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을 막론하고 이름에 힘이 있다는 믿음은 보편적이다.
심지어 그 믿음은 이름이 운명을 정한다는 미신으로 확산하기도 한다.
그 때문에 얼마 전까지 국내에선 작명소에서 비싼 돈을 내어가며 아이 이름을 짓는 것마저 흔한 일이었다.
나는 그토록 이름이 가진 의미에 심취하진 않았지만, 작가로서 자식 같은 등장인물들에게 저마다 의미 있는 이름을 붙여주는 걸 즐긴다. 인물이 가진 상징성을 은연 중에 드러내기도 하고, 어디서 모티브를 얻은 인물인지 등등을 표현하는 방식의 하나로써 말이다.
전에도 이런 사례를 하나 조심스럽게 공개한 적이 있었다.
몇몇 이름을 통해서 H. G. 웰즈에 대한 헌사를 나타내려다 실패한 경우 말이다.
(참고 : rottenlove.tistory.com/33 )
아무튼 그런 사례 중에 일부를 재미 삼아, 기억나는 대로 몇 적어보려고 한다.
1. 베데스다
<95. 런던묵시록> (전 <95. 런던묵시록 / 종말의 날>) 편에 등장한 단역이다.
그리고 이 글을 작성하는 데에 가장 큰 동기 부여를 한 인물이기도 하다.
사실 이 베데스다라는 명칭은 이름으로 쓸 수 없다.
이는 ‘요한복음’ 5장에서 나오는 예루살렘 인근의 한 호수의 이름, 즉, 지명이다.
또한 그 명칭 또한 히브리어인지라, 영어권의 인명으로 등장한 것부터가 대단히 노골적인 행위라 할 수 있다.
나는 그만큼 이 인물이 가진 상징성을 강하게 강조하려 했다.
요한복음 5장은 주 예수께서 일으킨 기적이 묘사되는 부분인데, 내용은 이렇다.
베데스다 호수 근처를 들른 예수는 수많은 병자가 못 주변에 누운 것을 발견한다.
거기에는 심지어 38년 동안 누워 있는 병자가 있었는데, 그가 말하기론,
“이 호수에는 가끔 천사가 내려오는데, 그때 호수에 가장 먼저 들어가는 자는 모든 병이 낫는다. 하지만 내 다리가 불편한데 아무도 날 호수에 밀어주질 않아서 낫질 못했다.”
예수는 걸어가라는 말 한 마디로 그를 낫게 하였다.
여기서 38년 된 병자는 성경에서 드물게 예수의 은혜를 받으면서, 동시에 죄인의 속성을 지닌 인물이다.
(*좀 더 원론적으로 따지면 성경의 모든 인물이 죄인인 동시에, 예수의 은혜를 받긴 하지만, 그런 신학적인 의미는 제하고 말이다.)
그가 병에 걸린 건 제탓도 아니고, 남에게 피해를 준 것도 없는 불쌍한 인물인데도 죄인인 것이다.
38년간, 병을 낳기 위한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그저 누군가 밀어주기만 기다린 것 자체가 죄였다.
작중 베데스다는 처한 상황을 흘러가는 대로 보냈다.
누가 보아도 최악으로 치닿는 상황 속에서 아무 노력이나 판단도 없이
그러고도 그는 천국에 닿길 원하고, 자신이 선한 신자이길 바랐다.
그런 그에게 베데스다란 이름은 더없이 적합한 것이다.
2. 빈센트 흐라발
나는 문학에 있어서 다소 거만해지곤 한다.
어느 감동적인 글귀를 보더라도 머릿속으로는 금방 그 문장을 교정하며, 이렇게 쓰는 것이 더 나았을텐데 하며 작가에게 시비를 거는 것이다.
머릿속으로 금방 금방 이보다 더 좋은 문장을 쓸 수 있을 거라
이런 경우가 있는가 하면, 또 나만이 아는 이름도 있다.
—
끝까지 쓰지 못한 무수한 설명글 중 하나.
영원히 숨겨둘 생각이었지만, 그렇게 꽁꽁 사맬 정도의 내용은 아닌 듯하여.
다만, 문장이 정갈하지 못한 것은, 역시 올릴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기에 양해를 구함.
답글 남기기