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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의 운율과 표현 <1>

    최근에 소설 집필 작업에 있어, 운율과 표현, 민속학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다.
    그림 형제가 그랬듯이, 또 대부분 뛰어난 문학가들이 그러하듯, 나도 그런 흉내를 내고 싶게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내 소설에 여러 실험적인 표현들을 사용하게 되었는데, 이에 관해 기억나는 대로 적어보려 한다.
    혹시나 나중에 어떤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1. 만년필을 눌러 쓰다.

    쓸까 말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사용한 표현이라 인상에 남아 있다.
    우습게도 그 문장을 어디 썼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아 찾지 못했다.

    기억으로 전문을 구성해보자면 아마,
    <만년필을 둥글게 눌러 썼다> 뭐, 이런 식의 표현이었던 기억이 있다.

    사실 이는 구조상 말이 되지 않는다.

    펜촉은 다뤄본 적이 있다면 알겠으나, 목탄이나 흑연과 달리 끝이 매우 뾰족하다.
    그런 상태에서 힘을 준다면 종이를 찢어먹기 십상이라, 오히려 섬세한 힘 조절은 교양이다.

    또, 압력을 받으면 끝이 갈라져서 잉크가 묻어나오는 구조상, 힘을 주게 되면 그만큼 넓게 벌어지게 되는데, 많은 잉크가 나오는 탓에 종이에 번지거나 튀기도 하는 것이다. 가독성이 떨어지는 건 물론이고 말이다.
    (삼투압 어찌구 저찌구.)

    그러니 이 표현은 비상식의 영역에 있다.
    굳이 이런 표현을 사용한 것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당시 ‘둥글게 눌러 쓰다’라는 표현을 쓰고, 너무나도 심취하여 꼭 쓰고 싶었기 때문이고,
    둘째는 현대인은 만년필의 구조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 대부분일 테니 사소한 오류는 눈에 띄지 않을 거란 생각이었고,
    셋째는 없지만 운율을 맞추기 위해 넣었다.

    소설은 정보의 정확성보다 문장의 재미가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2. 1번을 쓰다가 여기 뭘 쓰려 했는지 까먹음. 적당한 예시가 있었는데!

    3. 우주인, 외계인

    최근 작성하고 있는 에피소드에서, 나는 굳이 Alien을 우주인이라고 표기했다.
    그리고 이건 (번역에 대한 교육은 받은 적 없지만) 나의 번역 철학에 위배된 번역이다.

    물론 의미상 우주인도 Alien의 역할을 할 수는 있으나, 개인적으론 Spaceman 혹은 Astronaut에 가까운 개념이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外界는 완벽하게 Alien의 의미를 관통하고 있으니, 굳이 사용하겠다면 외계인 쪽이 옳았다.

    그렇지만 쓰고 났을 때, 외계인은 아무래도 볼품 없이 보였다.
    그리고 또, 외계인과 우주선은 운율상 어울리지도 않았다.

    그래서 몇 번 고민하다가 결국 우주인이라는 표현을 채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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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면安眠

    처음 내가 너를 발견했을 때, 고백건데 나는 너에게 무언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단다. 이런 어둑한 숲길이니 길을 잃는 것은 당연해 보였으니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너의 어리석음에 한탄했지. 내가 혹시 너에게 과중한 부담을 맡긴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마저 들더구나. 그 때문에 네가 햇빛도 들지 않는 눅눅한 바닥에서 이끼의 먹이가 되고 있노라고 생각하면 나의 이런 반응도 과한 것은 아니겠지. 내가 너를 다시 찾아낸 것도 하늘이 도왔다고밖에 말하지 못할 거야. 나란들 네가 이런 숲 한가운데에 뒹굴고 있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었겠니.

    다시 너를 만나게 되었을 때, 나는 그것이 너라는 것도 알아보지 못했단다. 당연한 일이었지. 내가 그것이 너라고 확신할 수 있었던 것도 고작해야 몇 가지 기억들 덕분이었어. 어머니에게 받았다고 말하며 언제나 차고 다니던 금이 그어진 낡은 손목 시계와, 밑창이 떨어지고도 못으로 직접 수선해 신고 다니던 소가죽 구두 따위의 사소한 것들 말이야. 그렇게 나는 네 유해 앞에서 한참 시간이 지난 뒤에야 너를 다시 만나게 된 것이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너는 참으로 아늑해 보이더구나. 이미 벌레들의 집이 되고, 이끼를 이불처럼 덮고 누운 네 유해의 모습에서 나는 그제서야 네가 네 자리를 찾았다고 생각하고 말았단다.

    나는 이제 이해한단다. 이 모든 것은 너의 잘못이 아니었던 거야. 너는 죽은 것도, 그렇다고 살아 있는 것도 아닌 채로 그 오랜 세월을 홀로 견뎌온 거야. 해가 뜨고 지는 저 순환 속에서도 감동을 느끼던 네 여린 감수성이, 하늘이 보이지 않는 이 어두운 숲 속으로 이끈 거야. 용암처럼 네 피부 안에서만 흐르던 피가 밖으로 솟아오른 그 작은 상처가 얼마나 큰 고통이었는지, 나는 몰랐던 거야.

    나는 너와 닮았기에 눈물로 슬퍼할 줄을 모른단다. 절제 없이 흐트러진 별들 속에서도, 해와 달의 순환 속에서도 너를 찾지 않는단다. 그저 하수도 밑에서 올라오는 어둡고 습한 바람 속에서, 누군가의 발에 밟힌 으깨진 개미의 파편 속에서, 나는 그곳에서 너를 만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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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완성 단편 (민)

    민, 처음 너와 만난 순간을 기억해. 그것은 내 머릿 속에서 몇 번이나 회오리 치며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기억이기에, 민, 나는 너를 보다 특별히 여겼단다.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을까. 몸에 맞지 않는 헐렁한 양복을 차려입고 빵모자를 푸욱 눌러 쓴 단정함일까, 아니면 네가 들어오는 순간 화악 하고 퍼져나간 소독약 냄새일까. 그것이 무엇이건 나는 너와 처음 만난 순간부터, 너의 살짝 내려간 한 쪽 입꼬리와 반쯤 닫힌 음울한 얼굴을 잊을 수 없게 되었단다. 너의 불행의 주박은 다른 사람마저 끌어들이는 것이란다, 민. 그렇다고 내가 너를 탓할 생각은 없단다. 민, 너는 네가 짐을 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믿지 못하고 더 많은 짐을 지려는 그런 아이였단다.

    “부모님이 죽었어요.”

    당돌하게 너는 그런 얘기를 했단다, 민. 네 부모님 양 쪽 모두를 알고 있는 나에게는 꽤나 영문 모를 말이었던 것이지. 나는 그것이 네가 만들어낸 거짓말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단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어서 만들어낸 아우성 같은 것이라고, 그렇게 나는 너에 대해 알기 시작했단다. 나는 너를 달래야 할지 고민했지만, 그저 내 본분을 따르기로 선택했단다. 너를 앉히고 종이컵에 따라진 커피를 내주며 너에게 필요한 절차를 알려주거나 하는 것 따위의 일 말이다. 그래서는 안됐었는데. 그런 말은 해서 안된다고 너를 다그치거나, 천천히 너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째서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그렇게 물었어야 했었는데.

    민, 그 날 밤은 길었단다. 너에게도 나에게도 그랬을 것이지. 너는 종이컵을 소중한 보물이라도 되듯이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잡은 채, 하염없는 침묵으로 시간을 흘려 보냈고, 나 역시 의미없는 웅성거림으로 너를 대했기에 우리 둘의 시간은 유독 길었을 거야. 그러나 민, 변명을 해보자면 나는 네가 무언가 말하기를 기다린 게야. 울거나 변명을 늘어놓거나, 끝도 없는 거짓말을 이어가기를, 나는 그렇게 기다리고 있었지만 너는 그저 “감사합니다” 한 마디를 하고는 굳게 입을 다물었지.

    그 짧은 밤이 지나고 해가 뜨자 너는 감사와 작별을 고하고 그렇게 사라졌지. 그곳이 제자리가 아니란 것을 아는 저녁 비마냥 그렇게. 그렇지만 민, 네 빈자리는 아주 느리게 차더구나. 젖은 땅과 뿌연 물안개가 희미하게 네가 그 곳에 있었음을 그렇게 호소하더구나. 새벽 내내 함께 있었기 때문일까, 나는 아직도 네가 그 의자 끝에 아슬아슬하게 걸터앉아 침통한 눈으로 내 쪽을 막연히 응시하고 있는 것처럼 그 시선을 느꼈단다. 정말로 평범한 일은 아니었던 셈이지.

    민, 너는 모르겠지만, 그날 나는 편지를 썼단다. 반쯤 잠에 취한 채로 허깨비마냥 의미 없는 길고 긴 문자를 나열해, 결국은 누구에게 어떻게 보내야 할지도 몰라 그대로 접어 다시는 쳐다보지 않을 구석진 책장 위에 올려놓았지. 민, 그날 나는 악몽을 꿨단다. 그것은 분명 너의 탓이었어.

    너는 그런 아이였지. 민, 네가 떠난 뒤에 나는 어디서나 너의 존재를 느꼈단다. 그저 희미하여 잘 보지 않으면 그것이 너라는 것도 모를 정도였지만 분명 그것은 너였어. 나의 일상 속을 떠도는 네 자취는 오후의 라디오 속에서도, 싱크대 위의 찻잔 속에서도 간혹 나타나 나를 놀랍도록 우울하게 만들곤 했단다. 민, 너는 그렇게 먼지 같이 하얀 아이였어. 그럼에도 너를 잊고자 하는 노력은 마치 죄악처럼 느껴져 나는 그것을 감내하는 시간을 가져야 했단다.

    우리가 다시 만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어. 기억하니? 우리가 처음 만난 그 날처럼, 굳게 닫힌 창문 틈 사이로 가을바람의 한기가 새어 나와 피부 사이사이로 파고들던 그날을. 한심한 일이지만, 나는 네가 다시 나를 찾아 왔을 때 놀라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단다. 분명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현실이 된 확신의 무게 앞에서 나는 어쩔 줄 몰라 하였던 거야. 그것은 너도 같아 보였단다, 민. 우리는 말 하지 않음으로써 서로의 공통점을 찾아낼 수 있었던 게야.

    그냥 최대한 예쁜 문장으로만 별 생각 없이 꾸며보고 싶어서 썼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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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재 중단 후기

    <좀비가 한 명밖에 나오지 않는 이야기>는 2019년 브릿G 좀비 문학 장편 소설 부문에 제출하기 위해서, 대략 2주 정도 동안 준비했던 장편 소설이다. 당시에는 거의 일일연재의 추세로 연재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중학교 이후로 처음 써본 장편 소설이라서 그럴까, 아무래도 사이트 내에서 반응이 좋지 않아서 수상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고 연재를 멈췄었다. (최신화는커녕 몇 편간 조회수 0회!)

    나 개인의 평가는 어떤가 하면은, 사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정말 재밌는 글이다. 이어질 내용은 더욱 흥미진진하겠지. 하지만 내가 대중적인 취향에서 괴리되었다는 것만 통감할 뿐이었다….

    언젠가 마저 쓸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솔직히 이만큼 재밌는 글이었으니까, 성실하게 완결을 냈다면 동상이나 은상 하나쯤은 손에 쥐어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아무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를 쓸 수 있는 건 역시 나밖에 없구나 하는 감상도 좀 들고, 이런 글을 다시 이어서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좀 들고.

    생각보다 별로 할 말이 없네요.

    유감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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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하나 – 외래종(1)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았는데 소원이 이뤄지면, 의외로 무섭다는 생각이 먼저 들더라고요. 제 경우엔 유진이가 죽었을 때 그랬어요. 틀림없이 기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더라고요. 심지어 ‘내가 죽였나?’ 같은 이상한 망상까지 떠올랐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제가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야기를 듣고 나면, 아마 평범하게 납득하실 거예요. 제가 그 아이가 죽길 바란 게 그리 이상한 게 아니란 걸요. 우선 그날의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유진이가 죽었다는 걸 알게 된 것은 사건 다음 날이었습니다. 새벽 내내 사건에 대한 보도가 이어졌다고 하는데, 부모님은 저녁 뉴스를 보지 않으시고, 저도 뉴스라고는 포털 사이트 메인을 훑는 정도가 다였기 때문에 우리 가족 중 누구도 사건에 대해서 몰랐습니다. 그만큼 사건은 조용하고 빠르게 마무리됐어요. 같은 반이 아니었다면 끝내 눈치채지 못했을지도 모를 정도로요. 지금은 수시로 인터넷 뉴스를 확인하는데, 그건 그날 이후로 생긴 버릇이에요. 더 이상 아무것도 올라오지 않을 걸 알면서도, 불안해서 견딜 수 없는 거죠. 일종의 흉터 같은 거라 생각해요. 하여튼, 다음 날도 저는 평범하게 등교했고, 사건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아침 조례 시간이었습니다.

    그날은 아침부터 뭔가 달랐어요. 시끄럽게 떠드는 것도 아니고, 조용히 공부하는 것도 아니고, 사방에서 속닥거리는 소리만 들렸어요. 다들 죄라도 지은 것처럼 불안해했어요. 나중에 알았지만, 그 시점에 그 아이 책상은 이미 치워졌는데, 저는 그것도 눈치채지 못한 거예요. 저는 그냥 그때, 문제집을 풀었을 거예요. 굳이 신경 쓸 정도의 일은 아무것도 없었던 거예요.

    우리 반의 조례는 다른 반보다 늦게 시작했어요. 담임선생님이 반에 들어오는 걸 굉장히 싫어했거든요. 그래서 아침 자습이 끝나고 5분 정도 지나야 시작했고, 그마저도 하지 않아 반에 들어오지 않는 날이 더 많았어요. 그렇지만 그날은 조금 달랐어요. 조례 시간까지 앞으로 10분은 남았는데, 선생님이 들어왔습니다. 선생님은 기분 나쁠 정도로 들떠 있었습니다. 언제나처럼 힘없는 발걸음 대신에 경쾌한 스탭으로 성큼성큼 교단으로 올라갔어요. 그리고 안 어울릴 정도로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어제저녁에, 다들 뉴스는 봤겠지만.”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요. 저는 막 풀리려고 하는 수학 문제와 선생님이 언제나 하는 시답잖은 이야기 사이에서 갈등했습니다. 보통은 전자를 선택하는데, 그날은 조금 달랐습니다. 낮은 목소리로 속닥거리던 학생들이 일제히 정면을 바라봤습니다. 지금까지 반이 이렇게 조용한 적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의 정적이 흘렀습니다. 그런 흐름이었기에 저는 영문도 모른 채, 연필을 내려놓고 마지못해 선생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우리 반에서 좀비 바이러스 감염자가 발생했다. 누군지는 굳이 말하지 않겠지만….”

    선생님의 시선이 빈 공간으로 향했습니다. 네, 빈 공간이요. 학생들도 따라서 선생님의 시선 끝을 쫓았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가 너무 충격적이라, 비어 있는 곳이 누구의 자리가 있던 곳인지조차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아시다시피 정유진의 자리가 있던 곳이었죠.

    “우리나라는 좀비 바이러스 안전지대라고 착각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 바이러스란 살아 있는 생물처럼 교묘해서, 조그만 빈틈에도 기민하게 반응해 들어오거든. 저 영국을 봐라, 선진국이니까 안전하다고 생각했지만 얼마나 사회가 망가졌는지. 그런데 한국은 아직도 개발도상국이나 다름없단 말이야. 그런데 한국은 바이러스가 침투하지 못했잖아. 뭐가 다른가 하면 국민성의 차이 때문이겠지. 영국인들은 어릴 적부터 자기 멋대로 살도록 배운다는데, 부모님도 아이를 그냥 방치하는 거야. 그래서 자립심을 키운다는 거지. 그러니까 제멋대로 행동하는 아이들을 통해 바이러스가 퍼지고 사회가 망가지는 거지.”

    선생님은 충격을 다스릴 시간도 주지 않고 신나서 말을 이어갔습니다.

    “바이러스가 침투할 수 없는 건강한 사회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면, 역시 조화를 이뤄야 하는 법인데, 이 조화란 게 단순히 조화롭게 살고 그런 얘기가 아니라, 사람이 제자리에서 제 역할을 해줘야 그제서야 사회가 조화롭게 돌아간다고 하는 거야. 어릴 적에 개미 집을 부숴본 경험은 다들 있지? 그렇지만 나는 안 그랬어. 대신에 그냥 개미가 어떻게 먹이를 나르고, 어떻게 행동하는지 바라본 거야. 왜냐? 내가 끼어들면 그 사회의 조화가 깨진다는 걸 알았거든. 정유진이 내 반만큼만 했어도 바이러스에 걸리진 않았을 건데.”

    마침내 선생님의 입에서 이름이 거론됐지만 누구도 놀라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때 이미 모두가 알고 있었다는 것을 눈치챘습니다. 여기서 아무것도 모르는 건 저뿐이었던 거죠. 저는 그 이름에 혼자 깜짝 놀랐습니다. 마음속에 그림자가 드리웠습니다. 죽는 방법이 너무 극적이었기 때문일까요? 평범하게 자살이나 교통사고로 죽었다면 저는 기뻐했을지도 몰라도. 하지만 좀비 바이러스라뇨.

    아직까진 제가 왜 유진이가 죽길 바랐는지 이해하기 어려울지 모르겠네요. 그걸 설명하려면 조금 더 복잡해지니, 우선 조금 더 옛날이야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저와 유진이 다니던 K 고등학교에 대해 설명하는 게 먼저겠네요. K 고등학교는 30년 이상 된 남자 고등학교였습니다. 남녀 공학으로 바뀐 것은 제가 입학하기 고작 몇 년 전이었고요. 그래서인지 지역 내에서는 남자는 K 고, 여자는 K 여고라는 편견이 만연해 있어서, K 고는 공학 학교임에도 여학생이 매우 적었습니다. 저는 여학생이 적은 만큼 쉽게 뭉칠 거라 생각했지만 사실은 반대였습니다. 밉보이면 끝이었습니다.

    저는 어른들은 학생이 얼마나 잔인한지 모른다고 생각해요. 그런 만큼 상황을 쉽게 낙관하고, 학생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거죠. 한때 그들도 학생이었을 텐데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시간이 흐르는 만큼, 기억과 타협하기 때문일까요. 아무튼, 학생들은 빠르게 계급을 나눴어요. 중심은 언제나 K 중학교 출신 여학생들이었어요. 가장 수가 많았고, 대부분 서로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 아이들은 입학식 날부터 소란스럽게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껴안았습니다. 저에겐 그 행동은 정말로 반가워서 그렇다기보다, 다른 학생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처럼 보였어요. 실제로 타 학교 출신들이 안절부절하기 시작했으니까요.

    눈치 빠른 타 학교 출신들은 첫날부터 K 중학교 그룹에 끼기 위해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습니다. 빠르게도 계급이 나뉜 거죠. 그 아이들은 잘 어울린 것 같다가도, 모르는 이름이 화제에 떠오를 때마다 어색하게 웃었습니다. 그 이야기에 끼지 못하는 한, 영원히 간극은 좁혀지지 않을 거라는 경고 같은 게 아니었을까요?

    반면, 그런 아이들에 비해 둔한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타 학교 출신이면서도 그룹에 끼기 위해 노력하거나, 아첨하지도 않고, 그저 상황을 낙관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아이들은 머지않아 타겟으로 찍히더라고요. 우습게도 괴롭힘을 주도하는 건, 이미 그룹에 들어간 타 학교 출신들이었습니다. 누군가를 괴롭히면 자연스럽게 친해질 수 있었기 때문이겠죠.

    저는 어느 쪽인가 하면 외래종이었습니다. 타 학교 출신이면서, 눈치가 느리지도 않고, 그렇지만 그룹에 끼기 위해 아첨하지도 않았으니까요. 우점종에게는 생태계를 망칠 수도 있는 경계 대상처럼 보였겠죠. 우점종이요? 물론 K 중학교 출신 여학생들이죠. 저는 K 고가 순전히 공부에 집중하기 좋은 환경이라는 얘기를 듣고 입학했기 때문에 그런 배타적인 분위기에 환멸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흐르자, 저는 자연스럽게 고립됐습니다. 그렇지만 괴롭힘을 당하진 않았어요. 공부를 잘했기 때문이죠. 그냥 잘하는 수준이 아니라, 반에서 가장 잘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남았습니다. 제 안에 품은 독을 여과없이 드러내면서 말이죠. 아이들은 모르는 문제가 있으면 저에게 가져왔고 저는 한 번도 거절하지 않고 공식을 풀어줬습니다. 그러니 누구도 저를 건드릴 수 없는 거죠.

    몇 주가 지나니 반의 생태계가 윤곽을 드러냈습니다. 그룹에 들어간 아이들과, 그렇지 못한 아이, 포식자와 피식자. 같은 반에 있더라도 남학생들은 몰라요. 걔네는 때리는 것만이 괴롭힘의 전부라고 믿으니까요. 오로지 저희만 알아볼 수 있는 은밀한 괴롭힘이 이어졌습니다. 그런 와중에 저는 반에 저 말고 또 다른 외래종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으면서 어떤 괴롭힘도 받지 않는 아이. 신예리라는 아이였어요. 저는 그 아이가 어떤 독을 품고 있을지 궁금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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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서한 – 은인

    그때가 아마 밤 11시, 12시쯤이었을 거예요. 저는 런닝을 하고 있었어요. 형에게 수험은 체력 싸움이라는 얘기를 계속 들어와서 고등학교에 입학한 이후 야자가 끝나면 언제나 런닝을 했거든요.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집 근처 산책로를 달리고 있었는데 형한테 전화가 오더라고요. 빨리 집으로 돌아오라고, 난리가 났다고요. 그러면서 뉴스를 확인하라길래, 저는 핸드폰으로 뉴스를 봤어요. 정말로 난리가 났더라고요. 한국 최초의 좀비 바이러스 감염자 발생이라고, 그때는 우리 시 이름만 나와 있어서 저는 진짜 큰일 났다 싶어서 바로 집으로 돌아갔죠.

    집에 돌아갔더니, 의외로 부모님은 담담하더라고요. 저는 당장 피난 준비라도 할 줄 알았는데. 저하고 형이 불안해하는 와중에, 상황은 척척 정리되더라고요. 1시간 뒤에 죽은 사람이 우리 학교 학생이라는 게 밝혀졌어요. 그리고 또 1시간 지나니까 사진과 이름이 나오더라고요. 정유진이 죽었다는 건 그 때 처음 알았어요. 의외로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더라고요. 학교라도 쉴 줄 알았는데, 다음 날도 정상 등교했고요.

    딱 하나 바뀐 것이 있었다면, 원래 정유진이 앉았던 책상과 의자를 치웠다고 하더라고요. 정유진이랑은 다른 반이었어서 쉬는 시간에 가봤는데, 그, 사람이 죽으면 영화 같은 거 보면 국화꽃이 들어 있는 꽃병이라던가 올려놓잖아요? 그것도 없이 그냥 비어 있더라고요.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그 반에는 쉬는 시간마다 구경하러 온 애들이 몰려들었는데, 심지어 저학년 학생들도 지나가는 척 힐끔힐끔 엿보더라고요. 그래서 그날은 선생님들이 번갈아 가면서 반 앞에 서서 학생들을 쫓아냈어요.

    아까 비어 있다고 말했잖아요, 그건 말 그대로예요. 밖에는 구경하러 온 학생들이 계속 왔다갔다하며 소란스러운데, 웃기는 게 같은 반 학생들은 정말 아무 반응도 없더라고요. 처음에는 반을 잘못 찾아온 줄 알았어요. 반에 들어가서 애들한테 말을 걸어도 그냥 모른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면, 걔네도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거예요. 누군가 죽는다면 정유진이 죽을 거라고. 그냥 형태가 조금 예상 밖이었을 뿐이었던 거예요.

    정유진이랑은 2학년 때 같은 반이었어요. 어, 좀 이상한 애였어요. 신문이나 뉴스 보니까, 공부를 잘하고 단정한 모범생이라고 나왔는데, 저는 걔가 공부를 잘하는 줄도 몰랐어요. 아무도 그런 말은 안 했고, 애도 좀 띨빵하게 생기고 어리버리 해서 당연히 공부는 못할 줄 알았어요. 어디서 들으셨는지 몰라도, 걔랑 사귄 적이 있느냐는 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개는 남친은 커녕 친구도 없었어요. 쉬는 시간에는 안 자는 거 뻔히 아는데 엎드려서 자는 척하더라고요.

    직접 괴롭히는 걸 본 적은 없는데, 걔가 여자들한테 찍힌 건 사실이에요. 보통은 아예 관심 자체를 안 줬는데, 가끔 지나가면서 걔 들으라고 욕하고 지나가고 하더라고요. 별명이 개미인가, 그랬을 거예요. 1학년 때, 어떤 선생이 그렇게 불러서 굳혀졌다고 하는데 진짜 개또라이죠. 하여튼 여자애들이 다 정유진을 싫어하니까 남자애들도 싫어했어요. 계기는 딱히 없었는데, 예쁜 것도 아니고, 애도 좀 이상하고 하니까 다들 그냥 자연스럽게 싫어했죠.

    그러다가 제가 걔랑 조금 친해진 건 사실이에요. 같은 반 학생인데 불쌍하기도 하고 그래서요. 제가 이런 말은 좀 자뻑 같아서 하기 싫었는데, 솔직히 이건 칭찬받아야 하는 거예요. 알잖아요, 걔는 왕딴데, 걔랑 친해지면 괜히 저만 손해 보는 거. 그런데 저는 도와준 거라니까요?

    잤냐고요? 서로 동의했어요. 요즘 애들은 뭐 하는지 다 알아요. 피임도 제대로 했고요. 물론 학생 신분인 만큼 서로 조금 더 신중했어야 했다는 건 알아요, 그건 제 잘못이 맞고요. 그렇지만 문제 될 건 아무것도 없잖아요. 지금 왕따랑 잤다고 뭐라 하시는 거면 곤란한 게, 그런 못생긴 애랑 자줬는데 오히려 걔가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저하고 조금 말하고 놀고 하다 보니까, 다른 남자애들이랑도 자연스럽게 친해지더라고요. 쉬는 시간에도 자는 척 안하고요. 이제 아마 아셨을 건데, 이제 와서 제가 걔랑 잤고 어쩄고 하는 게 밝혀져도 저는 문제 될 게 하나도 없어요. 오히려 걔나 걔 부모님한테만 문제 될 걸요. 지금은 무슨 피해자인 것처럼 나오는데 어이가 없더라고요. 왜냐고요? 진짜 이거는 제가 정유진 이미지 생각해서 말 안하고 다닌 건데, 걔 남자 엄청 밝혔어요. 다른 남자들이랑도 잤을 걸요?

    제가 보기에 그 때, 반에 있던 남자들은 대부분 정유진이랑 잤을 거예요. 알잖아요, 사춘기 남자들은 자라고 하면 지 엄마뻘이랑도 잘 애들인 거. 강요 같은 건 안 했어요. 그러면 강간이잖아요. 오히려 걔가 적극적으로 꼬시고 다녔다니까요. 우리가 걔를 뭐라고 불렀는지 알아요? 여왕개미예요, 여왕개미.

    저기요, 저 진짜 대학 들어오고 집중해야 하는 시기예요. 공부도 그렇고, 여자도 만나고 해야는데 이제 와서 몇 년 전에 죽은 애랑 잤고 어쩌고 하는 걸 추궁하셔도 되게 곤란해요. 청춘이란 게 다 그런 법이잖아요. 남들은 술 한잔으로 흘린다는데 왜 저만 운이 없어서 그러는지 모르겠네요. 이럴 줄 알았으면 안 도와줄 걸 하는 생각도 다 들고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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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예리 – 동물 시체에서 사는 아이(3)

    정유진에게 불쾌한 편지를 몇 통 받은 것만 뺀다면 중학교 시절 3년을 나는 즐겁게 보냈다. 그 때문에, 나는 유진이를 거의 잊고 지냈고 무심코 K 고등학교를 1지망으로 제출하고 말았다. 집이 가까운 만큼 나는 높은 우선순위를 받아 간단히 입학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실수였던 것이다. 당연히 옆집에 사는 유진이도 K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나는 다시 3년간 정유진의 죄수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걱정과 별개로, 나는 새로운 학교에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도 있었다. 학교가 다시 중학교와 다시 멀어진 탓에, 내가 사귄 새로운 친구들은 대부분 다른 고등학교로 진학했고, K 고등학교에는 아는 사람이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에게 아직도 이런 학생다운 감정이 남아 있다는 것이 새삼 놀라웠다. 그런 걱정은 다행히 기우로 끝났다. 입학식 날, 불안한 마음으로 등교한 나를 초등학교 동창들이 알아본 것이었다. 다행히 나를 좋게 기억해 줬는지, 3년간의 공백은 없었다는 듯한 반응이었지만 나는 그룹마다 본 적 없는 아이들이 끼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중학교 공백은 분명히 존재했던 것이다. 나는 그 아이들의 경고를 충분히 이해했다. 아는 척 해줬다고 눈치 없이 친구인 양 행세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번갈아가며 초등학교 동창 애들을 만났는데, 어느 그룹에도 유진이 없다는 걸 알았다. 입학식 행사 내내, 나는 무의식적으로 유진을 찾았는데, 그 아이와 만난 것은 행사가 다 끝난 뒤, 교문 앞에서였다.

    3년만에 만난 유진은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초라했다. 그래도 어릴 적에는 나름 볼살이 귀여웠는데 지금은 양 뺨이 쏙 들어가 그저 메말랐고, 키는 조금 컸지만 팔다리가 너무 얇아 나뭇가지 같았다. 무엇보다 앞을 보고 걷는 법을 모르는 것처럼 푹 숙인 고개가 한심해 보였다. 그 아이가 그런 모습으로 내게 다가오자, 나는 무심코 내가 아닌 내 뒤에 있는 누군가를 본 것이기를 바랐다. 불행하게도 그 아이는 정확히 내 앞에 멈춰서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그러자 작은 입의 안쪽으로 덧니가 보였다.

    “예리야, 오랜만이야! 너 하나도 안 변했구나!”

    그리고 목소리는 또 어찌나 큰지. 사람과 대화하기 딱 맞는 목소리를 모르는 게 분명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며칠 동안 다른 사람과 대화한 적이 없었던 것이 분명하다. 지나가는 학생들이 우리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기억 안 나? 나야! 옆집 사는 정유진! 우리 어릴 적에 단짝이었잖아!”

    내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유진은 무엇이 그리 급한지 다급하게 자신을 소개했다. 이 멍청한 아이는 진심으로 내가 자기를 까먹었을 거라 믿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주변의 눈치를 살피기 바빴다. 여전히 지나치게 목소리가 컸다. 학생들은 제 갈 길을 가며 우리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호기심이 아니란 것을 눈치챘다. 그 아이들은 유진이 아닌 내 쪽을 보며 조롱 섞인 평가를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정유진의 의도가 이해가 됐다. 그 아이는 자신에게 친구가 있다는 것을 주변에 증명하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어떤 대우를 받을지 생각도 못한 채로 저 혼자 절박하게 살아남으려고 한 것이다. 어릴 적이랑 똑같았다.

    “미안한데 나한테 아는 척하지 않아 줬으면 좋겠어.”

    내가 말했다. 생각보다 차가운 목소리가 나와 놀랐지만, 그 정도가 딱 좋았다. 그러자 유진은 예상도 못했다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나는 그게 연기인지, 아니면 정말로 의외라고 생각한 것인지 몰랐다.

    “예리야, 왜 그래? 내가 뭐 잘못했어?”

    “너랑 얘기하는 거 부끄러우니까.”

    나는 그렇게 대답하고 자리를 떠났다. 유진은 대답하지도, 나를 쫓아오지도 않고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나에게 괜찮다고 말하며 옷에 개미 시체를 문지르던 유진은 이미 없었던 것이다. 그 아이는 이미 실패를 만나면 체념하는 것이 버릇이 든 것이다. 뒤쪽에서 다른 학생들이 킥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말한 것이 정답이었는지, 다음 날부터 나는 아무 문제 없이 새 친구들을 사귀고 그룹에 들어갈 수 있었다. 유진과는 다른 반이 되었다. 그렇게 3학년까지 정유진과 다시 만나는 일은 없었다.

    그렇지만 여학생들과 어울리지 못했기 때문일까, 그게 정말 좋은 생각이라고 여겼는지 몰라도, 2학년쯤부터 유진이 남학생들과 어울린다는 안 좋은 소문이 간간이 들려왔다. 처음에는 헛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 아이에게는 여성적인 매력이 전혀 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없었으니까. 나는 순진하게도 여성을 파는 것에도 조건 같은 것이 필요하게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자신감 없고 못 생긴 아이를 남학생들이라고 좋아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내 예상과 달리 소문은 날이 갈수록 살이 붙었다. 그 아이가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소문까지 이르러서는 도무지 이해가 안 갔다. 남자는 내 생각보다 멍청한 건가. 나는 별 관심 없었지만, 유진이가 남자와 사귄다는 이야기는 친구들 사이에 큰 화제가 되었다. 왕따와 사귀는 멍청한 남자가 누군지 다들 궁금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 시점부터 더 들려오는 소문이 없자, 친구들은 금방 다른 화제로 넘어가게 됐다. 나는 고작 옆 반의 일인데 소문이 끊긴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 진상을 알게 된 것은 한참 나중이었다.

    아, 정유진은 남자친구를 사귄 적이 있다. 유진이가 죽은 뒤에 나는 당연히 기자들이 그 남자애를 찾아갈 거라 생각했는데, 별 관계도 없는 나만이 이상할 정도로 표적이 되었다. 뭔가 이상해서 찾아보니, 그 아이가 남자친구가 있었다는 내용은 어디에도 없었다. 아마도 그 남자애가 주변에 비밀을 지켜달라고 부탁한 것일 터다. 그 둘의 교제는 애초에 그리 건전한 연애가 아니었으니까, 교사들이나 관계없는 학생들은 몰랐을 것이다. 부디 박서한, 그 좆같은 강간범 새끼를 찾아가보길 바란다.

    어쨋건, 나는 1, 2학년 때도 최대한 정유진을 피해 다녔다. 등교도 무리해서 30분씩 일찍 하고, 하교도 일부러 더 늦게 하는 식이었다. 다행히 우리 학교는 더 공부하겠다고 말하면 12시까지 문을 열어줬기 때문에, 야자가 끝나는 10시부터 30분이나 1시간씩 더 늦게 가는 식이었다. 나는 반장이었기 때문에 공부를 더 하고 가겠다는 핑계도 간단히 먹혔다. 어른들은 반장이라고 하면 쉽게 모범생 같은 것은 상상하니까, 나는 그 기대에 부응한 셈이다.

    하여튼, 나의 그런 부단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운이 다했는지 3학년에 와서 나는 정유진과 같은 반이 되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첫날부터 그 아이가 다가와 내게 말을 걸 줄 알았다. 멍청한 아이니까 굳이 눈치 없이 옛날의 우정 따위를 운운하면서 굳이 상처를 받은 뒤에야 떨어져 나갈 거라 생각한 거다. 그렇지만 의외로 유진은 첫날부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교실 한가운데에 혼자 앉아 있었다. 그렇게 말이 없는 아이가 아닐 텐데, 그렇게 생각했지만 나는 머지않아 그 아이가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미 내가 알고 있는 어린 시절의 정유진과 다른 사람이었던 것을 순진하게도 나는 고등학교 3학년에 이르러서야 깨달은 것이다. 덧니, 그 빌어먹을 덧니가 여전히 입에 남아 있는지, 아니면 중학교에서 봤던 그 멍청한 왕따처럼 교정하고 있는지 알 수도 없었다. 그 아이는 입을 열질 않았다.

    3학년 등교 첫 날, 나는 교실에서 이상한 것을 깨달았다. 남학생과 여학생 그룹이 나뉘는 것은 흔하게 있는 일이었지만, 남학생들이 이상하게 조용했다. 그러려니 생각했지만, 담임 선생님이 들어온 뒤로 더욱 이상했다. 담임은 1학년 수학 선생이었는데, 중년에 결혼도 하지 않은 선생이 훈계를 빙자한 성희롱 같은 소리를 한다고 여학생들 사이에서 유독 평판이 안 좋았다. 그 선생도 말이 많은 사람이었는데 이상하게 무게를 잡았다. 나만 그것을 느낀 것은 아니었는지, 내 옆에 앉은 학생이 선생이 폼을 잡는다고 킥킥거렸다. 그렇지만 교실에서 그보다 깊은 것을 눈치챈 것은 나뿐이었다. 오로지 시체 냄새나는 개미굴에서 아양 떨며 살아온 나였기에 알 수 있었던 것이다.

    모든 남자들의 시선이 유진의 몸을 향했다. 남학생들과 심지어 교사마저 음탕하게 그 궁상맞은 몸을 훑어대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무심코 토할 것 같았다. 그 장소에 있는 사람은 모두 죄인이었다. 남자들은 강간범이었고, 여자들은 공모자였다. 나는 오랜 세월을 관찰자라고 생각했는데, 실상은 그보다 큰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유진이가 죽었을 때, 날아간 다리가 20m 밖에서 발견됐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었다. 나는 문득, 순진한 얼굴로 개미의 다리를 옷에 문지르던 유진이의 얼굴이 생각났다. 그 아이가 죽었을 때, 몇 명이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까. 좀비라면 죽어도 괜찮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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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예리 – 동물 시체에서 사는 아이(2)

    알다시피 유진과 내가 계획한 끔찍한 범죄는 허사로 돌아갔다. 그럼에도 우리의 공생관계는 끝나지 않았다. 아니, 공생이라기보다는 상호 간의 기생에 가까웠다. 우리는 깨진 거울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비추는 와중에 흉한 모습만을 왜곡해서 부각했다. 그 아이와 있을 때, 나는 스스로에게 혐오감마저 느꼈다.

    우리는 아침마다 서로의 부모님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러면서 우리가 세웠던 계획이 그들에게 들키지 않았는지 노심초사하며 정찰한 것이다. 그리고는 지난 밤 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에 안도하며 같은 등굣길을 걸어 학교를 향했다. 그렇지만 우리는 서로 한 마디의 대화도 주고받지 않았다. 친구가 아니었으니 당연했다.

    다행히도, 우리의 이런 불편한 기생 관계는 초등학교를 졸업하며 사실상 끝나게 되었다. 우리 빌라는 K 초등학교와 K 중학교의 중간쯤에 있어, 이 동네에 사는 아이들은 보통 K 초를 졸업하고 K 중으로 진학하게 된다. 그래서 주변에 사는 초등학교 친구들은 모두 K 중으로 들어가게 되었지만, 나는 아버지를 설득해 멀리 떨어진 K 여자 중학교로 들어갈 수 있었다. 아버지도 내가 공학을 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선뜻 허락해 줬다. 어머니는 탐탁지 않아 보였지만, 집안에서 어머니의 의견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걸 알았다.

    K 여자 중학교는 K 중학교에 비하면 우리 빌라로부터는 꽤 떨어져 있었다. 동네에 있는 모든 교회를 찍고 돌아가는 마을버스를 타면 30분 정도, 걸어서는 1시간 정도의 거리였다. 나는 작고 흔들리는, 그리고 사람이 많은 버스를 타는 것이 싫어서 걸어서 등교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 덕에 나는 남들보다 1시간은 일찍 집을 나오고, 1시간은 늦게 집에 돌아왔다. 내가 예상한대로 유진은 K 중학교에 진학했고, 그렇게 사실상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접점은 사라졌다. 덕분에 나는 3년간, 유진과 이웃집에 살면서도 그 아이로부터 해방된 시간을 만끽할 수 있었다. 정든 초등학교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도, 아침 일찍 일어나 한참을 걸어야 하는 것도 그 대가라고 생각하면 별거 아니었다.

    걱정한 중학교 생활은 생각보다 쉽게 풀렸다. 여자 중학교 특유의 단결력 덕분이었다. 아이들은 번갈아 타겟을 정해서 왕따 시켰고, 그 무리에 낄 수만 있으면 금방 친구를 만들 수 있었다. 아버지를 닮은, 기가 쎄보이는 날카로운 눈초리 덕분인지, 아니면 단순히 공부를 잘했기 때문인지 몰라도, 다른 지역에서 온 입학생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타겟으로 잡히는 일이 없었다.

    특히나 오래 괴롭힘을 당한 아이가 있었는데, 자그마치 1학년 1학기 중반부터 3학년 졸업할 때까지 괴롭힘이 이어졌다. 성적은 중상위권은 했고, 커다란 나이키 로고가 새겨진 가방을 메고 다니는 아이였다. 조금 눈에 띄는 점이라면 덧니 때문에 입이 약간 튀어나온 정도였는데 애교로 봐주지 못할 것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아이들에게는 그것도 충분한 명분이 되었는지, 집요하게 그 아이의 외모를 빌미 삼아 괴롭혔다.

    내가 보기에는 괴롭히는 애들 중에서도 그 아이보다 못생긴 아이도 제법 있었지만, 굳이 말하지는 않았다. 아이들이 정말로 그 아이가 못생겨서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알았다. 별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도 아닐 것이다. 어른들이야 괴롭힘의 원인을, 무리에 찬동하며 심리적인 안정감을 얻는 것이나, 자신보다 유능한 사람에 대한 적개심 같은 다양한 이유로 설명하지만, 직접 관찰한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아마 재밌으니까 그랬겠지. 오로지 괴롭힘당하는 아이만 바보같이 그 말을 믿고, 치아 교정을 하거나 화장을 하거나 했지만, 그것도 괴롭힘의 소재로 이어질 뿐이었다.

    이렇듯, 나는 즐겁게 중학교 생활을 보냈다. 평범한 중학생 같은 충실한 나날이었다. 그런 나의 일상을 어떻게든 망치고 싶었는지, 유진은 잊을만하면 한 번씩 편지를 보냈다. 바로 옆집에 살고 있는데 무려 우표까지 붙여서 우체국을 통해서 편지를 보낸 것이다. 아둔한 것도 정도가 있는 법인데, 그 아이는 그 한도를 모르는 것 같았다. 당연히 나는 대부분 찢어서 버렸지만, 깜빡한 것이 있는지 얼마 전에 방을 정리하다가 한 통의 편지를 발견해 여기 끼워 놓았다. 마음만 같아서는 이것도 버리고 싶었지만, 그 아이가 남긴 유품이라 생각하고 남겨두기로 했다. 더욱이 나보다는 가십거리를 찾아다니는 기자들에게는 필요할 것 같았다.

    그렇지만 다시금 읽어보니 기억보다 터무니없는 내용이었다. 마치 그것을 사실로 여기는 듯이 망상을 늘어놓으니 모르는 사람은 속아도 이상하지 않다. 그러니 내용을 읽기 전에, 혹은 이미 읽은 사람에게 당부하지만, 쓰여있는 내용과 달리 우리 사이에는 어떤 우정도 없었다. 실제로 나는 한 번도 답장을 보낸 적이 없었고, 편지를 보관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 아이의 일방적인 묘사와 달리, 나는 그 아이를 친구로 여기지 않았다. 심지어 그 아이도 나를 그렇게 생각했다. 그 아이는 타고난 거짓말쟁이라, 적혀 있는 내용 중 대부분이 잘 짜맞춰 진 헛소리인 것이다. 나는 중학교 3년 내내 그 육교를 건너지도 않았다.

    예리야, 잘 지내고 있니?

    이렇게 말하려고 하니까 이상하네. 우리는 바로 옆집이니까 원한다면 언제든지 대화하고 얼굴 볼 수 있을 텐데. 그렇지만 너와 내가 만나지 못한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아. 1년 정도 되었을까? 너와 같은 중학교에 갔더라면 매일 만날 수 있었을 텐데, 지금도 후회돼.

    사실 나는 너한테 편지를 보내면 안 돼. 너희 어머니께서 내게 너와 만나지 말라고 당부했거든. 그렇지만 이건 편지니까 엄밀히 말하면 만나는 것에 들어가지는 않지? 그래도 안된다고 생각하면 그냥 이 편지를 읽지 말고 버려주렴. 그냥 버리면 너희 어머니가 주워서 볼 수도 있으니까 갈기갈기 찢거나 태워서 버리는 게 좋을 거라 생각해. 물론 너는 똑똑하니까 내가 이렇게 말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혹시 모르니까 걱정돼서 말해봤어. 기분 나쁘지 않았으면 좋겠네. (물론 버리지 않고 가지고 있어줘도 돼! 대신 들키지 않으면 좋겠네!)

    학교생활은 잘하고 있니? 부끄럽지만 나는 별로 친구를 만들지 못했어. 아는 애들이 대부분 다른 반이 됐거든. 나 빼고 다른 애들은 다 아는 사이였는지, 처음 반이 잡힌 날부터 서로 떠들고 있었어. 처음 몇 번은 걔네와 같이 밥을 먹거나 얘기하기도 했지만, 나는 역시 혼자 있는 게 더 편한 것 같아서 어울리는 걸 그만뒀어. 그렇지만 오해하지 말아줘. 걔네는 좋은 아이들이고, 나는 딱히 왕따를 당하는 건 아니니까. 그렇지만 역시 너하고 같은 중학교를 다니는 게 좋았을 것 같아. 그러면 반이 달라도 쉬는 시간에는 만날 수 있으니까.

    K 여중 생활은 어떻니? 여중이니까 K 중하고는 분명 다르겠지? 중학교에 올라오니 남자아이들은 더 이상해졌어. 매일 야한 얘기를 하고, 엄청 시끄럽고, 이상한 냄새가 나. 체육 시간만 끝나면 반에서 땀 냄새가 엄청 나는데 정말로 나는 그런 지독한 냄새는 살면서 처음 맡아봤어. 남자애들은 반에서 뛰어다니는데, 그때마다 책상을 강하게 치고 가. 어릴 때는 그래도 내가 더 키가 커서 괜찮았지만, 요즘은 남자애들이 나보다 키가 더 커서 조금 무서워. 역시 나도 여중에 들어가는 게 좋았을 것 같아.

    요즘에는 쉬는 시간에 책을 읽고 있어. 좋은 책이라 너에게도 꼭 추천해주고 싶어.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라는 책인데, 혹시 읽어본 적 있니? 거기에 보면 원래 살던 별에서 떨어져 나와 고향별에 있는 장미 친구를 걱정하고 그리워하는 어린 왕자가 나오는데, 나는 그 모습이 왠지 나와 비슷하다고 생각해. 우리는 그렇게 멀리 떨어져 생이별한 건 아니지만 내가 항상 너를 걱정하고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

    사실 나는 얼마 전에 너를 본 적이 있어. 우리 집 앞에 있는 육교 알지? 우연히 길을 가는데 육교를 건너가는 네가 보이더라. 반가워서 말을 걸까 하기도 했는데, 네 표정이 유독 어두워서 그냥 지나치고 말았어. 지금 생각하면 아마 말을 걸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봤어야 했던 것 같은데 미안해. 내가 이렇게 장황하게 편지를 쓰고 있는 건 사실 그것 때문이기도 해. 너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었거든.

    괜찮으면 언제라도 답장 보내줘. 물론 답장을 보내지 않아도 돼. 그러면 너는 아무 일도 없었고, 내가 공연한 걱정을 했다고 생각하면 되니까.

    너의 소꿉친구, 정유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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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예리 – 동물 시체에서 사는 아이(1)

    이 글을 읽는 사람 누구도 내 의도를 착각하지 않도록 서두에 명시한다. 나, 신예리는 정유진을 싫어한다. 좋아했던 적은 일생 한 번도 없었고, 그녀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단 한 번도 동정하지 않았다. 그런 그녀가 죽은 이상, 얕은 인연마저 끊어졌으니 더이상 관계자로 남고 싶지도 않아 이 글을 작성하고 있다. 즉, 나는 누구도 이 글을 보고 내게 연락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 아이는 그저 불쾌한 안개 같은 것으로 남아 있고, 그 자취가 나를 쫓는 순간, 그것은 그저 망령에 불과한 것이다. 나는 드디어 자유의 몸이거늘, 실체없는 망령 따위에게 사로잡힐 수는 없다.

    우리 가족이 K시의 빌라에 들어온 것은 내가 5살 무렵이다. 빌라 건물은 30년이나 된 낡은 것이라, 아무리 페인트를 칠하고, 벽지를 새로 발라도 덮을 수 없는 매캐한 냄새가 벽지 너머에서 새어 나왔다. 거대한 동물의 시체 속에서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건물 외벽에 주렁주렁 달려있는 돌출형 베란다는 뼈다귀 같았고, 거기 얹어진 커다란 에어컨 방열기는 여름마다 뜨거운 열을 사방으로 뿌려댔다. 그 당시에는 그것이 유행이었는지, 낡은 건물이 많은 K시 곳곳에서 그런 건물들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코끼리의 무덤에 대해 떠올렸다. 코끼리들은 죽을 때가 되면, 스스로 무리를 떠나서 대대로 조상이 숨을 거둔 무덤에서 때를 기다린다고 하지 않는가. 만약 아파트가 코끼리의 시체라고 하면 거기에 모여들어 사는 우리는 뭘까? 작은 쥐? 아니, 아마도 개미 같은 것이겠지.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살던 빌라에는 개미가 많았다.

    내 신세를 개미에 비유했지만, 사실 개미는 그런 것보다 거주민의 원수 같은 존재였다. 처음에는 그저 작은 소동처럼 보였던 개미는 사실은 더 심각한 문제였다. 개미는 집 안의 모든 그늘진 틈새 사이에서 줄지어 기어나왔다. 청소기를 돌리거나 약을 치고, 업체를 불러도 잠깐 모습을 감출 뿐, 한, 두 주가 지나면 전혀 다른 곳에서 기어 나오기 일쑤였다. 음식 부스러기라도 흘리는 날에는 개미 덩어리를 볼 수 있었다. 심지어 욕조에 물을 받자 개미가 둥둥 떠오르기까지 했다. 어렸을 적이라 어려운 이야기는 몰랐지만, 주민 회의 등에서도 진지하게 이 문제를 다뤘다는 것 같았다.

    어린 나는 아무리 쫓아내도 돌아오는 개미를 보고, 개미가 벽 사이에 산다고 믿었다. 벽지와 벽지 사이, 철과 콘크리트로 이뤄진 그 회색빛 공간을 굴처럼 뚫어 바글대며 행진하는 개미떼를 상상했다. 벽에 귀를 가져대면 사각이며 벽을 갉아 먹는 개미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상상 속에서 개미들은 뼈로 된 발톱으로 벽지를 긁으며 올라가고, 큰 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언제나 그 끝에는 비명과 울음소리가 뒤따랐다. 나는 결국 건물이 거대한 개미 집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이방인은 우리였다. 우리가 그들에게 얹혀살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충격적인 사실을 깨달은 이후, 나는 개미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개미들은 벽지 너머에서 작은 구멍을 뚫고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사방에서, 내 일거수일투족은 완전히 감시되고 있었다. 나는 혹시라도 밟아버릴까 싶어, 집 안에서는 언제나 바닥을 보며 걸었다. 가끔 실수를 가장해 바닥에 음식 부스러기 같은 것을 흘려 공물을 바치기도 했다. 대신에 밤에 내 몸을 갉아 먹지 말아 달라고 그들에게 간절히 아양을 떨어댄 것이었다.

    벽에 귀를 대면 언제라도 개미의 고함소리가 들려 왔다. 긁는 소리, 둔탁한 충격음, 웅성거림, 고함 소리. 마치 성인 남자의 목소리 같았다. 그 끝에는 언제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나와 비슷한 아이의 울음 소리.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정유진이 살던 집은 내 방과 벽이 맞닿아 있었고, 내가 개미의 것으로 생각한 그 공포스러운 소리는 모두 그 집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유진과 나는 언제나 같은 장소에서 만났다. 멀리 걷는 법을 배우지 못한 아이들이었기에 우리가 갈 곳이라곤 집 앞 놀이터밖에 없었던 것이다. 유진과 처음 만난 순간, 강렬한 동질감을 느꼈다. 우리에게는 도망자였다. 나는 개미로부터, 유진은 어른으로부터 도망쳐 나왔다. 우리 둘의 나이는 같았고, 키도 비슷했지만 그런 것은 사실 관계없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도 우리는 가까운 사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마주친 순간, 서로를 사슬로 얽매고 마는 그런 운명이었다. 그러나 나는 결코 그 아이와 친구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아이도 그 사실을 알았다.

    여느 때처럼, 나와 유진은 놀이터에 나와 있었다. 미리 약속한 것도 아니지만 거의 항상 같았다. 나는 언제나 감시당하고 있고, 유진의 부모님은 언제나 싸웠으니까. 같은 도피처를 공유하는 한, 우리는 영원히 떨어질 수 없었다. 그때, 나는 그네를 타고 있었고, 유진은 시소를 타고 있었다. 그것도 혼자서 말이다. 정말 멍청한 아이였다.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는 것은 불가능한 그런 아이였다. 나는 모른 척하며 혼자 그네를 탔다. 그러다 문득, 다리가 간지럽다고 느껴 고개를 내렸다. 다리 위에는 개미 한 마리가 내 몸을 기어 올라타고 있었다. 나를 거대한 먹이라고 생각한 건지, 나무와 헷갈리기라도 했는지 모를 일이지만, 나는 비명을 지르며 그네에서 떨어졌다.

    “왜 그래?”

    유진이 혼자 놀던 시소에서 뛰어내려 내게 달려왔다. 나는 제대로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아마 울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도 유진은 알았다는 듯이, 손가락으로 그 큰 개미를 붙잡았다. 그리고는 엄지와 검지로 짓이겨 죽였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 그로테스크한 환영이 떠올랐다. 늦은 밤이다. 침대 위에서 자고있는 내 몸 위에 검은 줄 몇 개가 그어져 있다. 잘 보니 줄지어 내 몸을 기어 올라온 개미떼였다. 그들은 성인 남자의 고함을 닮은 그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방 안에 그들이 만들어낸 거친 소음이 가득 차지만 나는 일어나지 못한다. 한 번은 아버지가 말했다. 너는 밤에 누가 엎어가도 모를 거라고. 그렇듯이 나는 자면 깨어나지 못하는 체질이었다. 개미들은 턱을 열어 내 피부를 찔러다. 사실 입처럼 보이는 개미의 가위 모양 턱이 먹이를 찢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턱 사이로 무수히 많은 작은 이빨이 들어있는 입이 오물거리고 있다는 것을 아는가. 그들은 내 살갗을 일제히 파고들고 나는 머지않아 잠옷과 백골만 남기고 사라진다. 내 몸은 개미들의 새로운 보금자리가 된다. 빌라 건물처럼 부패한 냄새를 뿜을 것이다.

    그런데 무신경한 아이는 아무것도 모른 채, 순진하게 죄를 저지른 것이다. 유진은 내가 우는 이유도 모르고 있는 멍청이였다. 그 아이는 나를 보며 그 멍청한 표정으로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 아무도 안 봤어.”

    개미의 피와 다리가 붙어 있는 손가락을 옷에 문지르면서. 나는 그 순간, 그 아이와 내가 돌이킬 수 없는 죄를 함께 저지르리란 예감에 사로잡혔다. 유진은 개미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타고난 괴물이었다.

    우리는 죄로 얽힌 관계였다. 죄인이자 영원히 서로 감시해야 하는 간수였다. 어머니가 항상 말하곤 하던 주 예수 그리스도마저 등 돌린 원죄를 타고난 것이다. 부모는 우리가 짊어져야 하는 죄였다. 어떤 자식도 제 부모를 선택할 수는 없었다. 부모는 우리의 죄였다. 하지만 나는 그 순간 알게 된 것이다. 유진은 나 대신 개미를 죽였고, 우리는 서로의 부모를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그날 그렇게 약속했다. 서로의 부모를 죽이자고.

    하지만 유진의 어머니는 집을 나갔고, 주민회의 주최로 끈질길 방역 끝에 빌라에서 개미는 사라졌으며, 유진은 죽었다. 나는 유학을 통해 집에서 떨어져 나왔다. 마침내 저지르지 않은 죄, 실체 없는 망령으로부터 해방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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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성태 – 현관

    「기자 방문 사절. 방문 시 신고함.」

    「사진 절대 엄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