줄래? 나는 쭉 여기서 살게.”

    내 부탁에 그 아이는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마치 살아 있는 생선이 썩어 문드러지는 그런 모습으로.

    나의 부탁이 그 아이에게 어떤 결심을 하게 만들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학기가 끝나고, 겨울 방학이 끝난 뒤에 그 아이는 자리에 없었다.

    그 아이가 죽은 이후로 15년이 지났다.

    처음에는 슬퍼하거나 놀라는 주변 사람들이 우습게 여겨졌다. 그 아이는 시간이 지나면 다시 태어나서 나타날 텐데. 언제쯤 성장해서 나를 만나러 와줄까, 한참 먼일인데도 기대하는 마음으로 날마다 보냈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점점 성숙해지며 스스로 어떤 짓을 한 것인지 이해하고 말았다. 그 겨울날의 대화들, 허황된 망상과 구조 요청들, 나는 그렇게 그 아이를 놓아 버리고 말았다는 것을.

    내가 아직도 그 아이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나는 그 시절이 걸려 있는 중학교를 벗어나지 못한 채 매일 같이 그 길을 지난다. 무언가 잡아당기고 있는 것처럼 어디로도 가지 않은 채 그 아이를 기다리고 있다.

    슬슬 말할 수 있을 나이일 터다, 혼자 돌아다닐 나이일 터다, 올해면 초등학교에 입학했겠거니… 그렇게 살아있지 않은 아이의 유령을 보며 매일 같이 기다리고 있다.

    그렇지만 역시 이제 안될 지도 모르겠다.

    문피아 취향의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