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츠제럴드는 돈을 위해 글을 썼다. 평생을 그렇게 살았다.
그는 할리우드에서 글을 썼다. 그리고 아주 많은 작품을, 단편들을 돈을 받고 써냈다. 이 때문에, 피츠제럴드는 항상 평가절하당했다. 하지만 사실은 어떤가? 문학이 돈과 분리되었던 시대가 진정 있기는 한가? 실로 기이하다. 자기완결을 위해 일생을 바친 극소수의 기인이 만들어낸 이미지에, 문학의 실체는 완전히 부정당해, 질식되어 소멸하고 만 것이다. 심지어 이 허무맹랑한 신기루에 홀려, 지금 같은 시대에도 수많은 젊음이 비실존하는 문학을 향해 허망한 투신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운 좋게도 나는 그 역학을 벗어났다. 해답 없는 탐미주의와 자아실현의 몽상에서 빠져나와, 오직 돈을 위한 글을 쓰게 된 것이다. 이는 내 경력이 일천하여 어떤 허물을 쓰는 데도 거부감이 없었기 때문이고(꽤 나중에 알았지만, 이것은 꽤 주요한 소질이었다.), 또 천만다행하게도 사람들이 사주는 글을 쓰는 법을 익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가장 주된 이유를 말하자면, 내게 아주 많은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그래서 지금은 어떠한가? 내 것이 아닌 채무는 끝났고, 나는 본디 그런 거금을 원치 않는다. (이 점에 한해서는 피츠제럴드보다 운이 좋다고 할 수 있겠지.) 긴 세월 억눌렸던 자아는 다시금 실존하지 않는 신기루(자아 실현, 작품, 문학)를 향해 나아갈 것을 호소한다. 밤마다 문호들(헤밍웨이, 도스토프옙스키, 미시마 유키오)의 허깨비가 내게 다가와 손을 내민다. 완전히 미친 짓이다. 하물며 나는 이제 젊지도, 진정 열의를 담아낼 글(신기루)을 쓸 수도 없을 뿐더러, 쓰길 원하는 지조차 알지 못한다.
피츠제럴드는 돈을 위해 글을 썼다. 평생을 그렇게 살았다. 어찌 그랬을까.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