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가 아마 밤 11시, 12시쯤이었을 거예요. 저는 런닝을 하고 있었어요. 형에게 수험은 체력 싸움이라는 얘기를 계속 들어와서 고등학교에 입학한 이후 야자가 끝나면 언제나 런닝을 했거든요.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집 근처 산책로를 달리고 있었는데 형한테 전화가 오더라고요. 빨리 집으로 돌아오라고, 난리가 났다고요. 그러면서 뉴스를 확인하라길래, 저는 핸드폰으로 뉴스를 봤어요. 정말로 난리가 났더라고요. 한국 최초의 좀비 바이러스 감염자 발생이라고, 그때는 우리 시 이름만 나와 있어서 저는 진짜 큰일 났다 싶어서 바로 집으로 돌아갔죠.
집에 돌아갔더니, 의외로 부모님은 담담하더라고요. 저는 당장 피난 준비라도 할 줄 알았는데. 저하고 형이 불안해하는 와중에, 상황은 척척 정리되더라고요. 1시간 뒤에 죽은 사람이 우리 학교 학생이라는 게 밝혀졌어요. 그리고 또 1시간 지나니까 사진과 이름이 나오더라고요. 정유진이 죽었다는 건 그 때 처음 알았어요. 의외로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더라고요. 학교라도 쉴 줄 알았는데, 다음 날도 정상 등교했고요.
딱 하나 바뀐 것이 있었다면, 원래 정유진이 앉았던 책상과 의자를 치웠다고 하더라고요. 정유진이랑은 다른 반이었어서 쉬는 시간에 가봤는데, 그, 사람이 죽으면 영화 같은 거 보면 국화꽃이 들어 있는 꽃병이라던가 올려놓잖아요? 그것도 없이 그냥 비어 있더라고요.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그 반에는 쉬는 시간마다 구경하러 온 애들이 몰려들었는데, 심지어 저학년 학생들도 지나가는 척 힐끔힐끔 엿보더라고요. 그래서 그날은 선생님들이 번갈아 가면서 반 앞에 서서 학생들을 쫓아냈어요.
아까 비어 있다고 말했잖아요, 그건 말 그대로예요. 밖에는 구경하러 온 학생들이 계속 왔다갔다하며 소란스러운데, 웃기는 게 같은 반 학생들은 정말 아무 반응도 없더라고요. 처음에는 반을 잘못 찾아온 줄 알았어요. 반에 들어가서 애들한테 말을 걸어도 그냥 모른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면, 걔네도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거예요. 누군가 죽는다면 정유진이 죽을 거라고. 그냥 형태가 조금 예상 밖이었을 뿐이었던 거예요.
정유진이랑은 2학년 때 같은 반이었어요. 어, 좀 이상한 애였어요. 신문이나 뉴스 보니까, 공부를 잘하고 단정한 모범생이라고 나왔는데, 저는 걔가 공부를 잘하는 줄도 몰랐어요. 아무도 그런 말은 안 했고, 애도 좀 띨빵하게 생기고 어리버리 해서 당연히 공부는 못할 줄 알았어요. 어디서 들으셨는지 몰라도, 걔랑 사귄 적이 있느냐는 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개는 남친은 커녕 친구도 없었어요. 쉬는 시간에는 안 자는 거 뻔히 아는데 엎드려서 자는 척하더라고요.
직접 괴롭히는 걸 본 적은 없는데, 걔가 여자들한테 찍힌 건 사실이에요. 보통은 아예 관심 자체를 안 줬는데, 가끔 지나가면서 걔 들으라고 욕하고 지나가고 하더라고요. 별명이 개미인가, 그랬을 거예요. 1학년 때, 어떤 선생이 그렇게 불러서 굳혀졌다고 하는데 진짜 개또라이죠. 하여튼 여자애들이 다 정유진을 싫어하니까 남자애들도 싫어했어요. 계기는 딱히 없었는데, 예쁜 것도 아니고, 애도 좀 이상하고 하니까 다들 그냥 자연스럽게 싫어했죠.
그러다가 제가 걔랑 조금 친해진 건 사실이에요. 같은 반 학생인데 불쌍하기도 하고 그래서요. 제가 이런 말은 좀 자뻑 같아서 하기 싫었는데, 솔직히 이건 칭찬받아야 하는 거예요. 알잖아요, 걔는 왕딴데, 걔랑 친해지면 괜히 저만 손해 보는 거. 그런데 저는 도와준 거라니까요?
잤냐고요? 서로 동의했어요. 요즘 애들은 뭐 하는지 다 알아요. 피임도 제대로 했고요. 물론 학생 신분인 만큼 서로 조금 더 신중했어야 했다는 건 알아요, 그건 제 잘못이 맞고요. 그렇지만 문제 될 건 아무것도 없잖아요. 지금 왕따랑 잤다고 뭐라 하시는 거면 곤란한 게, 그런 못생긴 애랑 자줬는데 오히려 걔가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저하고 조금 말하고 놀고 하다 보니까, 다른 남자애들이랑도 자연스럽게 친해지더라고요. 쉬는 시간에도 자는 척 안하고요. 이제 아마 아셨을 건데, 이제 와서 제가 걔랑 잤고 어쩄고 하는 게 밝혀져도 저는 문제 될 게 하나도 없어요. 오히려 걔나 걔 부모님한테만 문제 될 걸요. 지금은 무슨 피해자인 것처럼 나오는데 어이가 없더라고요. 왜냐고요? 진짜 이거는 제가 정유진 이미지 생각해서 말 안하고 다닌 건데, 걔 남자 엄청 밝혔어요. 다른 남자들이랑도 잤을 걸요?
제가 보기에 그 때, 반에 있던 남자들은 대부분 정유진이랑 잤을 거예요. 알잖아요, 사춘기 남자들은 자라고 하면 지 엄마뻘이랑도 잘 애들인 거. 강요 같은 건 안 했어요. 그러면 강간이잖아요. 오히려 걔가 적극적으로 꼬시고 다녔다니까요. 우리가 걔를 뭐라고 불렀는지 알아요? 여왕개미예요, 여왕개미.
저기요, 저 진짜 대학 들어오고 집중해야 하는 시기예요. 공부도 그렇고, 여자도 만나고 해야는데 이제 와서 몇 년 전에 죽은 애랑 잤고 어쩌고 하는 걸 추궁하셔도 되게 곤란해요. 청춘이란 게 다 그런 법이잖아요. 남들은 술 한잔으로 흘린다는데 왜 저만 운이 없어서 그러는지 모르겠네요. 이럴 줄 알았으면 안 도와줄 걸 하는 생각도 다 들고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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