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26년 5월 16일 – 현재진행형

    연재 당시의 일기를 정리하며 깨달은 바가 있다.

    당시에 하려 했던 것, 혹은 하게 된 것들의 대부분이 여전히 진행 중에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금각사를 아직 다 읽지 않았다. 집필 프로그램 역시 워드로 전환하지 못했다. 아직도 밤잠을 설치며, 키보드에 커피를 쏟는다.

    이토록 긴 시간이 지났음에도, 나는 조금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나는 10년 후에도 키보드에 커피를 쏟고 있을 것이고, 20년 후에도 그럴 것이다.

    이렇듯이 사람은 (혹은 나만은) 스스로 맺음 짓지 못한다. 이것이 죽음이 필요한 절실한 이유이다. 삶에는 아름다운 방점이 필요하다. 아무리 추하고 허무하더라도, 방점은 그 자체만으로 아름답다.

  • ,

    2026년 4월 21일 – 6년의 침묵과 고도화된 피로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문인 중에서도 기이한 경력을 가진 폴 발레리가 집필과 단절하여 지낸 세월은 거의 20년에 이른다. 나는 동년의 작가들이 금자탑을 쌓는 동안, 삶과 재능을 한없이 허비했다.

    그렇기에 폴 발레리인 것이다. 오직 그만이, 나의 저열한 열패감과 6년이라는 경력 단절을 위로해 준다. 하지만, 내가 폴 발레리인가? 최인훈도, 피츠제럴드도 되지 못한 내가.

    최근, 나는 고도화된 피로를 느낀다. 이렇게 말하면 꽤 훌륭한 것처럼 들리지만, 그 본질은 언어화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고 문장을 매개로 다루는 우리 같은 족속들에게, 언어화가 어렵다는 것은 실로 나태하고, 별 볼 일 없는 것이다.
    (혹은 그만큼 가치가 없거나)

    어쨌거나, 나는 전에 없이 고도화되어 있다.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세월이 얼마나 무자비할 수 있는지 보았다.
    20년의 시간이 antihoney에게서 무엇을 빼앗았는지 보았다.

    바람이 분다. 그렇지만, 살아야 할 이유는 어디 있지?

  • ,

    2021년 4월 28일 – 취미

    취미가 있는 사람은 멋있다.

    장기적으로 열정을 유지하는 것이 어려운,

    보온성이 선천적으로 결여된 내게는 부러운 일이다.

    독서와 음악 감상이 취미가 되기엔 너무 보편적인 사회이니,

    뭔가, 어, 모르겠다.

    유화나 피아노를 다시 하고 싶은데,

    시간이 필요한 일이고….

  • ,

    2021년 4월 27일 – 일기예약제

    언젠가부터 일기를 예약 등록하는 게 거리낌이 없어졌다.

    초등학교 저학년이나 꾀부리며 할 만한 행위가 아닌가 하고 실감.

    일단 매일 쓰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하루에 여러 번 쓰는 건 또 다른 느낌.

    애초에 일기라고는 하나, 그날 있었던 일은 거의 쓰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은. 음. 음.

    일기라고는 하지만, 대부분은 내 사고 안에서의 일이고.

    그렇지만 인생이 워낙 단조로워서, 차라리 유서를 쓰는 쪽이 더 재밌을 것 같다.

  • ,

    2021년 4월 25일 – 예쁘다고 생각하는 단어

    오뉴월, 가랑비, 쾌창.

    정말 예쁘게 생겼고, 음색도 좋은 단어.

  • ,

    2021년 4월 23일 – 일기 대행 업체

    일기 대행 업체가 있고, 그들이 적어주는 일기대로 생활한다면,
    굉장히 충실한 생활을 하게 되지 않을까?

    업체는 일상 소재가 충실하지 않을 테니,
    자극적이고 일탈적인 경험을 위주로 적을 테고,
    그것들을 수행한다면 인생의 밀도가 높아질 테지.
    (-테다체로 문장을 세 번 끝냈다!)

    하지만 일기를 쓰는 일은 아주 귀찮으니까,
    어느 업체도 감당하지 못할 일이겠지.

    4월 24일분 일기를 구매합니다.

  • ,

    2021년 4월 20일 – 흉터

    과거는 상처로 남는다.

    뇌에 난 기억, LP판의 홈, 모래알이 스친 바위.

    오늘도 내 몸에 상처를 새긴다.

    넘치는 핏물과 고름에 말라 죽을 때까지.

  • ,

    2021년 4월 20일 – 만일 저 별이 내게 온다면

    ‘언어는 사회적 약속이다.’

    요즘따라 자주 보이는 표현이다.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의미가 아닌 사용법은 언어로서 적용되지 않는다는 의미로, 주로 남을 질책할 때 쓰인다.

    최근까진 나도 여기 동의했지만, 언어학에 대한 관심이 깊어짐에 따라 명제에 의문을 품게 되었다.

    언어라고 한들 결국엔 소리다. 그러면 언어와 무관하게 의미를 담을 수 있지 않을까.

    의미가 없는 음성이라 해도, 듣기에 편하고 거북한 음성이 있을 터다.

    그렇다면 그 단어는 그 자체로 의미를 전하니, 언어로 기능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

    그래도 나는 먼 우주에서 말이 통하지 않는 손님이 찾아온다면,

    저 별이 내게 온다면 피아노를 연주할 것이다. 에릭 사티가 좋겠지.

    고독이 깊어진다. 잠은 늘고, 깜빡임은 점차 둔해진다.

    허나 자기에는 이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