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갑자기 옛일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1학년 혹은 2학년 무렵이었을 것이다. 어딘지 모를 여행지에서 잠자리 한 마리를 잡게 된 나는 그 또래 아이가 으레 그러듯이, 그 날개를 잡고 온종일 잠자리가 내 친구라고 상상하며 들고 다녔다.
그 모습이 어른들에게 얼마나 꺼림칙하게 보였을지, 여행지에서 돌아온 밤, 이제는 슬슬 그걸 놓아주라는 부모님의 권유에, 나는 집 앞 화단에 그것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실내에 들어오고 불현듯, 그 아이를 풀잎 위에 올려줬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무 말도 없이 집 밖으로 나왔다.
어쩌면 그때 부모님에게 나가도 되느냐고 물어봤다면, 안 된다는 대답을 들었을지도 모른다. 부모님은 하루 내 아이 손아귀에 잡혀 있던 잠자리의 날개가 어땠을지, 그 운명이 어찌 될지 알고 있었을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내 인생은 더욱 순탄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결국 나왔고, 거기서 보게 된 것은 바닥에 떨어진 잠자리를 물어뜯는 무수한 개미의 모습이었다. 그것은 내가 처음으로 마주한 죽음의 민낯이었고, 집에 돌아간 나는 잠들 때까지 울고 말았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니, 그것이 내가 개미를 그토록 무서워하며, 또 모든 죽음의 이미지에 개미를 연관 짓는 습관의 기원인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정신분석학이나 심리학에 능통했다면 더 인상적인 해석을 내놓았을지 몰라도, 그 정도 추측이 내 한계이다.
하지만 나라도 적어도 한 가지는 안다.
나는 그날 저주받았다. 잠자리는 제 목숨으로 나로 하여금 일생에 걸쳐 죽음에 관해 고찰할 수밖에 없는 저주를 걸어놓은 것이다.
초등학교 3학년 무렵이었을 것이다.
오후 3시쯤, 학교에서 돌아온 나는 4시까지 울었다. 어머니는 내가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줄 알고 위로하려 했지만, 내가 당신께서 죽는 모습을 상상하며 울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모든 생물은 죽는다. 그 이후로도 나는 종종 그 일로 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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