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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록 – 고운점박이푸른부전나비 유충(1)

저에게는 한 가지 버릇이 있습니다. 무엇을 보더라도 우선 그것이 조화로운지 살피는 것입니다. 이 조화라는 것은 실로 한마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도 굳이 예를 들어보자면 가족사진을 보거나 할 때 그렇습니다.…

저에게는 한 가지 버릇이 있습니다. 무엇을 보더라도 우선 그것이 조화로운지 살피는 것입니다. 이 조화라는 것은 실로 한마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도 굳이 예를 들어보자면 가족사진을 보거나 할 때 그렇습니다. 아이의 이목구비가 부모와 닮은 것이 있는지, 부모와 아이가 비슷한 가격대의 옷을 입고 있는지, 우선 그런 것을 살핍니다. 유전자란 참 신기한 것이 못난 부모 밑에서는 못난 아이가 태어나기 마련입니다. 가난한 부모가 억지로 아이에게 좋은 옷을 입혀도 초라함을 타고난 아이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법입니다. 만약 못난 부모 밑에서 예쁜 아이가 태어나면 그들은 가족처럼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저는 과감히 아이의 못난 부분을 찾습니다. 이 아이는 아버지를 닮아 콧구멍이 크다던가, 머리카락이 뻣뻣한 직모라 모자가 어울리지 않는다든가, 그런 사소한 것 말입니다. 하나라도 찾아내고 나면 다음은 쉽습니다. 결점을 하나 찾아내면 썩 괜찮게 보였던 것들도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니까요. 그렇게 하나씩 단점들을 찾아내다 보면 어느샌가 사랑스럽던 사진 속 아이가 부모만큼 못났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가끔 이런 일도 있습니다. 못난 부모 밑에 태어난 아이가 너무 예뻐서 도무지 단점을 찾아내지 못하는 경우 말이죠. 이상한 일이죠. 그들이 정말로 가족이라면 충분히 불행을 공유하고 있어야 합니다. 도무지 타협할 수 없게 되면 어쩔 수 없이 가설을 세워야 합니다. 사실 사진 속 아이가 부모의 학대를 당하고 있다든가, 아니면 어느 날 갑자기 사고를 당해 걸을 수 없는 몸이 되었다든가, 이런 식으로 말이죠. 그러고 나면 완벽해 보였던 사진 속 아이가 너무나도 불쌍해 보여 그 불행한 가족에 어울려 보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 번 조화로운 것을 발견하고 나면 무심코 넋을 놓고 바라보게 됩니다. 고백하자면 저는 조화로움에 중독되어 있습니다. 어쩌다 이런 작업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다른 가족을 엿보다 시비가 걸리는 것도 비일비재합니다. 그러나 맹세컨대 저는 나쁜 의도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이 서로 어울리는 가족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을 뿐이죠. 그렇게 보면 제법 저는 선한 사람인 셈이죠.

생각해보면 저는 어릴 적부터 그랬습니다. 어릴 적에 저는 틈만 나면 공터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다른 아이들처럼 공을 차거나 모래를 만지며 노는 대신 공터 가장자리에 쭈그려 앉아 개미를 바라봤습니다. 자기 발밑에 분주히 움직이는 작은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아이들이 처음 자각했을 때 그들이 보이는 행동이 얼마나 잔인한지, 아이들은 누구에게 배우지도 않았는데 본능적으로 그것을 부수는 데 주력합니다. 발로 밟거나 손으로 잡는 것은 예삿일에 굴에 물을 붓거나 돋보기로 태우는 식으로요. 그리고는 곧 질렸다는 듯이 그 모든 것을 내팽겨칩니다. 만약 곤충들이 비명이라도 지를 줄 알았다면 그 놀이는 더 오래갔을 것이 분명하지요.

그런 점에서 저는 처음부터 달랐습니다. 저는 그저 그것들을 내려다 볼뿐이었습니다. 자각하지는 못했지만 저는 이미 그때부터 조화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줄지어 나란히 이동하는 개미들, 함께 몸집보다 몇 배나 큰 먹이를 굴로 나르는 개미들, 죽은 개미의 주검을 나르는 개미들. 모두가 제 역할을 다 하는 광경에 매료된 저는 더 깊은 곳을 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러니까 제 말은, 구멍 아래의 세계 말이죠. 막연히 그들이 이룩한 조화로운 세계를 상상하며 동경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저 상상하고 동경할 뿐이었습니다. 제 역할은 어디까지나 관찰자였습니다. 만약 제가 개입하게 되면, 더 깊은 곳을 엿보게 되면 이 작은 생태계가 무너져 내린다는 것을 저는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교사라는 직업을 가지게 된 것도 이런 성격 때문일지 모릅니다. 학급은 작은 생태계입니다. 처음에는 삐걱거리는 것 같다가도 결국에는 스스로 조화로운 형태로 돌아옵니다. 그 형태는 놀랍게도 매년 비슷합니다. 교단에서 내려다보면 학급의 정경이 보입니다. 우선 열심히 공부하는 범생이 그룹이 맨 앞줄로 모입니다. 욕심 많은 아기 새들처럼 제 시선을 끌고 싶어 안절부절못하며, 성인으로부터 인정받은 욕심으로 가득합니다. 그 뒤로 넘어가면 조금 더 평범한 아이들이 있습니다. 대부분 수업을 열심히 듣지만 가끔은 친구와 수다를 떤다거나 쪽지를 날린다거나 하는 그런 학생들 말입니다. 이런 학생들은 마치 개미 같습니다. 매번 노는 학생은 바뀌지만, 전체 학생 중에 그 비율은 일정한 것이죠. 처음에는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의문을 품기도 했지만 이제 저는 그것이 자연의 법칙이라는 것을 압니다. 어떻게 통제할 수도 없고, 통제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조금 더 뒤로 넘어가면 마침내 학급의 포식자들이 나타납니다. 불성실하고 반항적이지만 필수적이죠. 엎드려 자거나, 시끄럽게 떠드는 것은 기본에 수업 내내 다른 학생들을 괴롭히기도 하죠. 그렇지만 저는 굳이 그 아이들을 건드리지 않습니다. 매년 항상 똑같습니다. 학생들은 자신들의 위치를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그들만의 카스트를 형성해 정렬합니다. 원시적이지만 조화롭죠. 저는 그렇게 정립되어 가는 질서 속에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니요, 저는 괴롭힘을 옹호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제 말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신 것 같군요. 말하지 않았습니까, 학급이란 폐쇄적이고 완성된 하나의 작은 생태계입니다. 세간의 상식 이전에 그 안에는 별개의 자연법칙이 존재하고, 스스로 가장 안정된 형태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누군가 괴롭힘을 당한다면 그건 본인이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는 얘기죠. 무책임하다고요? 앞서 말했듯이 저는 선한 사람입니다. 무언가 잘못된 것이 있으면 그것을 바로 잡으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착각하시면 안 되는 게, 저는 학급에 포함된 사람이 아닙니다. 학생들은 영악하고 교활해서 자신들보다 확실한 강자를 그들의 생태계로 끌어들이지 않습니다. 그러니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지켜보는 것밖에 없는 셈이죠.

그렇지만 그 해는 유독 그것이 심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을 맞은 3학년들이 경직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곧 그런 문제가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죠. 학생들은 언제나 분노에 가득 차 있었고, 담임인 저조차도 가까이할 수 없을 정도로 폐쇄적이었습니다. 이유는 명백했죠. 그래서 저는 우리 반 학생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곧바로 그것이 유진이일 거라고 확신했습니다.

유진이가 죽은 다음에 저는 그 아이에 대해 다룬 기사들을 스크랩해 수집했습니다. 담임교사이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었죠. 그렇지만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만, 그건 순수한 애도의 뜻으로만 진행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담임인 저로서도 궁금했던 것입니다. 아직 인격적으로 완성되었을 리도 없는 고등학생이 가지고 있는 그 고집스러운 이질감이 저의 흥미를 끌었던 것입니다. 유진이는 정말 나쁜 의미로 특별했습니다. 네, 맞습니다. 저는 고등학생들이 아직 완성된 인간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지금 그건 별로 중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으니 넘어가도록 하죠.

그런데 이상한 일이더군요. 어느 신문 기사를 봐도 유진이에 대해서는 단정하고 공부 잘하던 모범생이 불운한 사고를 당했다는 식으로밖에 묘사하지 않았으니까요. 그저 모든 것이 제대로 방역 절차를 걸치지 않은 수입품에 의한 우연한 사고였다는 것이죠. 그렇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만 바이러스가 퍼지지 않은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고립된 반도 국가이기 때문에? 조기 대응이 우수해서? 아니요, 시스템입니다. 모든 국민이 사회와 동화된 구조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개인의 돌발 행동으로 공동체 전체를 망칠 수 있는 이런 시대이니만큼 한국 국민의 집단주의적인 국민성이 힘을 발휘한 것입니다. 개인주의가 주류인 외국과는 다르게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 유진이가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은 사실 필연이었습니다. 그 아이는 교내에서, 아니 한국 전체에서도 가장 어긋난 존재였을 겁니다. 미신적이라고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바이러스는 명백히 대상을 가리고 있습니다. 사진이나 기사로는 안돼요. 그렇지만 살아 있던 시절의 유진이를 만나본 사람만은 모두 동의할 겁니다. 제가 지금 이상한 소리를 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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