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진에게 불쾌한 편지를 몇 통 받은 것만 뺀다면 중학교 시절 3년을 나는 즐겁게 보냈다. 그 때문에, 나는 유진이를 거의 잊고 지냈고 무심코 K 고등학교를 1지망으로 제출하고 말았다. 집이 가까운 만큼 나는 높은 우선순위를 받아 간단히 입학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실수였던 것이다. 당연히 옆집에 사는 유진이도 K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나는 다시 3년간 정유진의 죄수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걱정과 별개로, 나는 새로운 학교에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도 있었다. 학교가 다시 중학교와 다시 멀어진 탓에, 내가 사귄 새로운 친구들은 대부분 다른 고등학교로 진학했고, K 고등학교에는 아는 사람이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에게 아직도 이런 학생다운 감정이 남아 있다는 것이 새삼 놀라웠다. 그런 걱정은 다행히 기우로 끝났다. 입학식 날, 불안한 마음으로 등교한 나를 초등학교 동창들이 알아본 것이었다. 다행히 나를 좋게 기억해 줬는지, 3년간의 공백은 없었다는 듯한 반응이었지만 나는 그룹마다 본 적 없는 아이들이 끼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중학교 공백은 분명히 존재했던 것이다. 나는 그 아이들의 경고를 충분히 이해했다. 아는 척 해줬다고 눈치 없이 친구인 양 행세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번갈아가며 초등학교 동창 애들을 만났는데, 어느 그룹에도 유진이 없다는 걸 알았다. 입학식 행사 내내, 나는 무의식적으로 유진을 찾았는데, 그 아이와 만난 것은 행사가 다 끝난 뒤, 교문 앞에서였다.
3년만에 만난 유진은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초라했다. 그래도 어릴 적에는 나름 볼살이 귀여웠는데 지금은 양 뺨이 쏙 들어가 그저 메말랐고, 키는 조금 컸지만 팔다리가 너무 얇아 나뭇가지 같았다. 무엇보다 앞을 보고 걷는 법을 모르는 것처럼 푹 숙인 고개가 한심해 보였다. 그 아이가 그런 모습으로 내게 다가오자, 나는 무심코 내가 아닌 내 뒤에 있는 누군가를 본 것이기를 바랐다. 불행하게도 그 아이는 정확히 내 앞에 멈춰서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그러자 작은 입의 안쪽으로 덧니가 보였다.
“예리야, 오랜만이야! 너 하나도 안 변했구나!”
그리고 목소리는 또 어찌나 큰지. 사람과 대화하기 딱 맞는 목소리를 모르는 게 분명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며칠 동안 다른 사람과 대화한 적이 없었던 것이 분명하다. 지나가는 학생들이 우리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기억 안 나? 나야! 옆집 사는 정유진! 우리 어릴 적에 단짝이었잖아!”
내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유진은 무엇이 그리 급한지 다급하게 자신을 소개했다. 이 멍청한 아이는 진심으로 내가 자기를 까먹었을 거라 믿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주변의 눈치를 살피기 바빴다. 여전히 지나치게 목소리가 컸다. 학생들은 제 갈 길을 가며 우리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호기심이 아니란 것을 눈치챘다. 그 아이들은 유진이 아닌 내 쪽을 보며 조롱 섞인 평가를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정유진의 의도가 이해가 됐다. 그 아이는 자신에게 친구가 있다는 것을 주변에 증명하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어떤 대우를 받을지 생각도 못한 채로 저 혼자 절박하게 살아남으려고 한 것이다. 어릴 적이랑 똑같았다.
“미안한데 나한테 아는 척하지 않아 줬으면 좋겠어.”
내가 말했다. 생각보다 차가운 목소리가 나와 놀랐지만, 그 정도가 딱 좋았다. 그러자 유진은 예상도 못했다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나는 그게 연기인지, 아니면 정말로 의외라고 생각한 것인지 몰랐다.
“예리야, 왜 그래? 내가 뭐 잘못했어?”
“너랑 얘기하는 거 부끄러우니까.”
나는 그렇게 대답하고 자리를 떠났다. 유진은 대답하지도, 나를 쫓아오지도 않고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나에게 괜찮다고 말하며 옷에 개미 시체를 문지르던 유진은 이미 없었던 것이다. 그 아이는 이미 실패를 만나면 체념하는 것이 버릇이 든 것이다. 뒤쪽에서 다른 학생들이 킥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말한 것이 정답이었는지, 다음 날부터 나는 아무 문제 없이 새 친구들을 사귀고 그룹에 들어갈 수 있었다. 유진과는 다른 반이 되었다. 그렇게 3학년까지 정유진과 다시 만나는 일은 없었다.
그렇지만 여학생들과 어울리지 못했기 때문일까, 그게 정말 좋은 생각이라고 여겼는지 몰라도, 2학년쯤부터 유진이 남학생들과 어울린다는 안 좋은 소문이 간간이 들려왔다. 처음에는 헛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 아이에게는 여성적인 매력이 전혀 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없었으니까. 나는 순진하게도 여성을 파는 것에도 조건 같은 것이 필요하게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자신감 없고 못 생긴 아이를 남학생들이라고 좋아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내 예상과 달리 소문은 날이 갈수록 살이 붙었다. 그 아이가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소문까지 이르러서는 도무지 이해가 안 갔다. 남자는 내 생각보다 멍청한 건가. 나는 별 관심 없었지만, 유진이가 남자와 사귄다는 이야기는 친구들 사이에 큰 화제가 되었다. 왕따와 사귀는 멍청한 남자가 누군지 다들 궁금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 시점부터 더 들려오는 소문이 없자, 친구들은 금방 다른 화제로 넘어가게 됐다. 나는 고작 옆 반의 일인데 소문이 끊긴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 진상을 알게 된 것은 한참 나중이었다.
아, 정유진은 남자친구를 사귄 적이 있다. 유진이가 죽은 뒤에 나는 당연히 기자들이 그 남자애를 찾아갈 거라 생각했는데, 별 관계도 없는 나만이 이상할 정도로 표적이 되었다. 뭔가 이상해서 찾아보니, 그 아이가 남자친구가 있었다는 내용은 어디에도 없었다. 아마도 그 남자애가 주변에 비밀을 지켜달라고 부탁한 것일 터다. 그 둘의 교제는 애초에 그리 건전한 연애가 아니었으니까, 교사들이나 관계없는 학생들은 몰랐을 것이다. 부디 박서한, 그 좆같은 강간범 새끼를 찾아가보길 바란다.
어쨋건, 나는 1, 2학년 때도 최대한 정유진을 피해 다녔다. 등교도 무리해서 30분씩 일찍 하고, 하교도 일부러 더 늦게 하는 식이었다. 다행히 우리 학교는 더 공부하겠다고 말하면 12시까지 문을 열어줬기 때문에, 야자가 끝나는 10시부터 30분이나 1시간씩 더 늦게 가는 식이었다. 나는 반장이었기 때문에 공부를 더 하고 가겠다는 핑계도 간단히 먹혔다. 어른들은 반장이라고 하면 쉽게 모범생 같은 것은 상상하니까, 나는 그 기대에 부응한 셈이다.
하여튼, 나의 그런 부단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운이 다했는지 3학년에 와서 나는 정유진과 같은 반이 되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첫날부터 그 아이가 다가와 내게 말을 걸 줄 알았다. 멍청한 아이니까 굳이 눈치 없이 옛날의 우정 따위를 운운하면서 굳이 상처를 받은 뒤에야 떨어져 나갈 거라 생각한 거다. 그렇지만 의외로 유진은 첫날부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교실 한가운데에 혼자 앉아 있었다. 그렇게 말이 없는 아이가 아닐 텐데, 그렇게 생각했지만 나는 머지않아 그 아이가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미 내가 알고 있는 어린 시절의 정유진과 다른 사람이었던 것을 순진하게도 나는 고등학교 3학년에 이르러서야 깨달은 것이다. 덧니, 그 빌어먹을 덧니가 여전히 입에 남아 있는지, 아니면 중학교에서 봤던 그 멍청한 왕따처럼 교정하고 있는지 알 수도 없었다. 그 아이는 입을 열질 않았다.
3학년 등교 첫 날, 나는 교실에서 이상한 것을 깨달았다. 남학생과 여학생 그룹이 나뉘는 것은 흔하게 있는 일이었지만, 남학생들이 이상하게 조용했다. 그러려니 생각했지만, 담임 선생님이 들어온 뒤로 더욱 이상했다. 담임은 1학년 수학 선생이었는데, 중년에 결혼도 하지 않은 선생이 훈계를 빙자한 성희롱 같은 소리를 한다고 여학생들 사이에서 유독 평판이 안 좋았다. 그 선생도 말이 많은 사람이었는데 이상하게 무게를 잡았다. 나만 그것을 느낀 것은 아니었는지, 내 옆에 앉은 학생이 선생이 폼을 잡는다고 킥킥거렸다. 그렇지만 교실에서 그보다 깊은 것을 눈치챈 것은 나뿐이었다. 오로지 시체 냄새나는 개미굴에서 아양 떨며 살아온 나였기에 알 수 있었던 것이다.
모든 남자들의 시선이 유진의 몸을 향했다. 남학생들과 심지어 교사마저 음탕하게 그 궁상맞은 몸을 훑어대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무심코 토할 것 같았다. 그 장소에 있는 사람은 모두 죄인이었다. 남자들은 강간범이었고, 여자들은 공모자였다. 나는 오랜 세월을 관찰자라고 생각했는데, 실상은 그보다 큰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유진이가 죽었을 때, 날아간 다리가 20m 밖에서 발견됐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었다. 나는 문득, 순진한 얼굴로 개미의 다리를 옷에 문지르던 유진이의 얼굴이 생각났다. 그 아이가 죽었을 때, 몇 명이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까. 좀비라면 죽어도 괜찮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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